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는 내리고

 

물기를 머금은 흙냄새가 실눈 같은 숨결을 깨운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으며 비를 흩어 놓는다. 앞마당 잔디에 비료를 뿌려준 직후라서 달밤에 님 만난 듯 몹시도 반갑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때를 맞출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다. 만물이 자연의 인연 속에서 쉴틈없이 엮어가는 질서일 테니까.대지에 싱그러운 초록빛을 더해 주리라.

 

현관에서 마주 보이는 토팽가 캐년 산자락 능선이 구름에 가려 희미하다. 하늘과 닿은 산 경계 사이로 돌빛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노라며 당당한 모습이다. 내가 힘들 때마다 늘 보호해 줄 것처럼.

겨울을 맞을 무렵 사관생도의 각진 머리처럼 잘라준 장미나무 가지에 새잎이 뾰죽히 세상구경을 나왔다. 한여름 무성했던 가지들, 아직 덜 시들은 꽃송이들이 매달려 있거늘 정원사는 사정없이 가지를 쳐냈다. 때론 나의 마음도 이처럼 결단있는 관리가 필요하겠지. 애달파 하면서도 놓을 수 있는 용기. 다른 것, 새로운 것이 자리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해 놓아야 하기에. 어렵게 차지한 꿀단지를 온 힘으로 끌어안고 제자리를 맴돌다 결국 그 속에 갇혀 갈 길을 잃어버리는 곰은 아니고싶다.   

 

비오는 날이면 신작로를 따라 뛰고 싶다. 가다가 가겟집 양철 처마밑에 엉거주춤 서서 긴 빗줄기를 바라보고 싶다.

여고시절 여름이면 겪는 홍수로 가끔은 집까지 걸어와야 했었다. 4계절을 구분않고 입던 골덴 텍스 교복 치마는 물을 먹으면 가죽처럼 뻣뻣해지는 통에 걷기조차 어려웠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개울도 건너야 했는데 웬만한 체구의 사람들은 급물살에 떠내려갈 수 있어 건장한 청년들이 손잡아 주기도 했었다. 흙탕물이 흐르면서 뾰족구두 한 짝도, 양은냄비 뚜껑도, 어느 때는 강아지도 함께 떠가고 있었다.  

장대비는 아니더라도 밖에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노라니 마음은 정겨웠던 어린시절 골목길에 닿아있다.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비를 기다리며 흘러가는데 나갈 수 없는 신세가 섫다.

일주일 전부터 오른쪽 눈이 불편하더니 아파지기 시작했다. 다음날엔 통증도 심해지면서 마치 특수안경 없이 보는 3D 화면처럼 촛점이 몇 겹이다.

의사와 마주하기를 유난히 싫어하지만, 안과를 찾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나 답지않게 천천히, 한 눈에만 의지하고 달려야 했다.

눈에 문제를 가진 사람이 꽤 많은 모양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진료를 받았다. 각막에 염증치고는 심한 궤양이란다. 그런 병명을 처음 듣기도 했지만, 순간 덜컥 겁이 났다. 게다가 영구시력을 유지하는 신경에 아주 가깝다며 난감한 표정까지. 혹시 한쪽 눈이 시력을 잃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살아오면서 온갖 어려움과 맞닥뜨리며 모질게 버텨온 배짱은 모두 허세였나 보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가슴엔 사시나무 떨림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런저런 검사 끝에 각막을 일부 절개해야 한단다. 그 사이로 약을 흡수시켜야 하기 때문이란다. 꼼짝없이 마취 후에 시술을 받고 약을 넣었다. 약국에 들러 쬐끄만 병에 든 안약을 무지무지 비싼 값을 내고 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쌤플약을 하나 더 달랠 것을. 한 시간마다 한 방울씩 넣고 안정하라고 쓰여 있다.

  

한 눈으로만 보는 세상. 시력검사를 할 때 말고는 굳이 한 쪽으로 볼 일이 없었다. 모든 것이 찌그러지고, 삐뚤고, 방향감각조차 기능을 잃는다.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니 조금은 나아지는 듯하다. 잘못 누군가와 눈 마주치면 째려본다는 오해를 살는지도 모르겠다. 둘이 할 일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다른 한 눈은 두 배가 아닌 네 배쯤은 힘이 드는 것 같다. 지금껏 나의 태만과 욕심으로 인해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몫의 수고를 대신했음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었다.

평소에 두 눈을 갖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줄은 더욱 몰랐다. 육신의 멀쩡한 시력을 갖고도 다른 이들을 일그러뜨려 보고 반쪽 만으로 판단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나. 

 

나흘째 편한 자세로 쉬고 있다. 차츰 아픔도 덜하고 시력도 회복되어간다.

흐린 눈으로 선명하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먼지 낀 안경알을 닦아주듯 가슴 속 렌즈의 흠집을 손질해가며 바른 모습을 새기리라. 

우리가 자연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기적이라 여겨진다. 따뜻한 기적.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하는 훈훈함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이기를 꿈꾼다. 고향 집 마당을 지키는 고목처럼 든든한 이웃이면 더욱 좋겠다.

내일쯤은 마주하는 사물들에게 사랑을 건네며 겨울비 속을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