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안 탔던 버스, 전철을 타다
반세기 훨씬 전 대학교 일 학년 때 장왕록 영어과 교수(장영희 교수 아버지)께서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란 희곡을 강의하셨다. 이 희곡은 1947년 미국의 유명 극작가 테너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가 쓴 희곡으로 1948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처음 대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시간이라 매우 흥미진진하게 경청을 하였다. 희곡의 제목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희곡 속에서 실제로 여주인공인 불랑 쉬가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에 도착하여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타고 동생을 만나러 이곳에 찾아온다. 동생 스텔라의 남편 스탠리와 이상한 관계에 휘말리면서 겁탈을 당할 뻔 하는데…. 실제로 이런 이름의 전차가 뉴올리언스에 있는 줄 알았는데, 희곡작가가 희곡을 쓰면서 희곡 속에 나오는 가상 전차 이름일 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 삼십 년 넘게 살면서 오렌지 카운티에서 운행하는 버스도 한 번도 타 보지를 못했다. 그래도 오렌지 카운티 내에서는 자동차로다녀도 거리가 멀지 않아서 별 불편을 못 느끼고 자동차를 운전하며 살았다. 문제는 엘에이(Los Angeles)에 나들이할 때였다. 문학모임이 있어서 자동차로 왕래해 보니 낮에는 그래도 운전을 할 수 있는데 밤에는 나이가 있어서 눈이 잘 안 보여 큰 고역이었다. 오렌지 카운티에 사는 회원님들께 동승을 부탁하면 호의를 베풀어 주는데 나로서는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문학모임에 참석하여 회원들과 식사를 나누면서 엘에이에 밤에 오기가 큰 고역이란 넋두리를 털어놓았다. 마침 옆에서 식사하던 회원이 브레아에 사는데 버스를 타고 엘에이에 와서 전철을 갈아타고 모임에 참석했다고 했다. 시간이 좀 걸려도 출퇴근 시간에 신경 쓸 필요 없이 편안히 올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올해 12월은 송년회가 많아 자주 왕래를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엘에이에 가 보야겠다고 결심했다. 브레아에사는 회원님께 연락해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가든 스위트 호텔까지 오게 되었다. 버스는 놀웍 에 있는 Green Line Station에서 엘에이로 가는 460번 버스를 탔다. 애너하임에서도 460번이 stop 한다고 해서 다음에는 애너하임에서 타기로 했다. 갈아타는 번거로움이있었지만, 프리웨이에서 막히지 않고 신경 쓸 필요 없이 편안히 엘에이 와서 윌셔와 7가에서 전철로 갈아타고 웨스턴에서 내렸다. 가든스위트 호텔까지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엘에이에 전철이 있다고 해도 한 번도 타보지 못해서 궁금했는데, Blue Line 도 있고, Purple Line 이 있는데, Purple Line 을 탔다. 이 복잡한 엘에이에 지하 전철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보니 엘에이를 더 잘 알게 되었고 서민의 애환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지하전철을 타고 목적지까지 도착 할 때까지 의자에 앉아 깊은 감회에 젖었다. 6.25 전쟁 직후 들들 거리는 만원 버스를 타고 여차장이 ‘오 라잇’ 하면서 버스 문짝을 두드리면 출발하는 버스가 생각났다. 전차도 버스 크기의 전차를 타고 대학교까지 등교 하던 때가 떠 올랐다. 그러면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생각하게 되었고 교수님들의 얼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두 교수님이 모두 고인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있기에 감사가 절로 나왔다.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가 있다면 타 보고 싶었는데…대신, Green Line 버스와 Purple Line 지하절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 생각하게 되었다. ‘Green’이란 말이 얼마나 친환경적인 말인가. 버스 한 대에 수 십명이 탈 수 있으니, 만약 각자가 자가용을 운전하고 엘에 이 온다면 배출하는 배기가스가 엄청 많을 텐데 버스 한대로 수 십명이 한꺼번에 오니 버스 한 대의 배기가스만 배출하니 지구온난화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Green’이란 말이 참 잘 어울리는 말인 것 같다. ‘Purple’이란 말은 옛날 왕족들이 즐겨 입던 옷 색갈이었다. 고객이 왕이란 말이 있듯이 전차 타는 고객을 왕으로 모신다는 뜻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미국에 이민 온 후 처음으로 버스와 지하 전철을 타고 엘 에이에 첫 나들이를 한 기분이 참 좋았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서 통쾌하기 까지 했다./중앙일보,열린광장(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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