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성경수필(Bible essay)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종류의 유혹을 받고 살아간다. 자기 분수를 알고 분수껏 살아가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법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면 별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유혹 가운데 물질의 유혹을 받을 때가 참 많다. 주로 의식주 문제로 우리는 많은 유혹을 받게 된다. 음식을 너무 탐하면 과식하게 되어 살이 찌게 되고 옷을 탐을 내면 비싼 옷으로 사치하게 되고 집을 탐하게 되면 필요 이상의 호화주택을 구매하여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조상이 즐겨 쓰던 말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말이 있다. 사물을 보면 마음이 동해서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뜻이다. 어쩌면 성경에 나오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따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따 먹었을 때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육신의 정욕) 보암직도 하고(안목의 정욕)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이생의 자랑)’라고 말씀하셨다.
하와가 죄를 지을 때도 눈으로 봄으로 세 가지 죄가 들어오게 됨을 알 수 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도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에게로 쫓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쫓아 온 것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성육신하셔서 사시다가 공생애 생활을 시작하실 때 침례를 받으시고 마귀에게 유혹을 받아 성령의 이끌림으로 광야에서 사십일 금식 기도 후 마귀에게 제일 먼저 시험을 받으신 세 가지의 사건도 마귀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들고나와서 유혹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으로 유혹을 다 물리치시고 승리한 모본을 보여 주셨다. 요셉이나 다니엘과 세 친구도 유혹을 다 물리치고 승리하였다. 성경 육십육 권을 통하여 죄를 범한 사실들을 보면 물질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해 일어난 사건들이 부지기수다. 모세가 시네 산에서 받은 십계명의 제일 마지막 계명도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을 볼 수 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함락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은 금과 동철기구만 여호와 곳간에 들이고 다 불살라 여호와께 바치라고 했지만 아간이 훔친 물건 은과 외투와 금덩이 때문에 아이 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대패하고 말았다. 아간은 그가 훔친 물건과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골짜기로 끌려 갔다. 그곳에서 돌로 맞고 불사르고 죽임을 당하자 여호와의 극렬한 노가 그쳐 아이 성을 무너뜨리고 승리를 끌어낸 사실을 볼 수 있다.
모압 왕 발락의 유혹의 초청을 받아 메소포타미아의 유명한 복술 자 발람이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모압으로 나귀를 타고 갔다. 도중에 여호와의 사자가 길에 칼을 빼 들고 서 있자 나귀가 놀라 밭으로 들어가자 발람이 나귀를 세 번이나 때리렸다. 그러자 나귀가 입을 열고 주인에게 항의하자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가 길에 선 것을 보고 회개하고 길을 돌이킨 것을 볼 수 있다.
사무엘을 통하여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 초대 왕이 된 사울도 아말렉과 싸울 때 아말렉의 모든 것을 진 멸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 그러나 그 명령을 어기고 아말렉 왕 아각과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진 멸하지 않았다고 사무엘에게 말했다. 사무엘 상 15장 22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하면서 사무엘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울을 버릴 것이라고 경고한 것을 볼 수 있다.
솔로몬 왕도 부귀가 극에 달하자 여자에 대한 탐욕이 생겨 이방인 처첩을 천명을 거느린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말년에는 이방 신을 섬기는 범죄를 하나님 앞에 저지르고 말았다. 신약시대에도 가롯 유다도 돈궤를 맡고 있다가 물질에 욕심이 생겨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고 말았다. 초대교회 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물질의 탐욕 때문에 성령을 속인 죄로 하나님께로 부터 죽임을 당한 것을 볼 수 있다.
성경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 하셨다. 즉 탐욕이 생기면 욕심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참 어렵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유혹에는 불신자나 마찬가지로 약하다. 깨어 있지 아니하면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다닌다고 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늘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며 실생활에 적용해 살도록 노력하는 일에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되겠다.
삼십여 년 전 미국에 처음 이민 왔을 때 큰 보험회사에 들어가 보험 일을 할 기회가 있었다. 보험 대리인들은 메네이저(Manager) 를 비롯한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었다. 내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이었지만 이민 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어서 면허를 두 개 따서 보험 일을 시작했다. 보험대리인들은 봉급을 받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을 파는 실적에 따라 돈을 벌게 된다. 나는 그래도 실적이 좋아 상부로부터 상도 타고 일을 잘 해 나가고 있었을 때 뜻하지 않게 근무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허리를 다치게 되어 육 개월 동안 직장에 못 나가고 집에서 쉬면서 병원에 다니며 허리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다치기 전 많은 일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 지급되는 책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에다 전화해서 메네이져에게 물어보면 나에게 온 우편물이 없다고 딱 잘라서 말했다. 꼭 올 돈이 있었는데 한 달 두 달을 기다려도 나에게 온 우편물이 없다는 사실에 나는 적이 놀라 본사에다 전화해서 알아보았다. 내가 책크를 받아서 책크 이면에 사인해서 돈을 찾아갔다면서 무슨 소리냐며 회사 측에서 오히려 나에게 화를 내었다.
