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 손자 TOM
폭풍 후의 고요함이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후 천장이 뚫어진 것 같은 허함이 맴돈다. 어른들의 수다가 만만치 않다. 한국 여자들만 시끄러운 줄 알았는데 백인들의 모습은 우리에 비할 정도가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해마다 1월이면 손자 탐의 생일잔치를 마련한다. 일 년에 한 번 사돈 식구들에게 한국요리를 대접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탐은 소위 믹스(Mix)다. 백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난 혼혈이다. 이젠 우리 한인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피가 섞인 아이들. 탐은 백인들 틈에 있으면 동양 아이 같고 한국 사람 속에서는 백인 아이처럼 보인다.
딸아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우리가 어렸을 적에 '혼혈아' 라며 그렇게 놀려댔던 혼혈의 손주가 나올 것에 대해서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푸른 눈을 가진 사위도 낯선데 우리 모습을 반밖에 닮지 않을 손자에게 행여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염려에서였다.
탐은 세 명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가졌다. 외할아버지와 할머니, 친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혼한 다음 재혼하여 생긴 양 할아버지와 양 할머니가 있다. 한국식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백인들의 사고방식에서는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닌가 보다. 차츰 탐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행사 때마다 세 쌍의 조부모가 함께 어울리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탐마저도 자기는 너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다며 웃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언니들까지 '이모할머니'라며 일러준 까닭이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손주들에 대한 조부모의 사랑은 다를 게 없다. 부모일 때는 자식을 양육하기에 바빠서 많은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고, 그들이 기쁨을 선사했던 많은 순간도 놓치곤 했다. 그저 탈 없이 자라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살아온 시간이다. 손자를 대하는 것은 다르다. 훨씬 여유롭게 바라보고 사랑을 듬뿍 줄 수 있게 된다. 자식이 그렇게 예쁜 줄을 모른 채 키웠고, 애닳도록 사랑스러움을 가지고 있음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제라도 자식과 손주를 엮어 몇 배로 마음을 내어 주어야겠다.
사돈 집은 우리와 한 블럭 떨어진 곳이라 왕래가 쉽다. 손자 탐을 돌보는 일은 철저히 분담한다. 딸은 나와 살고 있어 아침 등교는 내 담당이다. 학교가 끝나면 친할아버지는 자기 집으로 데려가 숙제를 도와주고, 과외활동에 데려가고, 일주일에 세 번은 저녁을 함께한다.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손자와 영어가 신통치 못한 외할머니와의 소통이 쉽지만은 않다. 이제 열 살 반이 지나면서 슬슬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의 감정을 잘 살펴가며 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딸아이만 키워 본 나로서는 남자아이들의 변화를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그저 사랑한다는 마음만 전달되도록 노력할 뿐이다.
탐은 두 살 반 때에 아비를 잃었다. 사위 루크가 서른여섯 살 생일을 한 달 앞두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 후로 딸은 나와 함께 손자를 키우게 되었고 그 시간이 어언 여덟 해가 지났다. 매일 밤 침대 곁에서 책을 읽어주던 시절도 지나고, 글을 익힌 다음엔 혼자서 읽다가 잠잘 시간이면 등을 긁어주는 일이 내 몫이다.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아비 없이 크는 탐도 애처로웠지만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읜 딸아이의 모습은 내 가슴 속 커다란 바위가 되어 숨을 조여왔다. 나는 탐의 온몸을 만져주며 사랑으로 기도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바른 판단력을 가질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나 주길 빌었다. 내가 두 딸을 위해 기도할 때보다 더욱 간절하게 매달렸다.
딸아이가 재혼할 준비에 바쁘다. 어려운 시간이 끝나가는가 보다. 딸에게는 새 삶을 함께할 동반자를 맞는 것이고 손자에게는 아빠의 자리를 채워 줄 고마운 사람. 독일계 백인이라 얼핏 보아선 탐의 친아빠처럼 자연스럽다.
탐에게 네 번째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기게 되었다. 딸의 5년여 교제 기간 동안 많이 친숙해졌고 그들도 탐을 친손자처럼 사랑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온전히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고 행복한 인생을 꾸며가기만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젠 내 속에 조여든 가슴이 펴질 것 같다. 얼마나 어렵고 아픈 나날이었나. 잊고 싶은 기억이 시간 속에 묻혀 간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옛 임금의 말씀이 떠오른다. 오늘이 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