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차고 문을 열었을 때 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놀라서 위를 쳐다보니 천장에 물방울이 수없이 맺혀있고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화들짝 놀라 차고 바로 위인 식당으로 뛰어 올라가 보니 카펫이 다 젖었고 식당 천장이 얼룩져있다.

 

교회에서 알게 된 핸디맨에게 변기 물 내리는 손잡이 깨진 것, 수도꼭지 교체 등 몇 가지 일을 부탁하였다. 변기 손잡이만 교체하면 될 것을 내부의 부품 전체를 갈은 것이 이번 사달의 원인이었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변기 물탱크 사이즈에 맞추어 부품을 조절해서 설치해야 하는데 그대로 한 것이 실수였다. 이민온 많은 한인들이 한국에서와는 전혀 다른 일에 종사한다. 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워 얻은 지식이 아니라 어깨너머로 배운 일인 경우가 많아 전문성이 떨어진다. 보험 다 들고 정식으로 하는 전문인을 부를 경우 비용도 많이 들고, 간단한 일에는 한인을 도운다는 생각에 부르곤 했는데 이번에 물난리를 겪게 되었다.

 

내일이 새 입주자가 들어오기로 한 날인데 참으로 난감했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끼어 렌트할 집 찾는 사람이 드문 만큼 정성껏 집 단장을 했다. 이전 세입자가 돌보지 않아 황폐해진 뒷마당을 대청소하고 꽃나무 몇 그루를 심으니 화사한 분위기가 났다. 집안 전체를 새로 페인트하고 블라인드까지 다 떼어내 닦으니 새집 같았다.

아이들이 독립하여 나가면 다시 이집에 와서 살자고 했는데, 결혼식을 앞두고 웨딩드레스에 구정물이 튀긴 양 화가 났다.

 

카펫 스팀청소 업자를 다시 불러 젖은 카펫에서 물을 빨아내었다. 이삿날을 이주일 연기했다. 렌트를 거슬러 주는 것 외에 호텔비까지 물어줘야 하게 생겼다.  계약 불이행 사유가 우리 쪽에 있으니 어떤 손해보상을 요구해올지 모른다.  소송 흔한 미국이라 걱정이 앞선다. 우리 집보험은 빈집일 경우는 해당사항이 없다하고 영세한 핸디맨도 당연히 보험이 없겠지. 손해는 고스란히 우리 몫 이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발뺌부터 하는 처사에 기가 막혔다. 천장에 구멍을 뚧어 남은 물을 빼고 2주쯤 말린 후 자기가 페인트는 새로 칠해 주겠단다. 속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있어 페인트를 공짜로 해주겠다고 하지만 자기 보호본능 때문에 사과는 안한다. 고단한 이민자의 녹녹치 않은 신산한 삶이 느껴진다. 

 

검증 안 된 사람 쓴 당신이 잘못이라고 남편에게 신경질을 내었더니 매일 밤 혼자 빈집에 가서 바닥을 말린다. 오늘은 같이 가서 온 집안에 난방 틀어놓고 핸디맨이 갖다 놓은 대형 상업용 선풍기를 돌리며 아직도 눅눅한 바닥에 비치타월을 깔고 발로 꽁꽁 뛰고 밟으며 달밤의 체조를 한다. 전에 살던 일본남자가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가며 두고 간 건조기가 큰 부조를 하였다. 요즘 권태기로 사사건건 트집만 잡던 남편이 건조기에 대형 타월을 말려 주니, “당신 머리 좋아.”하며 칭찬을 다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기분이 좋다. 새옹지마, 전화위복이라니 내일은 복권이라도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