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 너 본 지 오래구나

유숙자

20년 가까이 살았던 정든 집에서 이사했다. 이사라고 해봐야 길 하나 건너 동쪽으로 이동했을 뿐, 거리 이름도 같은 호손 스트리트(Hawthorne St.)다. 동네 이름이 나다니엘 호손과 같아서 글 쓰는 사람이 사는 동네답다 하여 듣기 좋았다.

 

오래전 미국으로 이주하여 처음으로 둥지를 튼 곳이 LA 북쪽 발렌시아이다. 집 뒤에 야트막한 산이 있고 앞이 탁 트인 것이 자연 속에 파묻혀 있는 기분이었다. 마치 1950년대 영화에서 보았던 전형적인 교외 한적한 주택가를 연상케 했다. 잔디가 너른 마당에 깊숙이 낮게 들어 앉은 집. 아침이면 Paper boy가 자전거를 탄 채로 신문을 휙휙 던지고 지나갈 것 같은 그곳에서 3년여 살다가 남편 사무실이 가까운 글렌데일로 이사했다.

 

우리가 이사 온 집은 중세의 건축 양식을 본떠서 지은 것 같이 특이한 이 층 건물이었다.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첫인상을 잊을 수 없다. Hawthorne St. 골목으로 접어드니 600여 미터 정도의 길이 나뭇잎으로 터널을 이루었다. 길 양쪽의 큰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아치를 이루어 그곳을 지날 때마다 초록물을 부어 주는 것 같았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깃드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청아하고 멀리서 잔디 깎는 소리가 들릴 때쯤이면 바람따라 스며드는 풀 향기가 싱그러웠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그 집에선 행복한 일이 많았다. 두 아들이 결혼했고 우리 내외가 회갑을 맞았다. 남편이 장로가 된 것, 나의 첫 수필집을 출간한 것,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지병이 기적같이 나은 것도 모두 그 집에서 살 때이다.

 

집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겨울이면 멀리 동쪽 산 위에 쌓인 눈이 그림처럼 보였다. 남쪽에 그리피스 산, 북쪽에 글렌데일 뒷산이 있어 분지 같은 기분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래 위층 양쪽 벽면에 큰 창이 있어 달이 뜨는 것 해가 지는 것을 원 없이 보았다. 한가지 흠이라면 서쪽 창을 통해 들어오는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태양열에 여름이면 방과 거실이 달아올랐으나 저녁이면 황홀한 노을을 선사해 주어 그 흠을 감추고도 남았다.

달이 떠오르는 모습도 일품이었다. 동쪽 산 위로 동그마니 떠오르는 달. 밤이 이슥하면 달빛이 이층 방 깊숙이 들어와 마치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듯, 성큼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었다. 신비스런 달을 우러르노라면 어디선가 가녀린 피아노 선율이 들리는 것 같고 눈먼 소녀를 위해 베토벤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것만 같았다. 때로 달빛에 취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 속으로 흘러들었다. 빗소리가 그리워 창문을 조금 열어 놓고 밤을 지낸 것도 그 집이다. 예전에 고향에서 듣던 빗소리, 홈통을 타고 또르르 구르며 떨어지던 빗소리가 잠결에라도 들리려나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한 달이 크면 한 달은 작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우리 형제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어떤 결과에 만족지 않아 시무룩하고 있을 때면  만족하던 때를 생각하며 견디라 하셨다. 그때는 건성으로 들었는데 살아가며 문득문득 가슴에 와 닿는 말씀임을 실감한다. 문화가 발달하고 삶이 풍요로워졌어도 옛 어른의 지혜만큼은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인 것 같다. 

새로 이사 온 집은 해가 지는 것도 달이 뜨는 것도 볼 수 없다. 창문마다 들이치는 빗줄기를 막기 위함인지 지붕을 길게 뽑아내려 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음으로 잠들기 어렵다. 아름다운 석양도 중천에 동그렇게 떠있는 달도 이 집에 사는 동안은 즐길 수 없어 서운하다.

 

이따금 큰아들이 60여 마일 긴 퇴근길에 전화한다.

‘엄마, 달이 아주 고와요.’

늦은 시각에 동쪽으로 가는 프리웨이 선상에서 달을 보니 엄마 생각이 났던 탓이다. 아들은 이따금 달을 렌즈에 담아 전송해 준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엄마가 달빛에 젖어 있는 모습을 봐왔기에 자상한 마음을 사진에 담아 보내 준다. 창문을 열고 목을 길게 빼고 올려다봐도 달이 보이지 않는다. 아들의 전화가 고마워 밖으로 나간다. 중천에 동그마니 떠있는 달이 나를 반긴다. 이 집에 온 후로는 언제가 초승인지, 보름인지 그믐인지 모르는 채 지난다.

 

‘달아, 너 본 지 오래구나!’

장원 급제한 이 도령이 낙방한 듯 변복하고 옥중에 있는 춘향이 보고 싶어 거지꼴로 월매를 찾아가 밥 한 그릇을 구걸했다. 월매가 기가 막혀 ‘이제 내 딸 춘향은 옥중에서 죽겠구나!’ 통곡하며 찬밥 한 덩이를 개다리소반에 덩 그 머니 얹어 놓으니 이몽룡 하는 말이 ‘밥아, 너 본 지 오래구나.’ 하며 게걸스럽게 먹던 장면이 달을 보니 떠오른다.

이제 이 집에서 남편과 내가 칠순을 넘긴 지도 한참 지났다. 이 나이가 되면 ‘한 달이 크면 한 달은 작다.’ 라는 표현도 복에 겨운 것 같다. 아직도 꿈은 꾸고 있으나 입을 열어 내세울 나이가 아니니 그날 하루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 일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언서의 구절을 가슴에 품으며 과한 욕심 부리지 않아 크게 실망할 일도 없이 평범한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내일이 정월 대보름이다. 아들이 전화하기 전에 내가 먼저 달빛 소식을 전해야겠다.

‘아들아, 대보름달이 무척 밝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