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교수의 파안대소/중앙일보, 이 아침에
김수영
얼마 전 최정만 대학 동문 교수님의 초대로 용궁 식당을 찾아갔다. 3개월 동안 중국 지하교회 선교 가셨다가 잠깐 미국에 가족을 상봉하러 왔다고 했다. 함께 식사를 나누며 선교 보고를 하시겠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뜻밖에도 손자 돌잔치를 진설하고 많은 손님을 초대하셨다. 나는 너무나 의외의 일이라 미리 돌 선물을 준비를 못 해 빈손으로 오게 되어 당황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손자 돌을 축하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힘든 선교사역을 하고 돌아오셨는데도 피곤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고 손자가 귀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시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인 최정만 선교사님은 오래전 자신이 아들 돌잔치 때 직접 쓰셔서 낭송했던 시를 가지고 오셨다. 손자 돌을 축하하기 위해 똑같은 시를 낭송하시겠다고 하시면서 이번에는 사모님이 대신 낭송하게 되었다.
시가 구구절절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손님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시인도 아니신데도 시인 이상으로 잘 쓰셨다. 서울대 사범대 국문과를 졸업하셨으니 글솜씨가 좋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시가 너무 마음에 와닿아 나중에 그 시를 복사해달라고 해서 간직하고 있다가 여기에 실어 본다. 우리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모두가 이 시를 좋아하리라 믿는다.
아들아
맘이 큰 자가 되라고//너 어릴 때 재롱 가르치면서 하던 말//내 마음에 아직도 남아있다네
//온 세상 다 껴안아도//한치 품 넉넉히 남을//마음이 큰 자가 되라고//넌 빙그레 싱긋이 잘 웃었지//너의 여유 넘치는 그 모습은//한가위 보름달만큼이나//풍성한 모습//언제나 너는 주는 자가 되어라//보름달처럼 온 세상//다 비추어라//주는 자가 되어라//나무 그늘처럼//
덮어주는 자가 되어라//가다가 소나무 만나면//솔잎 소리 내고//떡갈나무 만나면//떡갈잎 소리 내고//아름답게 소리내는 바람이 되어라//언제나 겸손하여//낮은 곳만 찾다가//이 굽이 부딪쳐도 말이 없고//저 굽이 부딪쳐도//돌아가면서//늠름하게 흘러가는 물이 되어라.
자상하고 인자하신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바라는 소원을 담담하게 그린 부정 어린 자식 애의 시다. 그렇게 아버지가 바라시던 소원대로 아들은 잘 자라 주었고 믿음의 장부가 되었다. 어느덧 어엿한 믿음의 아버지가 되어 오늘 아들의 돌잔치를 맞아 희색만면하여 손님을 접대하는 모습이 참 대견스럽게 보였다.
할아버지가 상에다 차려놓은 실, 책, 쌀, 돈을 나열해 놓고 손자에게 집어라고 했을 때 쌀을 만지작거리다가 돈을 덥석 주우니 노 교수님은 파안대소하시면서 손자를 자랑스러워하셨다. 평생을 신학대학 교수로, 목사로, 선교사로 보내시면서 물질에 큰 여유로움이 없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손자가 돈을 주우니 행여나 손자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파안대소하셨으리라.
핍박이 심한 어려운 중국선교를 하시고 계시는 중이라 피곤하실지 모르지만 온 가족과 친지들과 함께 희희낙락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 가운데 피로가 싹 가시고 원기를 회복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시 중국에 들어가셔서 중국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주의 종이 배출되고 지하교회도 박해가 없기를 소원하며 기도드린다./2017년 3-9일 신문 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