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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                                                                                          金秀映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다가 절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당황하여 피할 길을 찾지 못할 때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자살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고 이곳 교포사회에서도 자살이 종종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문제는 자살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열쇠가 못된다는 데 비극이 있다. 자기 혼자 죽으면 그만이란 생각은 극히 이기적인 생각이다. 뒤에 남아 있는 사랑하는 가족이 얼마나 고통당하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자기 생명이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자신을 죽일 수 없다. 자살도 엄격히 따지면 타살이나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죽인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죽인 것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우리가 생명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대로 우리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생명은 자기 소유물이 아니란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목숨이 백척간두에 매달려 있어 위태로운 상황이라도 정신을 차리면 살아날 방법이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자살하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를 살겠다는 용기로 바꾼다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삶과 죽음 사이에는 종이 한 장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순이는 어느 노년의 의사 아내였다. 남편은 내과 의사로서 평생을 환자들을 잘 돌보아 명의로 소문이 나 있었다. 또순이는 자식들을 훌륭히 키우고 남편의 내조자로 부족함이 없는 착하고 어진 아내였다. 노년에 접어들자 집에서 쉬면서 여가를 즐기고 취미 생활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다복해 보이는 아내요, 어머니요, 가정주부로서 손색이 없는 알뜰살뜰 살림 잘하는 빈틈없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 여인에게 먹구름이 맴돌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물질의 욕심이 생겨 이성을 잃고 부정한 일을 저지르는 데 손을 데기 시작했다. 마치 도박에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것처럼 손을 떼지 못하고 더욱 깊숙이 죄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눈덩이 굴리듯이 죄가 점점 커지면서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처럼 결국 법망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소셜 워커와 둘이서 짜고 환자들의 진료비 청구서를 작성할 때 치료받지 않았는데도 받은 것처럼 허위 작성을 해서 메디케어에다 과다 진료비를 청구해서 돈을 엄청 받아 내었다. 남편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아내의 사기사건을 알아낸 남편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놀라움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내를 조용히 불러 ‘당신이 저지른 죗값은 당연히 치러야 하니 법정에 설 때 사실직고 하고 응당한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남편이 서슬이 시퍼레서 꾸짖었다고 한다.        

   아내는 자기가 저지른 죗값은 마땅히 받아야 하지만, 남편의 명예에 훼손이 될까 봐 무척 고심했고 남편의 얼굴에 먹물을 끼얹은 것 같아 남편 볼 면목이 없다며 무척이나 고민해 왔다고 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기로에서 어쩔 수 없이 죽음을 택하고 말았다.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친구 목사가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장례식 예배에 기도를 부탁받았지만 자살한 사람에 대해 무어라 기도해야 할지 난처해서 기도를 거절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여의고 의사 남편은 실의에 빠져 하루하루의 삶이 마치 지옥과도 같다고 했단다. 아내를 많이 꾸짖었던 것이 자책이 되면서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계속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되풀이한단다. 자기만 믿고 치료받고 있는 사랑하는 환자들 때문에 하루하루 살아간다고 한다. 환자를 치료해 줄 의무가 있으므로 자기 목숨을 끊지 못하고 있단다.          

   나는 친구 여자 목사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마치 내가 쇠망치로 한데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해졌었다. 남편 되시는 의사는 친구 목사의 주치의기 때문에 이 의사를 오랫동안 잘 알고 있는 사이였다. 의사 선생이 죽고 싶다고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이 메어 오며 아프다고 한다. 나는 친구에게 병원으로 심방을 같이 가서 자살을 못하도록 사전에 막고 예수 믿게 해서 영생의 소망으로 살아가도록 하자고 굳게 약속했다.        

   또순이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어려움 없이 잘 살아가는데 왜 범죄를 저질렀을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물질을 많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란 성경 말씀이 생각난다.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나님은 하와에게 말씀하셨지만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게 보일 때 먹고 싶은 욕심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물론 먹는 날엔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에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와 같이 되겠다는 교만 죄도 함께 지었다. 아담 하와의 죄의 유전인자가 인류의 후손들에게 유전되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란 성경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 우리의 죄 문제가 다 해결된다. 행복하고 단란했던 가정이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이 나 지옥으로 변한 이 비참한 현실을 직시만 하고 있을 것인가. 다시 실낙원에서 복낙원으로 바꾸는 유일한 길은 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길만이 오직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남편 되시는 의사 선생께 삼가 위로의 말씀을 올리면서 절망 뒤에 소망의 빛이 비취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늘 추억의 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