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이른 아침 앞마당 잔디에 물을 주고 있었다. 갑자기 큰소리에 놀라 둘러보니 이웃집 부부의 목청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히브리말의 언쟁이었지만 그것이 꽤 격양된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벤허'부부는 유태인이다. 우리가 이사오기 전부터 오랫동안 살았던 것 같다. 이사하던 날 뒷마당으로 연결되는 옆문이 열려있음에 서슴치 않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 담장을 넘어온 자기 집 나뭇가지에서 레몬을 따던 할아버지였다. 식당을 운영하기에 많은 레몬이 필요하다나.
우리 집에도 꽤 큰 레몬나무가 있으니 내게 그리 아쉬운 일이 아니길 다행이다. 그래도 원래 자기집 쪽으로 넘어온 가지의 열매는 그 집 주인의 몫이 될 수 있다는 미국이 아닌가.
아무튼 전형적인 유태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후 별로 살갑게 대할 일이 없었다. 특히 할아버지는 말이 없는 성격 같아서 가끔 마주쳐도 '하이' 인사면 족했다. 반면 할머니는 보기에도 체격이 남편보다 우람했고 굵은 음성을 갖고 있어 과연 모계사회의 강한 여성상을 느끼게 하였다. 점점 더 할아버지의 목청이 커지는 것을 보니 화가 단단히 나신 모양이다. 반사적으로 할머니의 대꾸는 몇 배 길게 이어졌다.
나는 다툼의 현장을 나의 기억 속에서 생생히 실감하고 있었다. 남편과 처음 만난 후 일 년동안 열심히 사랑하고 결혼을 한 후 또 다른 일 년 간을 엄청 싸웠다.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의 차이가 너무도 커서 부딪히는 한계를 알아야 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경험한 것은 정해진 그 선을 넘지 않는 것, 서로 인내의 범위를 지켜주는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제대로 부부싸움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남편 탓(?)이었다.
쉽게 흥분하여 감정폭발이 빠른 나와는 달리 남편은 너무도 차분하고 웬만한 말에 대꾸가 없었다. 때론 그것이 나를 더 화나게도 했지만 만약 같은 수위로 대응했더라면 아마도 우리의 결혼생활은 오래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전의 의지를 다지며 싸움에 임하였던 나를 피해 사라지는 전술이어서 번번히 맥빠지는 것은 내 쪽이었다.
지난 시간 속에 빠져 슬며시 쓴웃음을 짓는 사이 주위가 적막하다. 벌써 끝이 난 걸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 중 하나가 부부싸움이라는데 은근한 아쉬움이 인다.
속으로 나는 생각했었다. 다툼이 끝나면 정원에 핀 장미를 꺾을까, 계절도 모른 채 젖살오른 아기얼굴 만큼 커다래진 코스모스 꽃을 한 다발 엮어 가져다 줄까.
두 사람에게 건네 주며 '싸우지 마시고 더욱 사랑하며 오래 사세요. 그래도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감사하세요. 저는 싸우고 싶어도 적군이 없네요.' 라고 전하고 싶었다.
차의 시동을 켜는 소리가 들린다. 한 대의 미니밴으로 움직이는 그들이 함께 타고앉은 모습이 아름답다. 집 사이의 큰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골목을 빠져 나가는 차의 끄트머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부부란 흡사 한껏 늘어났던 용수철이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오듯 날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서는 2인3각 선수들의 다짐과 같다. 뗄 수 없는, 반드시 속도와 박자를 맞추어야 도착점까지 넘어지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경기라 생각한다.
둘이서 함께 맞잡고 가야할 길을 혼자 가는 일은 무척 힘들다. 그것이 영영 만날 수 없는 평행선으로 이어진다 해도 그저 곁에 머문다는 느낌 만으로도 외롭지 않으리.
'벤허' 부부의 오늘 저녁 메뉴는 무엇일까. 은은한 촛불을 밝히고 와인 잔을 나누며 삶을 주고 받겠지.
나는 남편에게 시비거리를 찾으며 허공을 향해 소리쳐 본다.
"여보, 오늘 우리도 부부싸움 할래?"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