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완견이 꽃나무 밑에 앉아 있는 고양이에게 접근하고 있다
도둑고양이와 나의 애완견
도둑고양이가 몇 달 동안 우리 집 뒷마당 툇마루(deck)에 올라와 잠도 자고 때론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웃집 고양이가 놀러 와 잠깐 쉬어 가는 줄 알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루는 나의 애완견 릴리가 계속 짖어대며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려왔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유리창 밖을 내다보니 고양이에게 공격할 자세로 접근을 시도했다. 고양이가 크러럭 하면서 릴리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으로 할퀴려 했다. 릴리는 ‘나 살려라.’고 소리지르는 것처럼 삼십육 개 줄행랑을 놓으며 계속 ‘깽 깽 깨 깽깽…….’ 죽는소리를 내었다.
릴리는 목덜미라도 물린 것처럼 심하게 울어서 나는 깜짝 놀라 뒷마당으로 뛰쳐나왔다. 나는 그 장면을 목격하자 얼마나 우스운지 배꼽을 쥐어짜며 한바탕 웃었다. 엄살도 유분수지 어찌 그렇게 죽는소리 낼 수 있을까 싶었다. 나의 개는 치와와 종류라 몸집이 고양이만 하다. 몸집이 비슷해서 싸움이 붙으면 막상막하일 것 같은데 지레 겁을 집어먹고 한번 덤벼들어 싸우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죽는소리를 내며 도망가는 모습이 얼마나 웃기는지 한참을 웃다 보면 눈물이 찔끔 눈가에 맺혀 있다.
하루에도 그렇게 도망치기를 여러 번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달려들며 짖어대는 모습이 가상하기까지 하다. 몇 달을 고양이를 관찰한 후에 이 고양이가 도둑고양이란 사실을 알았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물과 먹이를 개집을 갖다 놓고 그 속에 넣어주곤 한다. 주인 없는 고양이라 얼마나 배가 고프겠는가 생각하며 먹이를 주는데도 나만 보면 고양이는 도망가고 만다. 개가 그렇게도 달려 더는데도 딴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기지 않고 천연스럽게 그대로 살고 있다.
나의 개가 고양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아 고양이가 딴 곳으로 갔으면 하지만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며 버티고 사는 고양이 배짱도 보통은 넘는 것 같아 나는 이들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 누가 양보할 것인가를 보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라 볼까도 생각했지만, 너무 불쌍해서 마음을 고쳐먹고 밥을 주며 구경꾼이 되어 방관만 하고 있다.
나는 동물들을 무척 사랑한다. 그중에 개를 제일 많이 사랑한다. 고양이도 무척 좋아하는데 한국에 있을 때 고양이에 얽힌 슬픈 사연 때문에 고양이를 멀리하고 가까이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시골 고향에 내려가면 장작에 불을 지퍼 큰 가마솥에다 밥을 한다. 밥 뜸을 들이는 구수한 냄새를 맡고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부뚜막에 올라와 야웅야웅하면서 꼬리를 추어올리고 가마솥 주위를 맴돌았다.
할머니가 밥을 큰 나무 주걱으로 푸기 전에 나는 고양이가 매우 배가 고픈 줄 알고 밥을 먼저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힘에 겨운 큰 가마솥 뚜껑을 열어 재치고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밥을 반 주걱 퍼서 부뚜막에 내려놓았다. 뜨거운 밥이 식은 다음 고양이를 줄 생각으로 나는 그렇게 했다. 고양이는 계속 울어대고 나는 급한 마음에 물을 조금 바가지에다 퍼다가 밥에다 끼얹으려 했다. 돌아서는 순간 고양이는 배고픔을 못 참고 그 뜨거운 밥 한 뭉치를 씹을 겨를도 없이 그대로 삼켜 버렸다. 고양이는 펄펄 뛰면서 몸을 이리저리 뒹굴며 어찌할 바를 모르더니 새빨간 피를 토해낸 후 쓰러 져 죽고 말았다.
어린 마음에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배고픔을 달래려 밥을 좀 주려고 했는데.. 고양이를 죽게 만든 죄책감에 오랫동안 시달렸고 토해낸 시뻘건 피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 후부터 고양이를 멀리하게 되었고 깜깜한 밤에 번쩍이는 고양이 눈이라도 보는 날엔 죽은 고양이가 되살아나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를 볼 때마다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는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면서 고양이를 죽게 한 죄책감이 다시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검은 고양이’ 단편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은 정신병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검은 고양이 풀로 토를 눈알을 빼고 나중에는 목메어 달아 죽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검은 고양이를 볼 때마다 마녀(Witch)가 현현한 것으로 착각한다. 급기야 다른 고양이를 데려오지만 죽은 고양이처럼 애꾸눈이란 것을 발견하지만, 여전히 죽이려 하다가 이를 말리는 아내마저 도끼로 찍어 죽게 만든다. 시체를 벽 속에 집어넣고 벽을 바르지만,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집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떠나려 할 때 벽 속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벽을 헐어보니 아내 시체 머리 위에 고양이가 앉아 울고 있었다.
어린시절에 고양이에 얽힌 슬픈 사연 때문에 그 후 부터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멀리 했다. 하루는 나의 형편을 모르는 친한 친구가 미국에 이민가면서 자기가 키우던 고양이를 맡기면서 예쁜 고양이니 잘 키워달라고 신신부탁을 했다. 마음이 약한 나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집에서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이 고양이가 피부병을 옮겨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직도 그 흉터가 남아 보기 흉하다. 고양이가 곰팡이를 전염시킨 것이다. 백약이 무효였지만 지인의 권고로 마늘을 짓이겨 발랐더니 감쪽같이 나았다.
나는 이 두 사건 이후 자연히 고양이를 멀리하게 되었고 싫어하게 되었다. 나는 우리 집 뒷마당에 살고있는 도둑고양이를 볼 때마다 나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고양이가 생각 나서 쫓아내지 못하고 밥과 물을 계속 주면서 살게 하고 있다. 주인의 마음을 알 턱이 없는 릴리는 그 고양이가 눈엣가시처럼 성가시게 생각되나 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뒷마당에 나가 살피면서 고양이를 볼 때는 눈에 불을 켜고 고양이 주위를 돌며 짖어댄다. 겁이 많은 릴리는 용감하게 공격 한번 못해 보지만 애써 용감한 척 먼저 항상 접근을 시도한다. 그러다가 고양이가 약이 올라 와락 덤벼들 때는 엄살을 부리면서 죽는소리를 내며 도망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깔깔거리며 웃어댄다. 도둑고양이와 나의 애완견 릴리가 언젠가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보지 만 그날은 요원하기만 할 것 같다./미주문학 문학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