나는 돌아온 책크(canceled check)를 복사해서 보내 달라고 했더니 회사에서 우편으로 책크 앞뒤 복사본을 보내왔었다. 나는 복사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책크 이면에 사인한 사람이 누구인지 당장 알아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메네이져 였다. 여자분인 메네이져는 이름이 나하고 거의 비슷했다. 김 수영 대신 김 수 x이였다. 미들 네임(middle name initial)은 잘 쓰지 않으니 영어 이름은 미들 네임 빼면 내 이름과 똑같았다. 그녀는 Sue Kim이었고 나는 Soo Kim이었다.
내가 아파서 누워 있는 동안 내 책크를 받아서 나에게 주지 않고 나와 이름이 같은 점을 이용하여 자기가 나 대신 사인을 하고는 자기 은행 계좌에다 입금을 한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막 떨려왔다. 서울에서 모 여자대학을 나오고 보험회사에서 메네이져 까지 된 지성인이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사실에 혐오감마저 느꼈다. 내가 이래서는 안 되지 하고 마음을 추슬러 보지만 믿기지 않는 사실에 나는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여러 번 전화해도 모른다고 딱 시치미를 떼던 생각이 떠올라 분노마저 느껴졌다. 그녀도 모 교회 집사였다. 자기 교회에 와서 간증집회를 해 달라고 해서 담임 목사님을 뵙고 간증집회를 인도한 적도 있던 터라 나는 하나님께 그녀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녀는 보험업계에 꽤 오래 몸을 담고 있어서 보험사업을 잘하고 있어서 돈을 많이 벌고 있었기 때문에 궁핍해서 저지른 위조범(forgery)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범행 동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견물생심에서 생겨난 순간적으로 탐욕이 발동되어 저지른 범죄라고 생각하게 되니 그녀가 불쌍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해서 만나자고 했다. 사실은 사실대로 밝혀야 하기 때문에 칼자루는 내가 들고 있었지만, 그녀가 어떻게 변명을 할까 궁금했다. 그녀를 모 제과점에서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책크 복사본을 끄집어내어 보이면서 어쩌면 이렇게 남의 돈을 가로채 놓고 전화할 때마다 모른다고 시치미를 뗄 수 있느냐며 나는 항의를 그녀에게 했다. 그녀는 얼굴이 경직되면서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렇게 당당하게 고자세로 대하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고개를 푹 숙인 체 죽을 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구했다.
자기가 써 버린 내 돈을 다시 돌려주고 마음 고생시킨 것에 대해 배상까지 하겠다며 싹싹 빌었다. 제발 경찰에 위조범으로 고발 하지 말아 달라며 그야말로 애걸복걸이었다. 내가 경찰에 신고하면 그녀의 인생은 끝나는 것이었다. 남편이 간암으로 죽고 딸 둘을 키우며 보험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녀의 장래를 망치게 할 수는 없었다. 나의 잃어버린 돈만 찾으면 나는 그것으로 감사할 일이었다. 배상도 필요 없고 나의 잃어버린 돈을 당당히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나에게 그동안 스트레스 준 것 생각하면 혼 장을 내주고 싶은 마음도 스쳐 지나갔지만 구태여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시는 앞으로 그런 행동 하지 말라며 훈계하듯 말하고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라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등을 굽히면서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하면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씁쓸한 미소가 입가에 떠오른다. 그 후 개과천선하여 두 딸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아가기를 빌 뿐이다. 아무리 내가 속이 상했어도 그녀를 경찰에 고발하지 않았던 내 양심과 신앙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오늘도 한번 활짝 웃어본다. 이민 생활 속에서 웃지 못할 뼈 아픈 교훈들을 생각하면서…..분명 그녀도 나처럼 과거를 회상하면서 아찔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자기를 용서해준 나에게 감사하면서 살아가리라고 생각해본다.
악을 선으로 갚으라는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며 순종하기를 참 잘 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쾌해 진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기 때문이다. 오직 믿음으로 의인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