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지갑
지갑이 입을 벌린 채 상자에 담겨있다. 악어 가죽이라곤 했지만 내 눈에는 장어 가죽인 게 틀림없다. 오래전 이민 길에 남편의 친구가 건네주며 악어처럼 용감하게 살라던 당부가 새삼스럽다.
이민 온 지 6개월 만에 우리는 조그만 패스트 후드 가게를 인수했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던 남편과 교직 생활을 하던 내겐 너무도 생소하다 못해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 같았다.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사 먹기만 했던 우리가 이젠 직접 만들어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 작은 공간이 우리 가족의 생명줄이었다. 먼저 주인의 가르침이 2주 동안 계속되었지만, 손은 무디고 순서도 쉽게 익혀지지 않았다.
더우기 잔돈을 거슬러 주는 일에 동전을 맞추기가 복잡했다.
처음으로 도움 없이 장사에 임했던 그 날을 잊지 못한다.
마치 용맹한 전사의 마음가짐이랄까, 우리 부부는 두려우면서도 단단한 각오였다.
밸리 지역의 다운타운이라서 매우 분주한 자리였다. 연방공무원들이 주된 단골이고 법원과 정부기관을 찾는 시민들의 왕래도 잦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손님들의 주문에 빨리 응하지 못하는 우리를 기다려 주었다. 정말로 고마운 사람들.
매일 반복되는 일에 익숙해지면서 오래지 않아 자리가 잡혔다. 옛 주인과는 다른 방법으로 운영을 시도하고 손님들과의 친화에 마음을 쏟았다. 장사해 본 경험이 없었지만, 다른 선택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온갖 노력을 했다.
하루의 매상을 정리하는 데에 악어 지갑을 사용했다. 용맹스러운 악어를 닮기 위한 마음도 함께 모았다. 가게를 붙잡고 있던 11년 동안 그 지갑에 담겼던 돈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다. 모두 내 것이 되진 못했어도 매일 밤 고단한 삶이 녹아 있는 구겨진 돈을 세며 우리는 희망을 다림질하고 있었다. 잠시나마 부자가 된 기쁨을 한없이 누렸다.
강보에 싸인 갓난아기를 안고 왔던 멕시칸 단골은 이제 듬직한 소년이 된 아들을 앞세우고 찾아왔다. 초등학생이었던 우리 두 딸도 그 가게와 함께 커 갔다.
악어 지갑은 우리의 세월만큼 헤져서 귀퉁이가 터지고 윤기도 없다. 지퍼는 벌어져 돈을 품지 못한다. 한때는 보물창고 역할을 충실히 하였건만.
어찌 망가지고 쓸모 없어진 것이 지갑 뿐이랴.
한번 머물렀다가 지나간 사람들, 추억의 시간, 귀하게 다루던 물건들마저도 어디론가로 자취를 감추어버려 다시는 볼 수 없는 아쉬움에 난 눈물 훔친다.
그냥 잊기에 너무도 아까운 기억들,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을 가슴 속에 펴 본다.
낡은 지갑을 집어버리려 했는데 딸아이가 말린다. 엄마, 아빠의 수고를 자기가 간직하겠노라고. 남편의 유품과 함께 상자에 넣어두었다.
훗날 나마저 떠나고 나면 아이들은 손때묻은 악어 지갑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려나.
하루하루 희망을 담으며 살아온 부모의 모습을 기억해 준다면 행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