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기도원 뒷산 기도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후편
산불이 진화된 지 며칠이 지났다. 많은 성도가 이번 산불에 놀라 얼마나 마음고생 했는지 모두가 탈진 상태였다. 이번 화마로 마음 고생을 많이 한 한 여자 집사님으로부터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은혜기도원에서 부흥회가 있는데 가서 은혜를 받고 싶다며 같이 가자고 간청을 했다. 사방에 둘러싸인 불길 가운데도 집을 지켜주신 주님께 재헌신의 다짐을 하고 싶다며 기도원 가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주님 뜻대로 순종하며 살기 위해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기도원 가는 길도 잘 모르고 혼자 기도원에 가기가 쉽지가 않다며 꼭 함께 가기를 원했다. 나는 빨리 집안일을 끝내고 오후에 같이 가기로 했다. 산골짜기로 해가 진 다음 차를 몰고 올라가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주님이 함께하시니 두려울 것 없다고 생각하면서 함께 찬양을 부르면서 기도원을 향하여 운전대를 잡았다. 한 시간 정도 프리웨이로 운전하고 가는데 기도원 가는 길이 화살표로 팻말이 붙어 있었다. 프리웨이에서 내려서 그 화살표 방향대로 운전하고 올라갔다. 기도원 입구에 도착하니 마침 도로 공사 중이어서 길을 막아 놓았다. 저녁이라 공사는 안 하지만 길을 막아 놓았으니 기도원을 어떻게 찾아 갈 것인가 걱정이 앞섰다. 해는 지고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기도원 들어가는 입구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어두운 밤이 되어 보이질 않았다. 한적한 곳이라 사람의 왕래도 드물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두려움이 왈칵 몰려왔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헤드라이트로 비추어 보니 한쪽으로 샛길이 보였다. ‘기도원 가는 길’이란 표시판이 보이지 않고 길만 보였다. 도로 공사로 길을 막아 놓으면 분명히 사인 판이 있으려니 하고 사방을 살펴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길이 딱 한 개만 보여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되돌아 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들어가 보자란 생각에 차를 몰고 그길로 운전하기 시작했다. 길에 들어서자마자 잘못 들어왔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했다. 차가 다니는 길이 아니고 산책로로 길을 닦아 두어 실수로 들어온 차를 뒤로 빠져 나가려고 해도 회전(U turn)을 할 수가 없어 되돌아 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얼마나 무모한 짓을 했는지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 계속 꾸불꾸불하고 울퉁불퉁한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빠져나갈 궁리를 해 보지만 한 길(one way)이라 앞으로만 갈 수밖에 없었다.
길이 얼마나 험악한지 큰 돌들도 많고 바위들도 놓여 있어서 차가 앞뒤 좌우로 얼마나 흔들리고 요동을 치는지 마치 큰 지진을 만난 것 같았다. 나는 겁에 파랗게 질려서 그때야 ‘하나님 아버지 살려 주세요.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런 날 벼락이 어디 있습니까.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하고 기도하는 순간 차가 큰 돌에 걸려 꼼짝도 안 하다가 겨우 빠져나왔는데 그곳에서 멈추어야 하는데 무슨 배짱으로 운전을 계속하면서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갈 길이 열리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에 운전을 무리하게 계속 강행군울 했다. 가다 보니 앞에 높은 산이 놓여 있었고 개울물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이 개울물을 지나서 저 산 중턱에 올라가면 높아서 프리웨이만 발견하면 살길이 열리리라 생각하고 개울물을 건너려고 시도를 해 보지만 차 바퀴가 완전히 모래 속에 처박혀 꼼짝을 안 했다. 집사는 겁에 질려 시종일관 말이 없었다. 나도 그녀에게 정말 미안 해서 함구 불언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집사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나는 차를 산 중턱에다 내버려 두고 둘이서 걸어서 산에 올라가고 있었다. 건너편 산 중턱에 전기 불빛이 샛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소망이었는지….. 인근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안도감에 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옷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고 밤이라 춥기 시작했다. 