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TRAK 기차를 타고 태평양 연안 해변을 누비다
단조로운 일상생활에서 리듬을 깨고 변화를 가져와 우리의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며 인생의 안목을 높이고 견문을 넓히는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올해 추수감사절을 맞아 딸이 사는 새크라멘토를 방문하게 되어 매우 마음이 기뻤다.
비행기를 탈 것인가 아니면 기차를 탈 것인가 생각하다가 비용도 반값이고 Coach 칸에 편안히 두 다리 쭉 펴고 시원한 바다가 펼쳐지는 태평양 연안을 구경하기로 했다. 기차를 타기로 마음먹으니 기분이 여간 상쾌하지가 않았다. 비록 열네 시간이란 긴 여행이지만 나에겐 둘도 없는 휴식과 독서, 바다를 즐기는 관광의 시간이라 기뻤다, 사색과 명상의 시간이요, 정말 오랜만에 여유 있는 값진 삶의 진수를 맛보는 시간이라 오히려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삐걱삐걱 돌아가던 내 인생 수레바퀴에 윤활유 역할을 하여 앞으로 더 힘차게 달릴수 있는 촉매제가 바로 이번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어린애처럼 기쁘기만 하였다.
몇 년 전 동생과 함께 관광회사를 통하여 기차여행을 한 적이 있다. 태평양 연안을 끼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 아름다운 해변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감탄사를 연발, 함께 즐겼던 기차여행. 그러나 북가주 새크라멘토까지 가지 않고 중간 지점에서 내려 허스트 캣슬을 관광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은 새크라멘토까지 달리는 기차여행이라 흥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AMTRAK 기차여행은 내가 좋아하는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해변들을 끼고 달리므로 내가 선호하는 기차노선이다. 새크라멘토가 캘리포니아 수도로 역사적인 유서가 깊은 도시인데 이 기차노선에 자리 잡고 있어서 퍽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기차를 탔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차 안에서 읽을 책 두 권과 김밥과 음료수, 그리고 깎은 과일을 싸서 아침 일곱 시에 애너하임 에인절스 스타디움 역에 도착, 일곱 시 사십오 분에 기차는 출발했다. 한시간 있다가 로스앤젤레스에 도착 새크라멘토로 가는 기차를 갈아탔다.
세 시간 정도 지나자 그 아름다운 유명한 해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타 바바라 해변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바다 한복 판에 채널 섬들이 여자의 나신이 옆으로 누운 아름다운 모습으로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피스모 비치를 지나 산타 마가리타 해변에 이르면 그 절경이 극치에 달한다. 나는 책을 읽다가 말고 바다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하염없이 쳐다만 보고 있었다.
겨울 바다는 파도가 심하지 않고 물결이 잔잔한 바다는 에메랄드빛 녹색으로 출렁거렸다. 좀 더 멀리 바라보이는 바다는 짙은 남빛이었다. 신기하게도 아마존 강의 신비한 두 물결처럼 두 가지 색깔로 엄연히 구분되어 있었다. 떠오르는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 물결이 눈부셔 겨울철에 오므라든 눈의 동공이 더 오므라들었다. 바다 한가운데 석유 시추 유정 플렛폼들이 군데군데 보이는데 처음엔 큰 배들인 줄 착각을 할 정도로 배와 비슷하게 보였다.
해변가에 갈매기들은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번갈아 날아오르며 떼를 지어 유유히 날아다니는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한가롭고 겨울을 즐기는 아름다운 모습인지 인간인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항상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왔으니까 나를 돌아보게 하는 새들이 고맙기까지 했다. 추운 겨울철에도 서핑(surfing)족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캠핑을 하면서 서핑을 즐기는 여유 있는 모습들이 부럽기 그지없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말을 타고 달리는 승마 자들도 기차가 지나가니까 속도를 줄이고 낯 모르는 승객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인사했다. 따뜻한 마음씨에 감사한 마음으로 나도 기차 안에서 답례로 계속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내 손을 못 보았다 해도 나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육지의 산들은 봄철처럼 울긋불긋한 꽃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끝없이 넓은 들녘은 채소를 심어 한창 푸르게 자라 봄을 연상케 했다. 이 채소들은 가주 뿐만 아니라 타 주에도 보급이 된다고 하니 얼마나 넓은 채소밭인지 가히 짐작이 갔다. 모종 하는 포도나무 묘목들이 한없이 이곳저곳에 심겨 있어서 또한 보기가 좋았다.
사막지대인 캘리포니아 산이지만 벌거숭이 산이 아니고 푸른 산으로 단장 여행자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수년 동안 가뭄이 심한데도 나무들이 어떻게 푸르게 자랄 수가 있을까 하고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 여자 승객에게 물어보았다. 그 여자 승객의 말은 자기 생각에는 땅속 깊은 데서 물을 빨아드리고 밤에는 바다가 가까워 이슬이 많이 내려 수분을 섭취해서 죽지 않고 푸르러 청청 녹색 삶을 자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 승객의 말이 일리가 있어 보여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샌 루이스 오비스포를 지나서는 바다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기차는 산속으로 방향을 돌려 달려가고 있었다. 기차가 평지를 달리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일인지 뱀처럼 꼬불꼬불한 철로를 따라 산속 언덕길을 계속 오르면서 높은 산 속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캄캄한 터널을 몇 개를 지나면서 아슬아슬한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차가 좌우로 흔들리면서 롤러코스터(Roller coaster)를 타는 기분이어서 겁이 몹시 났다. 산밑을 내려다보니 101 프리웨이가 까마득히 보이고 달리는 자동차들이 산밑 아래서 성냥갑이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기차가 거의 산 높은 정상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기차가 계속 올라갈 때 저 멀리 태평양 바다가 조금 보이고 해변에 있는 바위도 보였다.
정말 땀을 쥐게 하는 기찻길이었지만 내려갈 때는 완만한 경사길이어서 안심하고 하향하는 기차에 몸을 맡길 수가 있었다. 얼마 안 가서 확 트인 시원한 넓은 바다가 시야에 들어오면서 조마조마 가슴 졸이던 마음의 스트레스를 확 씻어 주었다. 샌 호세의 바다가 보이고 샌타 클라라 해변이 보이면서 샌프란시스코 근접 도시인 오크랜드가 보였다.
명문 UC Davis 대학교가 있는 데이비스 시에 도착하니 그다음 정거장이 새크라맨토라고했다. 밤 자정 열두시에 새크라멘토에 무사히 도착하니 딸과 사위가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오랜만에 해후의 정을 나누며 딸네 집에 도착 여장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외손녀 딸들은 깊은 잠에 취해 외할머니가 온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꿈 나라로 여행을 가서 그곳에서 보고 싶던 외할머니를 만나는 꿈을 꾸리라…
나는 외손녀들이 보고 싶어서 자는 침대에 각각 찾아가 뺨에다 뽀뽀를 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내 침대로 내려와 편히 잠들 수가 있었다. 아름다운 해변들을 꿈속에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드니 단잠이 나를 꿈나라로 안내하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오기를 참 잘했구나! 생각하는데…… (재작년 추수감사절에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