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예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를 보는 사람들은 복스럽게 생겼다던가 혹은 돈이 붙을 관상이라 했다. 어려서는 통통했고 커 가면서 투실투실한 인상을 주는 내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라 여겨진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여자들이 누리는 혜택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막내딸을 예쁘게 낳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조물주의 솜씨대로 빚어진 내 모습을 어쩌랴. 요즘 같은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엄마는 빚을 내어서라도 성형수술로 보기 좋게 고쳐 주셨을 것이다. 예방주사를 맞는 일조차 두려워하는 나도 예뻐지기 위해서라면 성형외과에 갈 용기를 낼 수 있었으리라. 미인박명(美人薄命), 또는 미인박복(美人薄福) 덕에 지금까지 잘살고 있다고 믿으니 마음이 가볍다.
내겐 돈이 없다. 한 번도 돈이 머물러 있던 때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30년 세월을 열심히 일하며 꽤 많은 돈을 번 것 같은데 재산이 없으니 억울할 일이다. 보는 이마다 예언했던 그 부자는 어디로 간 것일까. 주변 사람들마저 돈이 없다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귀에 익숙한 말 때문이었을까. 살아오면서 내가 가난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못쓴다'라는 것이 나의 경제 철학이라면 '돈이 있을 때는 저축을 해야 하고 돈의 여유가 없으면 절약해야 한다'는 것이 남편의 주장이다. 언제나 돈 쓰는 일로 다투었고 소비 패턴이 너무 달랐다. 그러니 내게 돈이 머무를 리 없고 남편은 돈을 마음놓고 써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서 잘살 것이라 기대하고 결혼했다는 말에 본인은 경제적으로 잘 사는 사람이라 응수하며 내게 쓴웃음을 날리곤 했다.
처음으로 미망인 연금을 받았다. 육십 살 생일을 지나고서야 수급자격이 된 것이다. 남편이 생전에 낸 세금이 내 노후의 생활비로 돌아왔다. 그이의 목숨값이라 생각하니 가슴에 쿵 하고 돌 하나가 떨어진다. 잘 쓰려 계획한다. 귀하게 사용하고 싶다.
사회 연금법으로는 내 조기 은퇴 나이까지 적어도 2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혼자 남은 애처로움을 나라가 일부 보상해 주는 느낌이라 미국에 감사할 따름이다. 일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매월 주어질 연금 덕에 나는 작은 부자가 되었다.
육십 년을 속아 살았나 보다. 아니 착각 속에 살아온 것 같다. 때로는 행복한 착각 속에서 삶을 이끌어 나아가는 일이 풍요로운 인생을 만드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면 문제가 없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실이라 믿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우쭐대는 사람들, 자기의 생각 만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내게도 나만이 고집하는 착각이 왜 없으랴. 그래서 '착각에는 커트라인도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까.
나는 늘 부자가 될 것이라고 최면을 걸면서 살았던가 보다. 앞으로도 그 꿈은 지켜 가겠다. 착각은 자유라던데. 굳이 예뻐지려 애쓸 이유도, 못생겼다고 주눅이 들 일도 아니다. 부자의 관상을 그대로 유지하며 계속 착각을 즐기련다. 주름져 가는 얼굴이 여전히 복을 담아줄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단정하게 가꾸는 일은 게을리 말아야겠다.
주머니 속에 얼마가 들어있든 그 돈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나는 정말 부자가 아닌가. 재벌의 총수라 해서 많은 자산을 모두 자기 욕구에 따라 쓸 수 있겠는가. 부족한 듯 앞뒤 재어 가며 사는 나의 삶이 참된 생동감 속에 머무는 매일이다. 황홀한 착각 속에 빠진 부자의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