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인가 내면인가
수영장에서 자주 뵙는 영감님이 갑자기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오셔서 연유를 물었다. 쌍꺼풀 수술을 받은 것이 어색해 안경을 썼다고 하신다. 의사가 미용목적이 아닌 안검하수증, 즉 눈꺼풀이 처져 시야를 가려서 일상생활이 불편하다는 진단을 내려 메디케어로 공짜수술을 받았다고 껄껄 웃으신다. 교정하지 않으면 눈을 치켜뜨는 버릇이 생겨 이마주름이 심해지고 시력저하도 와서, 요즘 한인노인들 사이에 수술이 유행이란다.
많은 비로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니 수영장 찬 물속에 들어가기 싫어 실내자전거를 탔다. 유산소운동으로 심폐기능 향상에 좋고 체질을 개선해서 살이 쉽게 찌지 않는 몸으로 바꿔준다니 내게 꼭 필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30분 이상은 해야 운동효과가 있다기에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갑작스런 심한 운동에 놀란 다리가 후들거려서 잠시 멈추며 무심히 앞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탄력이 떨어져 처진 눈꺼풀, 눈 밑에 반달모양으로 불룩하게 나온 지방, 입 꼬리가 아래로 쳐져 무표정한 입술이 보인다. 마치 화가 난 듯하다. 평소 농담 삼아서 “나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귀여워서 성형할 곳이 없어. 얼굴 살만 빼면 완벽한데.”라고 말하며 주위를 웃기기도 했었는데 이젠 다 틀렸다.
머리 스타일이라도 바꾸면 기분이 나아질까 싶어 미장원에 갔다. 차례를 기다리며 뒤적이는 여성잡지의 앞부분은 거의 성형외과 광고 일색이다. 풍부한 임상경험을 갖춘 전문의에게 수술과 시술을 받아 축적된 세월을 씻어내라고 한다. “아름다움! 이제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1-2회 시술로 기미, 검버섯, 잡티를 제거해 드립니다.” “누구나 갖고 싶은 갸름한 턱선. 처진 얼굴과 늘어진 목주름이 고민이신 분들을 위해 얼굴라인을 살려주는 안전한 실 리프팅” “피부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의 효과, 명품 동안 얼굴.” 광고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무결점 도자기피부와 갸름한 턱선으로 새로 태어나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로 집에 온 딸아이를 보니 반가움보다 화가 났다. 지난번 보았을 때보다 살이 많이 쪄서 온 것이다. 뉴욕에서 광고회사 디자이너로 일하는 딸이 계속되는 야근으로 운동할 짬이 없고 기름진 미국 음식을 사 먹으니 체중이 느는 것은 이해한다. 문제는 살을 뺄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내가 어때서, 엄마는 외모가 왜 그렇게 중요해. “ 밥 먹은 후 공원에 같이 운동 나가자 하면 쉬려고 집에 왔는데 잔소리하며 괴롭힌다며 불평이다. 아들아이도 ”누나는 자기일 행복하게 잘 하고 있는데 왜 걱정이야. Outer beauty pleases the eye. Inner beauty captivates the heart.(외모는 눈을 즐겁게 하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은 마음을 사로잡는다).“ 내적인 아름다움을 찾으라고 하며 제 누나를 거든다.
졸지에 무개념 엄마가 된 기분이다. 평소 성형으로 천편일률 비슷한 외모의 연예인들을 보면 자연스럽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잠시라도 얼굴을 어떻게 해볼까 생각한 내가 부끄럽다. 나이가 들수록 살아온 연륜이 얼굴에 나타나는 법이니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연구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