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맞추기 손자녀석이 쏟아놓은 '노아의 방주' 퍼즐 500조각을 맞추었다. 아기 때부터 퍼즐 놀이를 즐기더니 점점 조각 수가 늘어난다. 100개 정도까지는 쉽게 완성할 수 있지만 그림의 규모가 크다 보니 작은 조각들을 살피며 그림을 만들어가는 일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시작은 거창하게 하고서 오랜 시간 머물지 못하는 녀석은 식구들을 독촉하며 빨리 끝을 내란다. 식탁 가득히 늘어놓고 찾으려니 돋보기도 필요하고 다른 일을 제쳐놓은 채 꼼짝없이 매달리게 되었다. 식구들은 잠깐씩 멈추어 서서 몇 개라도 그림 잇기를 돕곤 했다.
출근 염려가 없는 나는 이틀 밤을 새벽 두 시가 되도록 집중하여 맞추어 가다가 이제 마지막 조각 하나를 아껴 두었다. 완성하는 기쁨의 순간을 손자 녀석에게 주고 싶어서이다.
퍼즐을 맞추는 일은 우리의 생과 많이 닮아있다. 창조주가 마련해 놓은 나만의 그림을 하나하나 성실하게 짜 맞추어가는 삶의 과정이다. 어느 부분은 쉽게 연결되지만 다른 쪽의 그림조각이 영 눈에 띄질 않는다. 그럴 땐 그쪽은 잠시 접어놓고 새로운 그림을 시도한다. 하나씩 붙여가다 보면 먼젓번의 위치에 와서 오묘하게 연결됨을 알게 되고 자못 벅찬 기쁨을 느낀다. 내게 주어진 삶의 퍼즐은 언제쯤 완성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열심히 찾아 묵묵히 맞추어 가노라면 기쁨의 장면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내 그림 안에 들어와 있는 많은 사람을 바라본다. 가장 가까운 내 가족. 먼 조상에까지 유추하기는 쉽지 않으나 생명을 내어주신 부모님과 형제들이 보인다. 삶의 동반자로 때론 깊고 험한 골짜기에서 손잡고 걸어온 남편, 사랑으로 잉태된 두 딸, 거기에서 생명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귀한 손자가 그 이름들이다.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동네 골목에서, 같은 학교에서, 직장 동료로서 생활의 공통분모를 만들며 교류해온 인생의 수련동기생들이다. 영적 만남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삶에 시달리며 고독과 소외감, 아픔 속에서 마음의 사막을 헤매고 있을 때마다 갈 길을 일러주시던 신부님들, 수녀님들, 좋은 일에 나보다 더 기뻐하고 슬픔에 빠진 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해 주던 신앙의 형제자매들도 잊지 못한다.
그림 전체에 퍼져있는 배경이야말로 내 생애의 길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맑은 하늘 아래의 화창한 봄볕도 누렸지만, 어느 시절엔 먹구름 낀 어둠 속에서 길 찾아 헤매기도 했다. 소나기와 폭설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나의 신세를 원망도 했고 시끄러움과 무서운 고요를 지나오며 여기에 이르렀다. 암흑 속 바다의 노도가 덮칠 때 그 끝이 어딘지 몰라 허둥대며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기도 했다. 맑은 물소리에 세상 번뇌를 담아 흐르는 시내를 돌아 평원을 걸었을 때도 그 무한한 축복을 감사할 줄 몰랐다.
비가 그치고 동편 하늘에 무지개가 선명하다. 내 삶의 퍼즐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며 채워져 가고 있다. 다른 이들의 눈에 어떤 그림으로 비칠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이미 그려진 바탕을 고칠 수는 없다 해도 남은 조각들을 충실히 꿰어 만들어야겠다. 맞지 않는 모퉁이를 억지로 끼워 넣다간 그림을 망칠 수도 있다. 혹시라도 이미 제 짝이 아닌 조각을 붙여놓은 것이 있다면 과감히 뜯어내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마지막 한 조각을 넣는 완공에 이르는 역사를 위해서.
세상에 태어나 좋은 관계를 맺고 오랫동안 이어갈 사람들이 많음은 가장 큰 행운일 게다. 그들이 있기에 기쁨을 나눌 수 있고 절망 속에서 일어설 용기를 얻는다. 내게 남겨진 시간 동안 나의 가진 것들을 모두 내어놓고 싶다. 더욱 사랑하리라. 많이 웃어주리라. 함께 아파하리라. 무지개 피어오르는 저 하늘에 이를 때까지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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