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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인생                                                                                      

 

   고고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 살면서 건강하게 살다가 자기의 수 한을 다하고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명에 횡사 혹은 병사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옛날에는 의술이 발달을 하지 않아 주로 청진기로 환자를 진단하기 때문에 오진이 많았고, 암으로 죽어가도 암인 줄도 모르고 죽어갔다. 지금은 각종 의학 기기가 발달하여 웬만한 병은 전자기기로 거의 다 발견할 수 있다. 암은 수년 내에는 별로 자각증상이 없어 환자 자신도 암에 걸렸는지 모르고 있다가 암이 어느 정도 진전이 된 다음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엔 수술해도 오래 살지를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다. 일단 수술을 해도 몸 다른 부위로 전이되면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내 주위에도 암으로 고생하는 친지가 여러분 있다. 암 수술을 받고 시한부 삶을 선고를 받았는데도 기적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며 십 년 이십 년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 한 분이 사부인이다. 십여 년 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는데 오 년 있다가 유방암이 재발이 되어 또 수술을 받고 치료를 해 왔다. 설상가상으로 또 폐암에 걸려 지금 수년 동안 고생하고 있다. 며칠 전에 의사로부터 앞으로 일 년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암이 폐 전체에 번졌고 간에까지 전이되어 더는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한다. 더 이상 수술도 할 수가 없고 항암 치료도 부작용이 심해 그만 중지하고 말았다. 당뇨병까지 겹쳐 두 발에 피가 안 통해 발이 쥐가 나고 저려서 잠도 잘 잘 수가 없다고 하니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어안이 벙벙하고 가슴이 답답해 왔다. 

   암이 왜 발병하는지 우리는 귀가 아프도록 들어와서 잘 알고 있다. 제일 큰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한다. 사부인은 남편이 갑자기 죽자 너무나 큰 충격과 스트레스로 몇 년을 식사를 못 하고 살다가 결국 암에 걸리고 말았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재발이 되었고 이제는 내장 여러 기관에 전이되어 회생 불가능으로 판정을 받고 말았다. 일 년밖에 못 산다는 사형선고와 같은 의사의 진단을 받았을 때 얼마나 앞이 난감하고 슬펐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전화로 본인과 얘기를 해 보면 뜻밖에도 침착하고 태연하고 죽음을 초월한 하늘나라의 소망 때문에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리려고 전화를 했지만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전화를 끊게 되었다. 본인이 너무 슬퍼하면 같이 사는 가족들이 매우 힘들 텐데 다행하게도 명랑하게 담담히 하루하루를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간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남의 얘기니까 이렇게 여유 있게 얘기하겠지만, 막상 내가 당사자라면 나는 파랗게 질려 아무 말도 못 하고 파김치가 될 것 같다. 놀랍게도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 부인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주위 가족들에게 그동안 베풀지 못한 사랑을 온 힘을 다해 베풀며 사는 모습이 눈물겹다. 딸과 사위도 살아생전 효도를 다 하려고 안 간 힘을 쓰고 있다. 되도록 여행을 많이 모시고 가려고 한다. 마음 편하게 해 드리고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도 없지만 남은 삶 동안 마음 편하게 해 드리려고 사위와 딸이 애를 쓰는 모습이 기특하기만 하다. 

   미국에 사는 동안 미국의 유명 인사들이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남겨 준 교훈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재클린 오나시스 케네디 부인,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 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 미국의 전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등 여러사람들이 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 중에도 최근에 나의 심금을 울린 카네기맬런대학의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였다. 

   그는 2006년 9월 췌장암 선고를 받고 2007년 9월 마직막 강의를 제자들과 동료 교수들이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끝내고 얼마후 조용히 48세로 생을 마감했다. ‘상처입은 사자라도 포효하고 싶다’며 ‘저는 췌장암에 걸렸고 몇 달 못삽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감사하세요, 정직하세요.’ 등 말을 남기고 그는 떠났다. 76분의 강의를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1000만 명에게 감동을 준 ‘웰 다잉(well dying)…마지막 강의’는 2008년 출간되어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로 한 해 동안 600만 불 수익을 올렸다. ABC 뉴스가 2007년 올해의 인물로’ 뉴욕타임스가 ‘2007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으로 그를 꼽았다. 

   그다음으로 내 마음을 감동을 준 사람은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다. 영화 ‘슈퍼맨’ 시리즈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던 그는 1995년 경마 경주 대회에 출전했다가 말 위에서 떨어지면서 목뼈 부위 척수를 다쳐 목 부위 아래가 마비됐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재활에 나서는 한편, 정력적인 사회활동을 펼쳐 영화보다 더 큰 감동을 안겨 왔다. 자전적 회고록인 ‘불가능이란 없다(Nothing is impossible)’ 란 책을 써서 많은 사람을 감동을 준 바 있다. 2004년 10월 10일 52세의 일기로 사망하기까지 장애인들의 복지와 약자에게 불리한 의료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그는 ‘그리스토퍼 척수마비 재단’ 등을 설립했고 척수장애인들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의회에 로비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영화계에도 다시 돌아와 1998년, 세계적인 거장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물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리어 윈도(이창)’란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특수재활운동 등의 끈질긴 재활 노력으로 2000년에는 일부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게 됐는가 하면, 한때 다리와 팔이 더 강해지기도 했다. 또 다른 신체 부위에도 감각을 되찾기도 했다. 죽기 전까지도 그는 휠체어에 의지한 체, 치료를 위한 인간 줄기세포연구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강연에 나서는 등 국제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오랜 침대 생활과 휠체어 사용으로 욕창 등 합병증으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그의 부인이 밝힌 바 있다. 그가 반듯이 재활에 성공해 다시 정상인으로 돌아올 줄 알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의 급작스러운사망은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시한부 인생을 산 사람들이 무척 많겠지만, 위의 두 사람만 예를 들어 보았다. 랜디 포시 교수는 췌장암이 간에까지 전이돼 몇 달 못산다는 선고를 받고도 끝까지 최선의 삶의 본을 보여 주었다. 크리스토퍼 리브는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극복할 것이라는 생에 대한 집념으로 삶을 불태우다가 예기치 못했던 합병증으로 죽게 되었다. 두 사람이 모두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공수래공수거 인생인데 욕심 없이 마음 편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값진 삶을 감사하면서 베풀며 사는 삶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오늘 모처럼 봄 날씨처럼 따뜻한 날을 맞아 아이젠하워 공원에 나가 벤치에 앉았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수백 마리의 오리떼들이 한가하게 호수 위로 헤엄치며 노니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부럽기까지 했다. 사부인의 생명이 좀 더 길어지기를 바라며 모든 근심을 하늘에 날려보내니 내 마음은 오리떼처럼 평화로웠다. (사부인은 결국 일 년도 다 못사시고 올해(2011년) 6월 17일에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