불빛이 반짝이는 곳으로 찾아가 보려고 계속 그곳을 향하여 가보지만 우리는 산을 향하여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뭔가 착각 속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겁이 덜컹 났다. 사막에서 신기루를 만난 것처럼 헛것을 보았나 하고 눈을 비벼보지만, 헛것이 아니고 사실이란 것을 발견했을 때 딱 발걸음을 멈추었다. 앞에 높은 철조망이 쳐 있어서 더는 갈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으니 절망 가운데 돌아서는 순간 프리웨이가 눈앞에 확 들어왔다. 캄캄한 밤에 프리웨이에서 달리는 차량의 불빛이 대낮처럼 훤했다. 우리들의 고충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쏜살같이 달려가고 달려오는 차들이 어찌 그리 반가울 수가 있단 말인가. ‘아, 이젠 살았구나!’ 하고 위로를 스스로 하면서 프리웨이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프리웨이 쪽으로 내려가면 우리가 처음 왔던 곳을 더듬게 되면 기도원 올라가는 입구를 발견하게 될 것 같았다. 산밑에 까지 거의 내려왔을 때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산 넘어 산이라고 하듯이 그 높은 철조망이 조금 전에 본 그곳에서부터 계속 내려와 이곳까지 처져 있었다. 어떻게 저 높은 철조망을 뛰어넘을 수가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삐죽삐죽 가시가 돋친 그 철조망을 어떻게 디디고 올라갈 수가 있으며 다시 넘어 내려갈 때도 보통 일이 아니어서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무수한 믿음의 용장들을 생각했다. 믿음으로 승리를 한 그들을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이 난관을 극복하기로 마음먹고 약한 마음을 달래며 주님께 기도했다. ‘이 철조망을 무사히 넘어가게 해 주세요’ 하고 말이다. 그런데 지혜가 떠올랐다. 춥지만 두 사람의 윗도리를 벗어서 철조망에 대고 디디고 넘어가기로 했다. 조금씩 찔리면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뛰어넘을 수가 있어서 자유의 몸이 된 것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 죄 없는 죄수가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에 성공한 기분이었다. 나는 영화 ‘파피용’이 번갯불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파피용은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세 번째 감옥에 갇히지만, 그 누구도 그를 붙잡아 영어(囹圄)의 몸으로 가두어 둘 수가 없었다. 상어떼가 이글거리고 높은 파도 때문에 도저히 탈옥할 수 없는 절벽에 세워진 남미 악마의 섬에 있는 감옥이지만 야자열매로 만든 부대를 바다에 던져 그것을 타고 탈출에 성공한다. 백발이 성성한 그는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되어 파도에 몸을 맡긴다. 그는 평생을 감옥에 있다가 얼마나 자유의 기쁨을 만끽했을까. 그와는 비교도 안 되지만 나 또한 자유를 누리는 기쁨을 주님만 아시리라. 나는 비록 몇 시간 동안 겪은 드라마 같은 악몽이었지만 수년처럼 느껴지면서 아픔이 절절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살펴보니 오른쪽으로 큰 길이 하나 보였다. 집사와 함께 찢어진 옷을 목에다 걸고 걸어서 올라가는데 자동차 한 대가 내려오고 있었다. 기도원 가는 길이 맞는지 물어보고 싶어서 손을 흔들어 차를 세워보려고 하지만 무정하게도 그냥 지나쳐 갔다. 어찌나 야속했던지 눈물이 핑 돌았다. 몰골이 말이 아닌 상태에서 거지나 깡패인 줄 알고 지나쳐 갔으리라 자위를 하면서 계속 걸어 올라갔다. 그러나 은근히 걱정되었다. 또 헛다리를 짚을까 봐…… 자동차 몇 대가 그냥 스쳐 지나갔지만 실망하지 않고 손을 계속 흔든 보람이 있어 마지막 차 한 대가 우리 앞에서 멈추고 차창을 열고 친절히 물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하고, 우리는 천사를 만난 기분이었다. 기도원 가는 길인데 이 길이 맞느냐고 물으니 길을 잘못 들어 왔다면서 저 건너편에 보이는 길이 기도원 올라가는 길이라고 했다. 하마터면 또 한 번 큰 고생을 할 뻔했는데 천사 같은 그 운전자를 통하여 바른길을 찾게 되어 그분께 깊은 감사를 했다. 그제야 안심하고 산꼭대기에 있는 기도원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 보지만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이 잘 옮겨지지 않았다. 높은 산을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면서 집회시간에 늦지 않도록 발걸음을 재촉했다. 캄캄한 밤이라 울창한 나무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 나무 곁을 지나갈 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듯 등골이 오싹하며 섬쩍지근 했다. 집사는 나보다 나이가 젊어 걸음걸이가 나보다 훨씬 빨랐다. 그녀의 뒤를 따라올라, 가자니 무척이나 힘들었다.
