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물, 물
개운한 느낌이 좋다. 잠에서 깨면 샤워로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해 겨울 캘리포니아가 워낙 가문 탓에 오랫동안 물을 틀어 놓기가 죄스럽다. 몸과 마음이 정결해진다. 지구 표면의 70%가 바다라는 것을 생각하면 물은 가장 흔한 것일지도 모른다. 값도 그리 비싸지 않아 오죽하면 마구 소비하는 것을 보며 '물 쓰듯 한다'고 했을까.
물은 생명이다. 시들어 가던 꽃나무도 한줄기의 물을 먹으면 바로 살아난다. 사막을 지나는 목마른 사람은 오아시스를 찾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는가. 어항 속의 금붕어에게서 물을 모두 빼앗아 버린다면 곧 죽을 것이다. 엄마 태중의 양수는 잉태된 생명을 키우고, 우리 몸의 십분의 칠은 물이 아니던가.
나는 바닷물을 무서워한다. 열 살 때쯤 해운대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던 기억 때문이다. 하와이 여행에서도 그 아름다운 와이키키 바닷물에 손 한 번 담그질 못했다. 그런 내가 이민 생활이 너무 힘들어 때때로 산타 모니카 해변을 혼자 찾은 적이 있었다. 바다 저 끝 하늘과 맞닿은 곳을 바라보며 계속 나아가면 엄마가 계신 곳에 이를 것 같아 목놓아 울기도 했다. 두려움을 느낄 만큼 큰 바다는 내 고통을 다 받아줄 것 같았다.
눈물이 흐른다. 어려서부터 잘 우는 아이였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도 떼를 쓰며 울었고 무안을 당하면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곤 했다. 슬픈 소설은 날 울렸고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도 나였다. 살면서 정말로 내게 아픈 일들이 닥쳤을 때 그동안의 많은 연습 때문인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단순히 눈에서 분비되는 액체만이 아니었다. 심장에서부터 솟구치는 비명 같은 것, 칼끝으로 벤 상처 위에 소독약이 닿은 것 같은 쓰라림이었다.
비를 맞으며 걷기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 억수 같은 소나기는 피해야 했지만, 뿌연 하늘이 참았던 눈물을 떨구는 것 같은 빗방울은 왠지 우산으로 가리기가 미안했다. 빗물은 차가웠어도 내 마음에 들어 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어느 해인가 기다리던 소풍 날 쏟아지는 비를 피해 처마 밑에서 도시락을 열었던 초등학교 시절도 생각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가족이란 피로 연결된 생명체다. 공통의 유전자를 소유하고 비슷한 겉과 속의 성향이 있다. 맘에 들지 않아도 부정할 수 없고 보고 싶지 않더라도 마주치는 혈연이다. 아무도 스스로 선택한 적 없지만, 피를 나누어 태어난 또 다른 내 모습을 본다. 그래서 우리는 외롭지 않다. 손잡고 함께 갈 수 있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거룩한 피도 붉은빛을 지닌 물이 원천이다.
물은 치유의 힘이 있다. 성당에 들어설 땐 성수를 찍어 십자가를 긋는다. 세상에서 더럽혀진 영혼의 씻김을 기도한다. 치유는 전혀 새로운 것을 갖게 되는 일이 아닌, 있는 것을 변화시키는 힘이라 한다. 얼룩을 지우고 바랜 색깔은 덧칠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돌이켜 다시 태어남이다.
그동안 내가 흘려보낸 물이 얼마나 많을까, 육신을 깨끗하게 하고, 더럽혀진 물건들을 씻고, 때묻은 옷들도 세탁했다. 가슴을 치며 괴로움에 쏟아 낸 눈물은 또 얼마인가.
고귀한 생명의 물을 품고 싶다. 다른 이의 마음 안에 흘러 들어 씻어주고 위로하며 함께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치유의 물이 되고 싶다. 좀 더 이웃에게 마음을 쓰고 다정한 눈길을 보내련다. 세상 모든 사람이 서로의 가슴에 흐르는 물길을 지나 행복의 나라에 다다를 수 있다면 오늘도 밝은 세상이 활짝 펼쳐 지리라.
머리에서부터 나를 적시는 샤워 물줄기가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