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나의 모든 것
유숙자
‘타워레코드’ 점을 찾았다. 오랫동안 들르지 못한 사이 내부가 많이 변해 있었다. 클래시컬 뮤직’이라고 쓰여 있던 공간의 유리벽을 아예 허물었기에 횅댕그렁하다. 일목요연하게 진열되어 있던 클래식 음반이 한 섹션밖에 보이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만 취급하던 장소를 ‘이지 리스닝’과 ‘컨트리 음악’으로 채워 놓았다. 언제나처럼 넓은 홀 제일 깊은 안쪽에 ‘클래시컬 뮤직’이라는 선명한 네온사인이 푸르게 빛나고 있을 줄 알았다. 특수 방음으로 외부와 차단된 그곳은 밀실 같아 롹이나 헤비메탈이 난무하는 일반 홀과는 다른 별세계였다.
클래식 음악이 퇴색 일로를 걷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허전하다. 언제든지 찾아 나서기만 하면 바로 쥘 수 있었던 음반이 품귀 상태가 오다니 한마디 말도 없이 가버린 정인처럼 그렇게 허망할 수 없다. 나뿐만 아니라 클래식 마니아들이 적잖이 섭섭할 것 같다.
‘미샤 엘만’의 신기에 가까운 바이올린 연주가 가슴을 에이는 듯하고, ‘클라라 하스킬’의 열정적인 피아노 연주가 물결처럼 출렁이던 곳. ‘재클린 뒤 프레’의 첼로 음률이 공기까지 사로잡던 곳. 마음이 답답할 때 그 공간에 들어서면 이내 뻥 뚫리듯 시원하고 아늑함을 주던 장소였다. 지난 십수 년 동안, 마치 보물 창고에 들어와 값진 보석을 마음껏 구경하듯 이 밀실을 드나들며 음악을 감상했고 귀한 손님 대하듯 정중하게 집으로 모셔 들였다. 클래식 음반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이나 해 보았을까. 우리의 3세쯤 되면 그때는 어떤 음악을 클래식이라 말할까.
클래식 음악의 원산지는 유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한 작곡자는 거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미국은 컨트리 음악의 나라이고 영화의 도시 할리우드가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 클래식 음악이 잊혀 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는지도 모른다. 클래식 음악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함이 우리 세대로 끝나는 것은 아닐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를 모르는 세대가 올 것 같아 두려움이 인다.
영국에 살면서 유럽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다양한 음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그뿐인가. 다른 문화권에서 들었던 폭넓은 연주는 내 감상 능력을 격상시켜 주었다.
런던은 1월과 7월에 빅 세일을 한다. 가장 많은 음반을 소유한 “헤롯” 백화점의 세일 기회를 최대한 이용했다. 당시의 음반은 거의 LP이다. 음반을 고르느라 손가락이 까맣게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장 마음에 드는 지휘자의 연주곡이나 좋아하는 연주자의 음반을 발견했을 때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귀한 보물을 발견한 듯 뿌듯하게 안고 돌아오던 그때 그 기분. 행여 튀는 음반이 있을세라 헤드폰을 끼고 몇 밤을 새워가며 점검하던 시간. 한 달 생활비를 몽땅 음반에 쏟아 붓고 냉장고의 저장 식품으로 때운 적이 있을 정도로 내 음악 사랑은 지칠 줄 모르는 갈증인 동시에 생수였다.
자주 손이 가는 음반이 몇 개 있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제2악장 라르게토-로망스”는 로맨틱의 극치와 서정적 경지를 표현한 곡이다. 피아노의 순수한 음을 살려 시의 생명을 불어넣은 쇼팽의 명작으로 낭만적이고 조용하며 조금은 우울하다. 쇼팽이 폴란드를 떠나기 두 달 전 1830년 9월에 완성한 마지막 곡이다. 초연은 같은 해 10월에 바르샤바에서 쇼팽 자신이 했는데 이 연주회가 쇼팽의 고별 연주회였다. 이때 첫사랑인 소프라노 가수 ‘콘스탄체 글라주코프스카’가 노래했는데 쇼팽은 그녀에게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아름다운 봄날, 달빛 찬란한 밤, 곧 나타날 것만 같은 그녀를 꿈꾸며 작곡한 녹턴 풍의 우아한 곡이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피아노에만 털어놓고 쇼팽은 고향을 떠나버렸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위대한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것과 괴로워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는데 쇼팽은 이 모두를 품은 체 고국을 뒤로했다.