한 시간 반이나 걸어서 올라가는데 멀리서 찬양 소리가 은은하게 기도원에서 울려 퍼져 나왔다. 너무나 평화로운 아름다운 찬송가 소리가 우리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고 있었다. 그 무겁던 발걸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 지옥을 헤맨 것처럼 험난하게 사투를 벌였던 일들과 너무나 대조를 이루면서 천국의 소망으로 찬양은 우리들을 위로해 주었다. 교회의 뒷문을 살며시 열고 안으로 들어가 의자도 없는 마룻바닥에 방석을 깔고 풀 석 주저앉았다. 나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려 찬양을 부를 수가 없었다. 살아서 돌아온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더욱 예배 시작하기 전에 도착하여 예배를 평안한 가운데 드릴 수 있게 되어 주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예배가 끝난 후 참석한 청년들과 기도원 원장에게 자동차가 산속 깊이 개울물에 쳐 박혀있 어서 견인해 와야 하는데 길이 너무 험악해서 걱정이라고 했더니 아침에 날이 밝아야 차를 견인할 수가 있다고 했다. 청년들에게 기도원 입구로 들어오는 표시판을 왜 세우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 죄송하다고 연거푸 말했다. 다 준비해놓고 그만 잊어버리고 갖다 세우지 못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한 얘기를 했더니 안쓰러워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나는 잠자리에 들어갔지만 밤새 자동차가 도둑맞을까 염려되어 잠을 설쳤다. 주님께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지켜주시리라 믿고 나중에 잠자리에 편히 들 수가 있었다.
얼마 안 있어 금방 날이 훤히 밝아왔다. 청년들이 트럭을 몰고 차가 있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내 차보다 더 커서 1/3 정도 산길로 진입했을 때 차가 길옆 구석에 처박혀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고속도로 순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우리 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웬 트럭이 난데없이 산으로 기어 올라가고 있고 또 한 대는 산 중턱에 정차해 있으니까 알카에다 테로 리스트가 산에 방화라도 하는 줄 착각한 것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쏜살같이 달려와서 사이렌을 계속 울렸다. 하늘에서는 헬리콥터가 윙윙거리고 마치 007 첩보 영화를 방불케 했다. 나는 또 한 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운전하고 온 청년은 꼼짝 말고 차 안에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다. 절대로 차 문을 열고 내리면 총을 쏜다고 했다. 산으로 도망가는 줄 알고 총을 쏘니 경찰이 접근할 때까지 함구 불언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나는 계속 마음속으로 주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두 경관이 각각 총을 겨누고 차 문에 가까이 와서 손을 들라고 소리쳤다. 완전히 죄인 취급을 받았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입을 딱 벌리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는데, 나는 겁에 질려 사시나무 떨듯이 두 다리를 떨고 있었다. 내 평생 처음 이런 일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심이라’ 하셨다. 같이 온 운전자는 침착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제야 경찰관들은 웃으면서 따끔한 일침을 주었다. 산에 차를 몰고 갈 일이 있으면 경찰에 먼저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 자동차 금지구역에 차 한 대는 산 중턱에 정차해 있고 난데없이 다른 트럭 한 대가 산속으로 달려가고 있었으니 경찰관들도 놀랄 수밖에 없었겠지…….., 나는 혼자 씁쓰레한 미소를 지었다.
자동차를 견인하는데 어떻게 하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면서 나중에 그들의 도움으로 자동차를 끄집어내어 올 수가 있었다. 나는 자동차가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할퀸 자국만 몇 군데 있어서 천만 다행한 일이었다. 나는 시편 23편을 큰 소리로 낭송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원 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산불로 마음고생과 물질의 손실을 보고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집사께 내가 순간적인 상황판단을 잘못해서 고생시킨 것이 매우 미안했다. 이런 연속적인 고난을 통해 우리들의 믿음이 더욱 정금같이 귀하게 된 것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부흥회를 통하여 은혜를 갑절이나 받고 기쁨으로 하산할 수 있어서 여간 기쁘지가 않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고난은 축복의 전주곡이란 부흥사의 말을 회상하면서…..
산에서 내려오면서 내가 산속에서 길 잃고 방황하던 그 산골짜기를 바라보니 초목이 더욱 푸르고 아름답게 보였다. 저 아름다운 산속에서 그처럼 내가 고생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빛이 없는 캄캄한 어두운 산속에서 무서운 악몽 속에 헤매던 일들이 하나하나 너무나 생생하게 청포도 알처럼 알알이 내 심령 속에 박혀 왔다. 추위에 떨면서 사경을 헤매었던 몇 시간의 드라마와 같았던 절박했던 순간순간들 내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내 길을 인도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깊은 산 속으로만 들어가다가 얼어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말이다. 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믿음의 승리가 보석처럼 환희 빛을 발하면서 가는 길이 더욱 밝게 보였다. 할렐루야!!
* 2010년 한국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성경수필 당선작 원고지 40매의 응모작을 요구하여 수필을 매우 길게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