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았다.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고 후기 여중에 다녀야 했을 때까지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없는 줄 알았다. 스스로에게 실망한 것은 물론이고 자라면서 실패에 부딪힐 때마다 '2차 인생' 이라는 자괴감을 느끼게 된 것도 그 경험의 자국 때문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후부터 서서히 상처가 엷어지는 듯하였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 하던가. 내가 지극히 평범한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온 이유는 엄마로부터 기인한다. 종가의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딸만 넷을 낳은 엄마는 자신의 고된 운명을 딸자식을 통해 메우려 했나 보다. 어려운 피난민의 삶이었지만 교육에 대한 열망 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특히 내게 대한 기대는 집착에 가까우리만큼 높았고 엄마에게 내 존재는 늘 세상의 최고였다. 막내딸에게 마지막 희망을 두었던 인생이었을까. 대학 신입생이 된 얼마 후 엄마는 작은 목표라도 이룬 듯 안심하며 생을 마감하였지만 언제나  내 삶 속에 머물러 계신다.

 

친구 같은 동반자를 만났다. 그는 허물어져 상처 난 나를 치유하기에 충분한 온기를 지닌 진흙담 같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결혼하고 각자의 일에 충실했고 포근한 가정을 꾸미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삶의 가치를 높여준 귀한 시간이었다. 창조의 신에게서 받은 축복을 맘껏 누릴 수 있었다. 점점 인간관계의 폭을 넓혀가며 세상 속에 어우러져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나와 남과의 다름을 배우며 지구퍼즐을 완성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자칫 멈춰버릴지도 몰랐을 내 삶을 살찌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태어난 곳을 떠났다. 익숙한 말과 문화, 친근한 이웃과의 소통을 모두 놓아둔 채 새로이 미국의 삶을 엮었다. 많은 것을 익히고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생존하기 위해 노동의 기회도 만들어야 했다. 내 나라에서라면 겪지 않아도 될 암담한 일도 많았지만 순응하는 훈련을 통해 이겨냈다. 나를 향해 있는 과거는 그대로 끌고 가려는데 앞에 놓인 현실은 끊임없이 내게 새로움을 요구했다. 미국으로 옮겨진 내 인생이 전환점을 돌아 격랑의 변화를 가져다준 셈이 되었다. 인생의 후반전을 새로운 경기장에서 치르는 것 같아 잠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곳을 찾았다. 어려서부터 보았던 기도의 삶을 익히고 닿을 수 없는 세계를 동경했다. 잔인한 세상이 가르쳐주지 않는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매달리고 신음했다. 보이는 것만으로 마음을 채우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것이 많았다. 인간은 물리적인 유기체를 살려 나아가려 끊임없이 영혼의 움직임을 살피는 존재인 것을 깨닫는다. 언젠가 다시 옮아가야 할  또 하나의 세계는 어디쯤일까. 내게 주어진 지상에서의 몫을 어느 만치 갚았다고 자부한다. 이제 눈을 들어 영원한 곳에 초점을 맞추고 나를 다스릴 일이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는 작은 골목길이 많았다. 촘촘한 집들 사이로 서로 얽혀있어 때론 빠져나오지 못한 채 몇 바퀴를 돌고 또 돌았다. 골목 끝에 이르러서야 돌아선 길의 방향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찾는 곳이 아니면 되돌아 나와야 했고 그러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오늘도 삶의 모퉁이에 기대어 선다. 수 없는 인생의 전환점을 만나며 지나왔다. 엄마는 나 스스로 무언가 이루기를 시도할 때부터 줄곧 안내했다. 잘 정리된 길 위에 얹어 주셨기에 똑바로 걸어올 수 있었다. 외형적 환경의 변화든 풍요로운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욕망의 기회든 자신의 선택과 노력이 삶을 이어가게 한다.

이젠 내 현재의 모습에 집중하고 싶다. 오지 않은 시간에 대비하는 새로운 삶의 분깃점이기 때문이다. 설령 보이는 길 끝까지 달려간 다음 펼쳐지는 그것에 실망하게 된다 해도 그저 푯대를 향해 열심히 뛸 뿐이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아온 길이라면 이제부터라도 여유 있게 주변을 살피며 가고 싶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만드는 것이라 믿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