오래전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감동의 격류를 체험했다. 눈물이 났다. 곡이 매우 아름다워서. 심장 깊숙이에서 죽은 듯이 침묵하고 있던 ‘옛’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음을 감지했던 탓이다. 피아노가 표현할 수 있는 탁월한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한 음악. 사랑하는 여인을 가슴에 품은 채 속으로 삼켜야 했던 눈물. 쇼팽은 후세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만큼 이 곡에 감동하리라는 것을 짐작이나 했을까.
글루크의 “정령의 춤”(Dance of the Blessed Spirits)은 그리스의 신화인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 3막에 나오는 곡으로 음률의 신비가 달빛처럼 어린다.
뱀에게 물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영계를 찾아온다. 오르페우스가 비탄에 젖어 리라를 켜고 노래 부르며 아내를 돌려 달라고 탄원한다. 리라의 음률과 노래가 하도 애절하여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저승의 망령과 바위와 수풀까지도 귀 기울이며 눈물을 흘렸다. 지옥 원혼들이 그 노래에 감동되어 아내를 구하게 해주었으나 실수를 범하여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 ‘정령의 춤’은 독주곡으로, 성가곡으로 연주되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곡이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제2악장”을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 곡은 그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나 가슴 따뜻한 교감이 악장 전체에 흐르고 있다. 모차르트는 말년에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빈 궁정악단의 ‘안톤 시타들러’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클라리넷의 명수인 시타들러는 돈을 구해서 모차르트에게 주었고 자기 주머니를 털어주며 작곡을 의뢰했다.
모차르트는 이 고마운 벗을 위해서 죽기 두 달 전인 1791년 10월에 클라리넷 협주곡 작품 622번을 작곡했다. 특히 2악장이 비단결처럼 곱다. 과장없이 세련된 연주는 차분하면서 열정인 곡으로 독주악기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걸작이다. 쓸쓸한 정감에 다양하고 변화 많은 서정적 감동을 준다. 영화 ‘아웃 어브 아프리카’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며 우리 곁으로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 이 음악은 광활한 아프리카의 대평원에서 펼쳐지는 석양, 자연경관에 불을 지르는 음악으로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로맨틱하게 하는데 일조를 했다. 영국 출신의 클라리네티스트 ‘마이클 콜린스’가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연주가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Der Lindenbaum)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곡으로 LP로 들어야 제맛이 난다.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여 작곡했다. 보리수는 현실과 환각 사이를 방황하는 외로운 남자의 마음을 나타낸 곡으로 시보다 더 우울하게 표현되고 있다. 바람의 움직임까지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여 ‘거의 노래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라는 평을 듣고 있다. 부드럽고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휘셔 디스카우의 노래는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이 모를 심연으로 빠져들게 한다.
외로울 때나 슬플 때, 기쁠 때, 음악은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주었고 연인이 되어 주었다. 음악은 불행하고 외로운 사람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고 절망한 영혼에 빛이 되어 준다. 근래에는 음악 듣기가 훨씬 편해졌다. 컴퓨터 iTunes에 저장해 놓고 음악을 들을 수 있어 간편해서 좋다.
‘아! 음악이 없는 삶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설혹 밥은 굶더라도 음악만은—’ 이렇게 말하던 14세 소녀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음악 속에 빠져 살았다. 존 마일스(John Miles)가 “Music”에서 노래하듯 ‘음악은 나의 첫 사랑, 음악은 나의 마지막 사랑, 음악은 나의 모든 것.’ 이것이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작곡자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산출해 낸 음반들, 그 곡을 빛나게 하는 연주자들로 말미암아 주옥같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 행복하다. 그 음악을 내 것으로 간직할 수 있는 음반을 가슴에 안을 때 삶은 더없이 눈부신 행복으로 벅차올랐는데 그 기쁨을 만나는 곳이 자취를 감춰가고 있음이 너무 안타깝다. 클래식 음악이 없는 곳에서 무엇이 나의 영혼의 해갈을 줄는지.
나는 쇼팽의 음악 로망스를 허밍 하며 타워레코드 점을 나왔다. 내 영혼을 청정케 하고 삶의 의미와 존재의 기쁨을 주는 클래식 음반이 사라져가는 허전함에 발걸음이 무겁다. (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