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꽃과 초콜렛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Valentine's Day다. 보이 프렌드가 없던 딸에게, 꽃을 보내기 시작한 게 어느 새 20년이 가까워 온다. 몇 년 지나, 나 말고도 꽃을 보내줄 사람이 생겼건만 이벤트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꽃선물을 보냈다.
  올해는 좀 색다르게 하트 풍선 묶음을 보냈다.
페이스북에서 본 'Ballon Monster'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꽃은 딸 혼자서 즐길 수 있지만, 붉은 하트 풍선이 떼를 지어 두둥실 떠 있으면 여러 친구들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선듯 결정했다. 특히,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몇 십 명이 오픈 플로어에서 일하는 패션 컴퍼니인만치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멋을 알고 이벤트를 좋아하는 패션 컴퍼니 아가씨들이라 꽃선물이 도착할 때마다 우르르 몰려와서 호호거리며 한마디씩 하는 걸 들어 알고 있는 있는 터. 생각만으로 즐거웠다.
  주문을 하러 전화했더니, 수화기 저쪽에서 한국 청년의 씩씩한 대답이 들려 왔다. 그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의 기운이 느껴졌다.
  가게도 없이 집에서 주문 제작하여 전해주는 모양이다. 오히려 닳고 닳은 전문 장사치보다, 아르바이트생 같은 풋풋함이 느껴져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머신이 없어 카드 결재도 안 된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캐시나 체크로 달랜다.
  일이 끝나면 밤이 될 텐데 싶어 ATM에서 캐쉬를 뽑는 건 위험하다 싶어 체크로 주기로 했다. 그럴려면 서로 만나야 했다. 내 단골집 파이퍼스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하고 기다렸다.
  $60짜리 주문이었지만, 아예$100짜리 체크를 끊어놓고 기다렸다. $40은 열심히 사는 모습에 대한 칭찬의 팁이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도착해서 카운트 앞에 있다는 전화가 왔다. 카운트가 있는 입구를 보니 훤칠한 키의 청년이 서 있었다. 활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높이 흔드니, 그 청년도 날 알아보고  함박 웃음을 지으며 한달음에 달려왔다.
  "잠깐 앉으세요."
  나는 멀리 딜리버리 갔다 온다는 말을 들었기에 저녁이나 커피라도 사 주고 싶어 앉기를 권했다.
  "아닙니다!  또 딜리버리 가야 합니다"
  "밤 여덟 시가 벌써 지났는데?"
  "네! 시즌이라, 주문이 많습니다!"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앉기를 거절했다.
  "여기, 팁 조금 더 넣었어요. 젊은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니 완전 감동이에요."
  나는 내 자식이라도 되는 듯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아닙니다! 주문 받고 제가 더 감동 먹었습니다!"
  " 감동 ???"
  "아, 네! 어머니가 딸에게 보내는 건 처음이라서요!                  특별히 더 정성을 쏟아서 만들겠습니다!"
  "고마워요! 우리 딸이 무척 기뻐할 거에요! 선물 받는 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네! 2월 14일 오전 열 시경 틀림없이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예쁘게 만들어 주세요! 여기 짧은 메모도 같이 전해 주세요!"
  나는 풍선 청년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딸에게 주는 간단한 메모를 전했다.
  "Happy Valentine's Day! 딸아! 사랑한다!! 엄마가-"
  "아, 정말 감동적입니다! 사랑이 뚝뚝 흐르세요!"
  "뭘~ 안 그런 부모가 어딨겠어요? 기본이죠 ! ㅎㅎ"
  청년은 정중히 인사를 하고 급한 걸음으로 돌아서 나갔다. 청년의 모습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내 입가에선 여전히 흐뭇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좀처럼 감동할 수 없는 일상의 삶에서, 이런 소소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건 생활의 보너스다. 배달을 끝낸 청년은 오늘 또 한 번 나를 감동시켰다.
  보통 카운트에 두고 본인이 찾아 가게 하는데, 이 청년은 굳이 딸이 내려오길 기다려 직접 건네 주었다. 뿐만 아니라, 딸이 풍선을 안고 있는 모습을 찍어 텍스트 메시지로 보내 주었다. 청년에게 감사하다는 전화를 하니, 한 술 더 뜬다.
  "당연히 이벤트 선물은 본인 손에 건네 줘야죠! 기뻐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니까요!"
  이런 정신, 이런 기특한 생각은 어디서 나온 걸까? 어느 집 아들인지 그 어머니도 한 번 뵙고 싶어진다. 고된 노동도 즐거운 놀이로 환원하여 일 하는 풍선 청년!
이런 청년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도 어둡지만은 않을 게다. 곁에 있으면, 한 번 더 등을 두드려 주고 싶다.
  딸도 바로 감사 메시지를 보내왔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만들어준 사람도 다함께 즐거웠던 2017년 발렌타인스 풍선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