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아기
응급실 병동으로 들어갔다. 밤새 두통과 구토로 괴로워하던 딸의 눈동자가 풀린 듯 보인다. 안에는 급하게 달려온 환자들로 붐볐다. 이름이 불릴 때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가족들이다. 내게 기댄 채 힘없이 내리감은 아이의 눈가가 애처롭다. 얼마가 지났을까 딸의 진료순서가 되었다.
큰딸을 가졌을 때가 생각난다. 결혼해서 가진 첫 아이를 7주 만에 자연유산으로 잃었다. 큰 실망과 충격이었다. 첫 임신의 실패로 다음 아이를 갖기가 무척 어렵다는 말에 불안한 마음 마저 들었다. 일 년이 지난 다음에야 아기가 생겼다. 교사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각별히 몸조심에 마음을 썼다. 종일 선 채로 네다섯 시간의 수업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퉁퉁 부어오른 다리가 너무 무거웠다. 추수감사절을 며칠 앞둔 좋은 계절에 큰딸이 세상에 나왔다. 유난히 작은 체구를 가지고 태어난 딸은 시집 가 아기를 낳은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딸아이에게 엄청난 일이 생긴 건 손자가 두 살 반 무렵이었다. 오랫동안 모터 사이클을 즐기던 사위는 그 토요일 아침 다녀오겠다는 인사로 집을 나선 후 돌아오지 못했다. 자동차와 부딪힌 그 아이는 스물아홉의 아내와 애비를 꼭 빼닮은 두살배기 아기를 남긴 채 영영 우리 곁을 떠났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 피아노 연주를 즐기고 엄마 일을 잘 도와주는 따뜻한 성품을 가진 착한 딸에게 우리 부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딸 앞에서 남편에게 '여보' 라고 부르는 일조차도 미안하고 마음이 쓰였다. 그 후로 이제까지 아빠 없는 아이를 키우느라 남모르게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갖고 있겠는가. 곁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사내아이에게 필요한 아빠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부족함이 어찌 없으랴. 한 번도 어두운 표정이나 불평 없이 잘 견디어 오다가 이제 지친 딸의 모습을 보니 내가 대신 겪어낼 수만 있다면 그 아픔을 몽땅 옮겨 오고픈 어미의 마음이다.
딸이 의사에게 들어간 동안 기다리는 방이 너무 추워 건물 밖으로 나왔다. 원래 병원의 실내온도가 낮기도 하지만 아픈 이들이 나아지기를, 고통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마음은 더 추운가 보다
옆 건물은 앰뷸런스에 실려 오는 환자들이 가는 곳이다. 좁은 주차장에 쉴 새없이 구급차들이 들어선다. 의식이 없는 사람,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 어느 환자는 아프다며 소리를 질러댄다. 모두가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옮겨지고 있다. 과연 살아 있음은 무엇인가, 생명의 끝은 어디인가.
아직 뜨거운 낮이 되기 전 연한 햇살이 좋다. 병원 밖도 사람들의 왕래로 부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다친 팔에 깁스를 한 남자아이, 휠체어에 탄 채 멍한 표정인 환자, 작은 꽃다발을 들고 바삐 걷는 젊은이도 눈에 뜨인다. 그의 얼굴도 그리 밝아 보인지 않는다. 저쪽에 갓난아기를 조심스레 안고 휠체어에 앉은 산모도 보인다. 아픈 사람만 오는 병원이 아니다. 새 생명의 환희도 함께 있다. 오늘 이 병원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새로 나고 또 사라질까. 누군가에겐 저 태양이 마지막 빛이라 생각하니 따뜻한 햇볕이 오히려 시리게 느껴진다.
진료가 끝났다. 아까보다는 핏기 도는 얼굴이다. 아이와 마주치는 안도의 눈빛이 어미 가슴에 꽂힌다. 서른일곱 살의 내 아기가 사랑스럽다. 좁은 어깨를 꼭 안아주었다. 오래 살아야 하나. 곁에 있어 주는 것 만으로라도 아이들에게 힘이 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