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삶

유숙자

이른 아침, 고요가 감도는 글렌데일 갤러리아는 장애인들에 의해 깨어난다. 상점들이 개점하기 두어 시간 전쯤부터 휠체어에 의지한 신체 장애인이 홀 안에 들어와 삼삼오오 흩어지며 자리를 잡는다. 그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다. 곁에서 그들의 수족이 되어 간식을 먹여 주고 흘러내리는 침도 닦아 주며 아직 열려 있지 않은 윈도의 볼거리를 찾아 부지런히 움직여 주는 봉사자가 있기에 그들의 표정이 밝다.

 

자원 봉사자들은 대게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로 바쁜 주중의 하루, 오전 시간을 기꺼이 내놓은 것이다.

장애인 돌보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투철한 봉사 정신과 인내와 자기희생이 따라야 즐거움으로 할 수 있음을 본다. 봉사자들은 남을 도와준다는 기쁨보다 그러한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이들이 베푸는 사랑을 볼 때마다 살아가며 감동할 일과 감사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다시 한번 가슴 깊이 확인하게 된다.

 

내가 품고 있는 또 다른 감사는 일반인이나 장애인이나 구별 없이 마음껏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갤러리아 측의 배려이다. 일상이 반복되는 무료한 삶에서 벗어나 사람 구경이라도 실컷 할 수 있게 쉼터를 제공하는 넉넉한 마음이 고맙다. 비록 어질러 놓는 것은 없다 하더라도 손님이 들어 오기도 전에 이들에게 먼저 넓은 공간을 할애하는 의식 수준이 부럽다. 그것은 내가 고국을 방문했을 때 경험한 일이 있기에 더욱 깊게 생각된다.

 

몇 년 전 서울에 갔을 때, 급히 보내야 할 메일이 있어 백화점이 개점하기 조금 전에 도착했다. 추운 늦가을 아침이었고 마침 후문이 열려 있어 엘리베이터 앞에서 개점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백화점 직원 한 분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 손을 내밀며 내게 타기를 권했다. 시간 전이어서인지 아직 엘리베이터걸도 탑승하지 않았다. 나는 시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 개점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괜찮습니다. 5분 전이에요.” 아래층만 정시에 문을 열지 다른 층들은 이미 개점 준비가 완료되었어요

그는 옆에서 내가 타기를 기다리고 있어 고마운 마음으로 목례를 하고 기분 좋게 올라가 7층에서 내렸다. 문화 공간에 자리한 우체국의 첫 손님으로 편지를 부치고 돌아서자 바로 앞에 에스컬레이터가 보였다. 무심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곧 개점하려는지 정문 양쪽에 30여 명쯤 되는 여점원이 통로를 만들며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나는 좀 민망했으나 이어 개점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기에 그곳을 통과했다. 들어오는 손님은 문이 닫혀 있어 문밖에 있었고 문이 열리자 내가 먼저 나가게 되었다.

그때 나를 쳐다보는 점원들의 눈빛이 적의에 찬 시선이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에 너무 놀라 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마도 자기들끼리만 아는 무슨 징크스가 있는 것 같았다.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90도로 굽힌 상태에서 “어서 오십시오”를 인형처럼 외친다. 그런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며 아직도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 얽매어 있는 그들이 가엽게 보였다.

 

1960년대 백화점이 생겼을 때 “고객이 왕’이라는 말을 즐겨 구호처럼 외쳤다. 비록 그 아침에는 편지만 부치고 빈손으로 나왔으나 아파트 대 단지에 있는 그 백화점을 수없이 이용했던 곳이다. 손님이 들어오기 전에 먼저 나갔다는 것으로 모멸찬 시선을 받았던 그 아침이 이곳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잊히지 않는다.

 

아침 일찍 상점에 가서 전에 샀던 물건을 바꾸든지 무르든지 간에 상냥한 인사로 대하는 이곳의 서비스 정신에 나는 때때로 감동을 한다. 또 물건을 사고 안 사고는 차치하고 깨끗이 청소해 놓은 내부에 장애인이 언제고 들어와서 마음껏 쉴 수 있게 하고 장애인도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만드는 사회제도에 대한 감사가 무형의 아름다움으로 스며들어 가슴을 뜨겁게 적신다.

 

이곳 LA에서는 흔하지 않으나 미 동부나 유럽에 가면 한 가지 업종으로 사업을 계속해온 상점들이 많아 상호 밑에 “Since”라고 창설된 해를 써 놓는 것을 본다. 그런 상점이나 음식점을 갈 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어느 시대이건 간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서비스나 맛이 남달랐기에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전통적인 곳을  즐겨 찾는다. 그런 곳에 가면  공연히 나까지도 어느 클래스 위에 올라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상점들은 현명해서, 눈앞에 있는 것만 쫓지 않고 먼 앞을 바라보며 달려야 오래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흔히 멋있는 사람,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란 함께 나누고 베푸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지극히 작은 일 하나가 어려운 이들을 돕고 영혼을 살리는 소중한 씨앗이 될 때 그 삶에서는 향기가 배어난다.

어느 분이 장애인들을 위해 공간을 제공하자는 의견을 내었는지, 혹은 어느 방침에 의해서였는지 모르나 이러한 의식을 지향하는 사회이기에 장애인이 존중받는다.

 

우리의 삶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장애자인들에게나 모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어떠한 상태에 있든지 간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나의 어느 부분을 조금 할애해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의 삶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 덕분에 또 한 번의 풍요로운 삶을 체험할 기회가 될 것이다.(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