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라는 이유로

 

텔레비전을 덜 보자고 케이블을 끊었는데 더 많은 한국 채널이 24시간 내내 잡힌다.  아침 설거지를 하며 한국 텔레비전 보는 것이 어느덧 일과가 되었다.  오늘은 'TV 특종 놀라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루게릭병에 걸려 거동 못하는 아내를 26년간 돌보아 온 순애보 남편이 소개 된다. 동네에는 매일 붙어 다니는 닭살부부로 소문이 나 있단다.  작은 양복점을 하는 남편이 일하던 중 '딩동'하고 벨이 울린다.  가게와 연결된 작은방에 있는 아내가 요구 사항이 있어  희미하게나마 움직이는 손가락 하나를 이용해 남편을 부르는 것이다.  눈을 깜빡여 '예, 아니오' 의사표시를 하는 그녀는 호흡기에 의존한 채 TV를 보며 누워 있다.  욕창이 생길까봐 몇 시간에 한 번 씩 몸의 위치를 바꾸어 뉘어주고 씻겨 준다.  음식을 씹을 수 없는 아내를 위해 몸에 좋다는 여러 가지 재료를  믹서에 갈아 코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 밥을 먹여준다.

 

루게릭병은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의 배우 김명민의 애달픈 대사 “나 몸이 굳어가다 결국은 꼼작 없이 죽는 병이래. 그래도 내 곁에 있어줄래?”로 어렴풋이 아는 무서운 병이다. 김명민처럼 앙상하게 말랐었는데 남편의 정성으로 볼 살이 통통히 올랐다고 한다. 근육마비로 희노애락 표현을 못해서 그런지 예순이 넘은 얼굴에 아내는 놀랍게도 주름 하나 없다.  아팠던 26년간 시간이 멈춘 듯하다.  휠체어를 밀며 아내에게 바람 쏘여주러 나온 주름진 남편얼굴의 미소는 오히려 슬펐다.  루게릭병으로 40년 넘게 살은 기록도 있으니 그저 살아만 있어 달라는 소원을 말하며 희미하게 웃는다.

 

아이들에게 모유를 한 번도 안 먹여 유방암도 걱정이고 아직 50세도 안된 나이에 벌써 1년째 혈압약을 먹고 있는 나는 막연히 약의 부작용도 걱정되었다.  남편에게 루게릭병 간호하는 할아버지 얘기를 하며 당신도 그처럼 희생적으로 할 수 있냐고 물으니 말은 쉬운지 올인 해서 돌봐줄 터이니 걱정말라한다. 약 부작용에 신장도 고장 나면 하나 줄 수 있냐하니 바로 대답을 못하고 뜸을 한참들이더니 모기 목소리로  '맞으면 줄께' 한다.

 

한사람과 20년 이상 살다보니 피를 나눈 부모나 형제자매보다 더 편하고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대학 때 교양과목으로 들은 철학 강의에서 부부사이엔 많은 인내가 요구되니 백색순교가 필요하고 웨딩드레스가 흰색인 이유도 수의로 입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들은 기억이 난다.  결혼 생활 중 맞닥뜨린 크고 작은 갈등과 논쟁 중에 흰 수의를 입고 순교자 역할을 한 사람은 주로 남편이 아니었나 싶다.  우기거나 떼를 쓰면 거의 내 뜻이 관철 되곤 했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남자의 속성을 이용한 것이다.  미국 온 후 부부가 같이 비즈니스를 하여 내가 일해야 하는 것에  항상 미안해하며 다음 생에는 <정주영>으로 태어나 나를 다시 만나 호강 시켜준다고 하는 남편이다.  

 

부부란 2인3각 경기와 같다.  다리 하나를 묶은 불편을 감내하고 상대방의 보폭에 맞추어 속도를 조절해서 달리는 게임인 것이다.   어느 한 편이 넘어져 다치면, 부축하든 엎고 가든 한 팀을 이루어 영원히 같이 가는 운명공동체인 것이다.  부부라는 이유로 상대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2인3각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