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아름드리나무를 베었다. 나무 뿌리가 집의 기초를 흔들 수 있다는말에 망설임 없이 자르기로 했다. 대문 앞 수호신처럼 버티고 살아온 나무가 베어진 자리는 참담해 보였다. 어찌나 키가 컸던지 적어도 다섯 차례 이상을 나누어 잘라냈다. 땅에서 올려다 보았을 때 짐작할 수 없었던 굵은 몸통이 놀라웠다. 서 있는 동안은 그리 큰 줄을 몰랐다.
한여름의 따가운 볕을 받아 우리 대신 제 몸을 달구고 그늘 쉼터를 만들어 주었던 고마움을 느끼지도 못했다. 잘려나간 몸통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남은 밑동은 넓은 하늘을 떠 받들고 있듯이 땅에 밀착되어 터를 잡았다.
밑동만 남은 단면에 나이테가 선명하다. 짐작하건데 내 나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연륜이다.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풍상을 겪어 왔을까. 열대우림의 정글에서처럼 비를 머금지 않았을 테고 한랭지의 침엽수같이 차가운 기후를 견디며 옹글게 단단해지지도 못한 채 캘리포니아 날씨에 적응하며 살아 왔으리. 마치 이민자의 삶이 방패없는 전장의 병사처럼 지친다 해도 주저않지 않은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주어진 환경에 투덜대지 않고 마른 바람에 가지가 꺾여도 숨김없이 모두를 맡기는 온유함을 간직한 듯 하다. 어느 곳은 촘촘한 모양이고 또 다른 쪽엔 넓은 간격으로 나이테가 굳어있다. 내 기억의 자국들도 이런 과정을 겪으며 각가지의 모습으로 각인되었으리.
내 마음에 뿌려진 씨앗은 나를 둘러 싼 조건들 속에서 뿌리 내리고 자라왔다. 새싹이 움틀 무렵부터 잎새들을 키웠고 단단한 가지를 세워 건실한 열매를 맺기까지 끊임없는 파고를 넘어야 했다. 한 파도가 지나가면 더 세찬 물벼락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러다가 잠깐 순한 물결을 만나기도 했다. 나는 아픔의 고비에 설 때마다 대들었다. 시련의 파도를 거스르려 안간힘도 썼다. 어쩌다 내가 승리한 듯한 순간이 오면 굳게 지탱하던 두 발의 힘을 놓아버리는 바람에 더욱 깊은 바다로 빠져들곤 했다. 내가 만든 나이테 하나하나마다 고뇌와 열정, 좌절과 달음질이 서로 부대끼며 선명한 궤도를 그려 나갔다. 아마도 세상과 맞서 거침없는 삶을 엮어 나가던 젊은 시절엔 더욱 튼튼하고 명확한 자국을 만들었을 테다.
두세 사람이 맞붙어 앉기에 넉넉할 만큼 여유로운 그루터기는 모두를 받아 안아준다. 살아서 내어 준 성실함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 베어진 몸통은 어디론가 실려 가 깎이고 다듬어져 새로운 쓰임새로 거듭났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근사한 탁자이거나 의자로 만들어졌을까. 점점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현대인들에게 만족스런 가구로 귀한 대접을 받는 상상도 해 본다.
우리는 모두가 이 세상에 그루터기 하나씩을 남겨 놓는다. 그 위에서 어떤 이는 안식을, 또 다른 사람은 희망을 꿈꾸리라. 훗날 내 삶이 베어져 남은 곳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걸터앉아 쉬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