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타바바라 바닷가에서
유숙자
10월 바다는 짙고 푸르다. 고요를 삼킨 가을 바다가 높아 가는 하늘 아래 비스듬히 떠 있다. 이른 아침이어서일까. 그림처럼 보이던 요트 한 척 없다. 바다에 가을이 내리면 그곳은 사색의 장이 된다. 축복처럼 내리는 빛을 길게 끌고 며느리와 함께 텅 빈 바닷가를 걷는다. 가을빛을 닮은 갈색 머릿결이 곱다. 물새 한 마리가 끼룩거리며 허공을 가른다. 3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은 며느리는 퇴원 후 자주 바다를 찾았다. 바닷가 산책이 건강 회복에 좋다는 의사의 권고로 시작한 유산소 운동이다.
작은아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샌타바바라 바닷가는 해안선이 완만하고 모래사장이 넓어 산책하기 좋다. 이 풍광은 나폴리에서 쏘렌토로 가는 해변처럼 휘어져 있어 거닐 때마다 추억에 잠기게 한다. 바닷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본다. 솨~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장엄한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들리고 바다를 담으려 숱한 시간을 쏟았던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 같기도 하다. 파도 소리에 취해 걷다 보면 내가 바다가 되고 파도가 되고 높낮이가 규칙적인 음률이 된다.
모래 위에 즐비하게 널려진 새들의 발자국을 본다. 손가락을 활짝 편 단풍잎 같다. 매우 정교하여 차마 밟고 지나기가 미안스럽다. 하늘과 바다를 배경 삼아 모래 위에 찍어 놓은 판화이다. 자연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리에게 설렘과 낭만을 안겨 준다.
며느리는 바다에 오면 긴장이 풀리는 것 같다. 지극히 사소한 일상사에서부터 아이들과 지내면서 어려웠던 일들을 딸이 친정엄마에게 말하듯 쏟아 놓는다. 직업 중 엄마라는 Job이 가장 힘든 것 같다면서.
남편이 섭섭하게 했던 일들도 털어놓는다. 그럴 때면 나는 가차 없이 아들을 나무라고 며느리 편에 서 준다. 무조건 '네가 옳다.' 이다. 며느리는 신이 난다. 밀물지고 썰물 지는 우리 인생. 끊임없이 부딪히며 살아가는 삶. 고집 세고 표현력이 부족한 아들이기에 이해 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것이다. 며느리는 두 팔을 벌리고 바다를 안는다.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하늘과 바다와 바람과 물새가 우리 두 사람의 품에서 화목하다. 아! 이 시간이 좋다.
아들이 이곳 샌타바바라에 둥지를 튼 지 어언 30여 년이 되었다. 샌타바바라 대학에 입학해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그대로 모교에 머무르며 가정을 꾸렸다. 아들 말대로 샌타바바라 맨이 되었다.
오래전 작은아들이 저희끼리 약혼식을 마쳤다며 백인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약혼을 했다니 섭섭해서 전화도 받지 않을 때이다. 그즈음 서울에서 언니가 오셨는데 아들은 이모가 계신 틈을 이용해 밀고 들어왔다. 처음 보는 며느릿감은 우아하고 고왔다. 외할머니가 직접 구우셨다는 작은 도자기 접시를 선물로 들고 왔다. 도자기 위의 카드에는 손녀를 보내는 인사가 적혀 있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크리스천 집안이라는 것이 반가웠다. 흔히 주변에서 새 식구를 들인 뒤 적잖이 종교 갈등을 겪는 것을 봐 온 탓이다.
전부터 예비해 두었던 예물 상자를 아들에게 건넸다. 신부 될 아이의 취향에 맞게 준비하라며 세팅에 드는 비용을 얹어 주었다. 아들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이미 자신이 다 준비했고 오늘 착용하고 왔다고 했다. 오가며 며느리를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손가락에 반지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이른 결혼을 했기에 본인이 예물을 준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농담을 한 줄 알고 다시 물었다. 다이아몬드로 훌 세트를 해주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찬찬히 며느리를 살펴보았다. 눈에 띄기조차 쉽지 않은 작은 알들이 손가락에서, 목에서 귀에서 빛나고 있었다. 아들이 대견하면서 한 편 섭섭하여 내가 지니고 있던 반지 한 개를 며느리에게 주었다. 며느리는 한사코 거절했다. 결혼 예물은 남편 될 사람에게서만 받고 싶단다.
아들 며느리의 결혼식이 샌타바바라 교회에서 행해졌다. 식장은 꽃가루 알러지가 있는 며느리를 위해 크리스마스트리와 포인세티아로 장식했다. 초록빛 행운목이 둘려 있어 분위기가 산뜻 했다.
며느리가 입은 웨딩드레스가 인기였다. 연미색 새틴에 고급 레이스로 장식되어 아름다웠다. 외할머니께서 52년 전에 입으셨다는 웨딩드레스로 보관이 잘되어 반세기가 지났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하고 고왔다. 생화 대신 신부의 친정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씰크 부케로 더욱 돋보이는 신부를 보며 그 가정의 흐름이라 할까 매사 정성 속에 이루어지는 면면을 볼 수 있었다.
아들보다 세 살 연상답게 며느리는 매사 침착하고 마음 씀이 한결같다. 알러지가 심하여 약을 달고 살아 아기를 가질 수 없기에 흑인 아들과 백인 딸 남매를 입양했다.
이제 지천명에 닿은 며느리는 힘들었던 삶의 한고비를 넘겼기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즐기며 누리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하늘을 보고 바다를 호흡하며 삶의 질곡까지 고스란히 품으며 무엇에든 감사하고 싶은 마음일게다. 그것은 죽음을 체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 40세 중반에 양쪽 유방을 절제했으니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생과 사를 온전히 전능자께 맡기고 믿음 안에서 잘 감당해 준 며느리가 고맙다. 신앙의 힘으로 극복했으니 새 삶을 주신 하루하루가 감사와 경이가 아닐 수 없다. 퇴원하던 날 Blue Sapphire 반지를 며느리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9월생인 며느리의 탄생석이기도 하고 사파이어는 희망의 푸름이기에 건강하고 행복하라는 마음을 담아 주었다.
어느새 바닷가 둔덕까지 왔다. 아침 산책의 마지막 코스다. 느릅나무에 가을 햇살이 가득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빛과 그늘이 나뭇가지 사이를 넘나들며 춤을 추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 하루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것. 감사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샌타바바라 바다는 차분하고 싱그럽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