코스 없는 마라톤
한 무리의 건각들이 축제의 광장으로 모여든다. ‘LA 국제 마라톤 대회’는 해마다 3월의 둘째 주에 열린다. 세계기록을 가진 선수들을 비롯하여 2만여 명의 마라토너가 참가하는 대대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다. 마라톤 코스에 있는 일부 교회들은 주일예배를 취소할 만큼 봄볕 아래의 뜀박질은 매우 성황이다.
2000년 제 23회 대회에서 나는 마라톤을 완주하였다. 두 해 전부터 우리 부부는 건강증진을 위해 뜀뛰기 그룹에 합류하여 정기적인 운동을 하였다. 작은 비지니스를 갖고 있던 우리에겐 과중한 건강보험비가 부담 되어 스스로 우리 체력을 키우겠다는 목표 아래 시작한 운동이었다.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새벽마다 트랙을 돌며 훈련을 하였다. 네 바퀴를 돌아야 1마일이라는데 처음에는 한 바퀴만 뛰고나도 다리가 떨렸다. 거듭되는 훈련으로 차츰 뛰는 거리가 늘어났고 1년이 지난 후엔 한 번에 5마일 정도는 거뜬하였다. 기왕 훈련을 시작한 김에 마라톤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26.1마일, 우리 셈으로는 백 리에 해당하는 거리였다. 목표를 정하고 코치를 세워 제대로 뛰는 훈련을 하였다. 호흡법도 배우고 발을 내딛는 순서도 익혔다. 지금껏 달리던 방법으로는 그 먼 거리를 계속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숨 조절도 어려웠다. 더우기 무릎에 부담이 되는 것은 치명적이다. 그 이듬 해 남편은 혼자서 4시간30분의 기록으로 마라톤을 완주했다. 쉰 세살의 나이그룹에서는 평균보다 매우 빠른 기록이었다. 일 년을 더 준비하여 나도 도전하게 되었다.
막상 욕심을 내어 출전을 결정하였지만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과연 그 먼 거리를 계속 뛸 수 있을까, 중간에 멈춘다면 몹시도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성당 식구들도, 가족들도 미리 응원할 장소를 정해 놓고 중간거리 이상부터는 매 mile마다 지켜서서 힘을 북돋워 주었다. 남편은 지난 해에 한 번 뛴 경험이 있어서인지 여유있어 보였다. 그는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리기에 함께 갈 수는 없었다.
스타트의 신호가 떨어지고 일제히 출발점을 떠난다. 2만여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출발선에 설 수 없기에 각자의 운동화끈에 매단 조그만 컴퓨터 칩이 출발선을 통과하는 각자의 시간을 기록한다. 그 뿐만 아니라 뛰는 코스를 다 기억하므로 행여 코스를 빗나가면 무효처리가 된다.
우리는 열심히 달렸다. 마침 우리가 결혼한 지 25년이 되는 해였다. 26마일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힘의 안배가 필요했고 마음의 평정이 중요했다. 매 1마일을 뛰면서 우리는 우리의 결혼 1년씩을 돌아보자 하였다.
1, 2, 3마일.. 앞으로 나아갈수록 처음엔 희망과 행복을 그렸다. 눈에 보이는 기쁨과 열매도 있었다. 10여 마일을 통과하면서 고통과 서로에 대한 실망, 죄절, 때로는 싫증까지도 느끼고 있었다. 18마일에 이르니 앞이 보이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지쳐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포기하고 싶었다. 이렇게 죽을 것같은 고통을 참고 완주하여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을 얻을 것인가. 겨우 완주메달 뿐인걸. 애초에 출전을 결심하면서 스스로 내 참을성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역시 나는 끈기가 부족한 사람임을 확인했다. 결혼 20년 쯤에 우린 어떤 모습이었나. 아이들은 각각 고등학생, 중학생이었고 이민의 삶이 나름 대로 궤도를 따라 기계적으로 돌아가던 때였다. 새로울 것이 없고 특별한 감각을 상실한 채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둘이서 함께한 시간 속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 안에 깃들었던 온갖 흔적들을 보듬고 상처를 감싸 주었다. 미처 고백하지 못한 잘못과 오해들을 다 내어놓았다. 다음날 남편은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였다. 내 속도에 맞추어 발을 내딛느라 무릎에 무리가 간 것이다. 어쩌면 25년의 결혼생활 중에서도 때론 내 고집에 맞추기 위해 얼마나 힘든 마음을 끌어안고 살아왔을까. 사랑으로만 평생을 살 것 같았던 착각을 깨우치며 인내와 좌절의 순간들을 지나 함께 도달해야 할 그곳을 향해 오늘도 걷는다.
지금껏 정해진 코스대로 살아오느라 어려움도 많았다. 내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가야 할 길, 세상사람들 틈에서 함께 밀려오며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달음질쳤다. 이젠 주어진 코스 완주의 테이프를 끊고 나만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남이 가는 길에 무조건 끼어들 필요도 없다. 굳이 체면이나 의무 때문에 어려운 길을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고통이 밀려올 땐 그저 머물러 아무 생각 없이 쉬리라.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겐 각자의 삶의 코스가 있음이다. 그 길을 마다않고 묵묵히 가는 사람은 행복하다. 혼자서 걸어가다 문득 돌아보며 지난 길에 새겨진 기억들을 등에 업고 한번 위로 추슬러 자장노래라도 부르면 즐거우려나. 얼마큼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저만치 앞에 놓여진 삶의 도착선에 사뿐히 발을 딛을 때까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