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렸어!       

알러지를 가진 딸아이가 마리의 새끼고양이를 보고 놀란다. 딸네 식구들이 여행을 사이 글쓰기에서 뵙게 목사님 댁을 방문했다. 키우는 고양이가 무려 여덟 마리의 새끼를 낳았단다. 페르시안종이라서 몸통이 길고 얼굴도 아주 예쁘다. 목사님께서 내게 마리를 줄 테니 길러보라신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은 여러 마리의 개가 함께 살았기에 고양이에 관한 관심은 없었다. 연체동물처럼 휘어진 몸이나 너무도 부드러운 털의 촉감도 낯설어 내키질 않았다. 얼른 맘에 드는 예쁜 녀석을 고르라시는 말씀에 이끌려 거절의 뜻을 밝힐 때를 놓치고 말았다. 막상 작은 상자에 점박이 새끼고양이를 넣으시던 목사님께서 혼자는 외롭다며 완전 검은색인 새끼 하나를 함께 주셨다. 나머지 새끼들은 어찌 되나. 후에 들으니 동물 보호소로 데려다 주셨단다. 정해진 시간 안에 누군가가 입양을 하지 않으면 모두 안락사를 시킨다던데. 그나마 내가 데려온 마리는 행운인 셈이다. 겉잡을 없는 번식력을 가진 고양이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고양이를 밖에서 기르기로 했다. 생후 3주밖에 되지 않은 아기라서 마음이 편하질 않지만 집안에 들여놓을 수가 없다.
마리는 언제나 함께 붙어 다니며 자랐다. 자기들이 사랑을 받는 줄을 아는지 곁에 와서 예쁜 짓을 한다. 몰랐던 고양이의 습성을 보니 사람에게 매우 친근감을 주는 동물이다. 개들과는 달리 크게 돌봐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끗하게 몸을 관리할 아는 신기하다. 이웃 사람들도 보는 대로 쓰다듬고 먹이도 주면서 동네의 pet 되었다.
고양이는 과식하지 않는 같다. 밥그릇에 남은 먹이가 마르지 않도록 가벼운 비닐 뚜껑을 씌어 놓았다.
어느 날인가부터 밖에 놓아둔 먹이통이 깨끗이 비어 있었다. 정말로 스마트한 고양이로구나, 배가 고프면 다시 와서 뚜껑을 열고 남은 것을 먹는구나. 이러한 생각이 완전한 착각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문앞에 커다란 몽둥이가 세워져 있다. 걸까. 사위가 너구리를 쫓느라고 사용한 것이란다.
너구리, 그림에서 많이 보았다. 눈가에 동그란 테를 두르고 있어 귀여운 모습이다. 게다가 꼬리는 여인들이 좋아하는 목도리로 알려지지 않은가. 오늘 우리 앞에 너구리 가족이 왔더란다. 엄마, 아빠와 아기. 우리 주변에 높은 산이 있어 아마도 거기서 살고 있을 것이다. 먹이를 구하러 동네까지 내려왔나 보다. 불쌍한 녀석들.
그때야 고양이 밥통이 얼마 동안 깨끗이 비어 있었던 해답이 나왔다. 웬만하면 계속 먹이를 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너구리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들은 떼를 지어 다니고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만나면 무섭게 공격을 하는 습성을 가졌단다. 너구리에게 입은 상처는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니 쉽게 인심을 일이 아니다. 친근감이 느껴지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어린 손자도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어느 , 현관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너구리 가족과 눈이 마주쳤다. 역시 마리의 그룹이다. 먼저 얘기로 들었던 그들인가보다. 나를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으니 몸이 굳어진다. 순간 꼬리 개면 얼마나 값비싼 목도리가 될까 하는 생각도 스쳐 갔다. 아마도 그들은 일찌기 내가 치워버린 고양이의 먹이통을 찾고 있었을 게다. 쏘리.
남의 먹이를 가지러 그들인데 나쁜 일을 하다 걸린 것처럼 내가 더 놀란 가슴이다.

살다 보니 억울한 경우도 많았다. 늘 잘하던 일을 어쩌다 실수를 저지른 하필 그때 들키곤 하던 순간은 꽤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다. 묘한 순간에 누구의 눈과 마주쳤을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오해를 받은 일도 떠오른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걸렸던 옛날 최고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 마음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