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처럼

유숙자

전에는 약속이 없어서 못 만나던 친구들이 이제는 약속해도 만나기 어렵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니고 관계가 소원해져서도 아니다. 단지 할머니가 된 탓이다. 자녀 결혼시키고 이제 얽매었던 것에서 놓여나 중년의 노래를 구가하나 싶더니 그도 잠시, 손주들을 봐줘야 한단다. 뒤늦게 아이들 스케쥴에 따라 움직여야 하니 힘들고 팍팍 늙는 것 같다고. 말은 그렇게 해도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행복한 비명을 코에 거는 친구들이 나는 한없이 부럽다.

 

손주는 자기 자식을 기를 때와 달리 그렇게 예쁠 수 없단다. 본래 아기를 예뻐하는 사람이야 태생적으로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라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던 친구들도 어린 것들 앞에선 맥을 못 춘다. 손주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을 하면서도 친구들과 만나는 날이면 누구랄 것도 없이 사진을 꺼내 들고 자랑하기 바쁘다. 셀 폰 앞면 장식은 모두 예쁜 손주들 차지다. 벌금을 물린다면 자랑을 좀 그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벌금을 내고라도 귀여운 내 손주를 자랑하고 싶어 할 친구들이다. 웬만해서는 기가 죽지 않는 나지만 화제가 손주 쪽으로 흐르면 풀이 죽어 금이라는 침묵을 택한다.

 

쇼핑몰이나 어느 장소에서 아기를 보게 되면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나도 손주가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 잠시 시선이 아기에게 쏠린다. 둥그렇게 부른 배를 훈장처럼 앞세우고 걷는 임산부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우리 며느리들은 저마다 타당한 이유 하나씩 내걸고 아기 갖기를 원치 않으니 남들 하기 좋은 말로 “왜 아무 말 않고 보고만 있느냐?” 하지만 보고 있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나로서는 ‘행여나’ 에 목을 맬 뿐이다.

 

어느 날 우리 집에 파랑새가 날아들었다. 찌루찌루와 미찌루가 찾아 떠났던 그 파랑새가 행운을 물고 나를 찾아왔다. 말수가 적고 점잖은 부부가 생후 6개월가량의 예쁜 딸 문정이를 데리고 우리 곁으로 왔다. 문정이네와 이웃하며 지내고부터 조용하던 우리 가정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매일 보다시피 하니 한 가족 같고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예의 바르고 속 깊은 문정이 부모가 곁에 있으니 든든하기 짝이 없다. 손주를 바라고 원하던 나에게 이렇게 큰 행운이 올 줄이야. 나는 딸 내외와 손녀를 함께 얻었다. 문정 엄마 역시 우리 가족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문정이네와 관계는 둘째 승호가 태어나고 자라며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한결같았다. 남편은 성품이 냉정하고 차분한 편이라 희로애락을 표면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인데 문정이 남매에게는 각별하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표정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삼촌이라 불리는 큰아들도 마찬가지다. 사무실에, 집에, 문정이와 승호의 사진을 진열해 놓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자신이 안겨 드리지 못하는 손주 재미를 문정이 남매가 대신해주니 다행스러워한다.

 

작은아들이 결혼 10년 만에 아기를 입양했으나 문정이 남매의 위치는 확고부동했다. 샌타바바라에 사는 작은아들은 일 년에 몇 번 다녀가는 것이 고작이고 큰아들은 아직도 아기가 없으니 문정이 남매를 내 친손주로 착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작년 여름, 문정이가 대학으로 진학하고 첫 방학을 맞아 할머니를 보러 왔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보고 처음이니 얼마나 컸을까, 대학 생활은 재미있는지, 친구는 많이 사귀었는지 궁금했다.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문정이는 훌쩍 더 자란 모습에서 숙녀티가 물씬 풍겼다. 방학기간 동안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한단다. 엄마가 대학 다닐 때 힘들게 벌어 공부했으니 너도 경험을 쌓아 보라 했단다. 첫 번 받은 월급으로 선물을 준비해 왔다. 파트 타임이니 시간도 적고 쥐꼬리만 한 월급일 게다. 부모님과 동생, 외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기에 통틀어 다 쓴다 해도 모자랄 것 같은데 우리에게까지 마음 쓴 것이 기특했다. 손녀라는 이름으로 처음 받는 선물이다. 콧마루가 시큰했다. 종이 가방 속에는 예쁘게 포장한 선물과 카드가 들어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번 여름에 나의 첫 번째 직업을 가졌습니다. 한국 풍습에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긴 내복을 사드린다는데, 지금은 여름이니까 긴 내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내복 대신에 이 선물을 받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저를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서툰 한글 글씨체로 틀리지 않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찌 이리 잘 컸을까. 그 나이면 갖고 싶은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으련만 스스로 선물 생각을 했다는 문정이가 무척 대견하고 신통했다. 나에게는 예쁜 앞치마와 고양이 얼굴이 붙여진 부엌타올, 남편에게는 양말이다. 문정이를 안아주었다. 나보다 키가 커서 내가 안긴 것 같다. 월반해서 대학생이 되었지 아직은 어린데도 대갓집 규수처럼 의젓하다. 미국에서 자란 아이 중에 문정이 남매만큼 예절 바르고,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아이들이 흔치 않을 것이다. 남매가 부엌일도 잘 거 들고 공부를 잘해서 월반에, 대통령 표창까지 받아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문정이 아빠, 엄마의 엄격한 교육으로 한국말 구사에 무리가 없다.

 

우리 가족이 이곳에서 살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부모 형제와 친척이 없다는 홀로 감이다. 이따금 명절 때면 왁자그르르 함께 모여 지내던 서울이 무척 그리웠으나 문정이네가 우리 곁으로 오면서부터 달라졌다. 친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처럼 다정하니 이런 행복이 또 있을까. 그건 전적으로 문정이 부모의 따뜻한 배려로 이루어졌다. 문정이 외조부모님이 뉴욕에 사실 때나 이곳 LA로 오셔서 살고 계셔도 우리를 가족처럼, 또 하나의 부모처럼 생각하고 20년을 한결같이 자주 내왕했기에 아이들도 저절로 그 본을 받게 되었다. 우리 가정의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함께 하는 기쁨을 주기에 우리 가족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문정 엄마를 내 친 딸로 착각하는 즐거움을 안긴다. 요즘은 자기 자식들도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를 잘 찾지 않는데 이렇게 특별한 인연을 맺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오늘은 문정이네 가족이 오는 날이다. 아이들이 “할머니 표 냉면”이 먹고 싶단다. 나는 며칠 전부터 동치미를 담그고, 육수를 우리고, 갈비를 사다 재우고,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할머니~, 하고 부르며 내 품에 안길 문정이와 승호를 생각하며 해물 전까지 만들었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즐겁게 해준다.

 

시계를 본다. 아이들이 도착하려면 15분 정도 남아 있다. 앞치마를 벗고 방으로 들어가 얼굴을 매만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처럼 가슴이 설렌다.

벨 소리가 난다. 아이들이 온 것 같다.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