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그림자
길을 떠난다. 보통은 버뱅크 공항에서 타던 국내선 비행기를 이번엔 엘에이 국제공항을 이용했다. 어둠이 채 물러가지 않은 새벽의 찬 기운이 느껴졌다. 언제나 그렇듯 헤어짐과 만남의 장면들이 사람들의 생김새만큼이나 다르게 연출됨을 볼 수 있었다.
얼마 만인가. 작은딸 서은이와 둘이서 떠나는 여행.
혼자서 항공 여행을 할 때마다 웬지 두려운 마음을 갖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예민함일까, 이번엔 딸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푸근한 휴가가 될 것 같았다.
대학 졸업 후 일 년 간 시애틀에서 일했던 딸아이가 연휴 주말을 그곳의 친구들과 지내고 싶다 하였고, 나 또한 만나고 싶은 이들이 있어 함께 일정을 잡았다. 사실 꼭 어디엔가로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초조한 마음이었던 것은 그 날이 나의 결혼 33주년이었다. 남편 없이 처음 맞는 결혼기념일에 3년 전 그이와 함께 여행했던 길을 다시 가보고 싶었다.
두 시간여의 비행 후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시애틀, 도시는 온통 단풍으로 채색된 한 장의 수채화같았다. 엘에이에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그런 색깔들.
찬 서리를 머금은 채 메마름을 견디어 내며 여름의 그림자를 내몰아 각기 붉게, 노랗게, 또는 핏빛의 빨강으로 물들였나 보다.
나는 이번 여행 동안 낙엽을 실컷 보고 싶었다. 만지고 싶었고 밟아보고도 싶었다.
전날에 큰비가 쏟아졌다는데 도시는 흐린 하늘로 어두울 뿐 물기를 삼킨 낙엽 더미가 땅을 덮어 버렸다.
호텔 체크인을 하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라 딸아이와 나는 작정하고 낙엽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렌터카를 하여 곧장 캐나다 밴쿠버로 향했다.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더욱 선명한 빛깔의 가을잎들이었고, 엘에이는 물론 시애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은행나무의 부채꼴 잎사귀는 아련한 기억 속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를 데려갔다. 광화문 거리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땐 낙엽 되어 떨어지는 차가운 가을빛이 뜨거웠던 여름날의 하얀 그림자인 줄을 몰랐다. 시간의 질서 속에서 그냥 지나가는 길목이라 치부했다. 그 모퉁이를 돌고 나면 혹독한 칼바람과 마주쳐야 한다는 두려움을 겁낼 줄도 몰랐다. 지금 나는 내 삶의 어느 길 위에서 창백한 그리움에 떨고 있는 것일까.
딸아이가 운전하는 덕에 나는 마음껏 주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상쾌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먼지에 찌들었을 폐까지도 세척되기를 바랐다.
밴쿠버 곳곳의 공원엔 산책하는 사람들, 가볍게 달리는 사람들, 기다란 벤치에 앉아 한 곳만 응시하고 있는 외로운 눈빛의 노인도 보였다.
우리는 각기 다른 자리에서 끊임없이 '오늘'이란 그릇에 삶을 담아내는 숙련공들이련가.
어느새 스물아홉의 어른이 되어버린 막내딸은 낙엽 빛에 빠져버린 엄마의 손을 말없이 보듬어 주었다. 연민을 가득 품은 커다란 우주가 조그마한 손아귀에 잡혀 들어 쉴 곳을 찾아 헤맨다. 이젠 지치지 않으리라. 인고의 세월은 막을 내렸다. 나즈막이 들려오는 평화의 합창. 모두가 승리하였다.
짙은 어둠 속에서 국경을 통과하였다. 문득 합법적인 체류 신분을 갖고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되돌려 받은 여권을 살포시 가슴에 대 본다.
돌아오는 길가에 수북히 쌓인 낙엽 무덤이 희미한 가로등 빛에 쉼을 재촉하는 듯하다.
지난여름의 광채는 사라졌지만, 떨어진 가을잎은 의연한 자태를 지탱하고 있다. 뒤를 돌아봄 없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굴러가는 대로 불평조차 하지 않는다. 때론 발아래 짓밟혀도, 그러다가 마른 잎이 부서져도 결코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다가올 새로운 봄을 기다리며 그저 안으로 아픔을 새길 뿐이다.
여학교 때 친구들과 겉치레 없는 만남이 가슴 따뜻하였다. 꽤 오랜만의 조우였지만 마치 며칠 전에 얘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찬연한 세월의 흔적들이 모두의 이마에 어려있다. 중년의 고개를 넘는 힘겨움이 보이건만 그 누구도 아는 체하질 않는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잠시 비켜 놓았던 의자를 반듯하게 정돈하고 새로운 마음도 앉혀 주었다. 이젠 그이를 놓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아직 슬프긴 해도 가슴 가득 풍성함이 채워져 두 손 높이 들어 희망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