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
유숙자
겨울은 첫눈과 함께 오는 것 같다. 첫눈이 내려야 비로소 겨울로 접어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첫눈은 공연한 기다림을 키우게 하고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직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희고 순결한 꽃잎을 보기 위해 밤잠을 설쳤던 이가 있는가. 은빛으로 덮인 세상 위를 걸을 때 뽀드득 부서지며 밟히던 경쾌한 눈의 촉감을 나는 잊지 못한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오랜만에 눈을 보았다. 그랜드 캐년을 다녀왔다. 끝없이 달리기만 하던 자동차 여행이 지루해질 때쯤, 수북이 쌓인 눈을 보게 되었다.
“어머, 눈 좀 봐.”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청명한 날씨라 눈은 한층 더 희고 눈부셨다. 은가루라는 말이 저런 것을 보며 하는 말이렷다. 만져 보고, 굴려 보고, 밟아 보고 싶어 휴게실에 닿은 즉시 총알처럼 뛰어나갔다. 두 손 가득 눈을 담고 힘을 주었다. 이미 눈의 표면이 얼어 있어 뭉쳐지지 않아 아쉬웠다.
20여 년 전, 이민 오던 해 겨울에 첫눈이 축복처럼 내렸다. LA 북쪽 발렌시아에서 살았는데 동네 사람들 말로는 그곳엔 좀처럼 눈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날 눈을 처음으로 본 어린이들이 환성을 지르며 창가로 모여들었다. 선생님들이 수업을 잠시 중지하고 아이들에게 눈 구경을 시켰다. 발레리나처럼, 꽃잎처럼 춤추듯 사뿐 사뿐히 내리는 모습에 반하지 않을 어린이가 있을까. 첫눈치고는 제법 푸근하게 내렸다.
첫눈은 함박눈으로 내려야 제맛이 난다. 첫눈이 싸락눈 몇 알뿌리고 겨울을 시작한다면 눈님께서 좀 염치가 없지 않을까? 첫눈은 특별한 의미를 두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첫눈만큼은 푸근히 내려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찬바람이 코끝에 감기는 싸늘함이 좋고 정신이 번쩍 들도록 볼을 때리는 찬 기운이 좋다. 더하여 계절의 꽃, 눈이 있지 않은가.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걸을 때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은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어떤 운명적 만남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가로수가 눈꽃을 피우는 호젓한 산책로로 빠져들기도 한다.
눈이 오는 날이면 버릇처럼 발걸음이 옮겨지던 곳이 있었다. 고요가 신비처럼 감도는 비원. 늦가을 천지연을 향해 걷던 좁은 길은 단풍 색깔이 유난히 고와 즐겨 찾던 곳이나 겨울은 깊은 정적이 내려앉아 고즈넉하기에 산책하기 좋다.
또 눈이 내리던 날, 장장 몇 시간을 문밖에 서 있던 사람이 있었다. 온몸에 눈을 함빡 뒤집어쓰고 마치 장승처럼 서 있던 사람. 결혼 반대에 부딪혀 금족령이 내려진 사랑하는 여인이 행여 나오지 않으려나 무작정 그 집 대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듯 서 있던 눈사람. 결국, 나의 남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를 나는 감동하며 기억하리라.
첫눈 하면, 먼 기억 속에서 살포시 떠오르는 정아가 있다.
결혼 전, 나는 이웃에 사는 친구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전부터 익히기는 했으나 오래되어 손이 굼뜨기에 소품 몇 곡을 완전히 연주하고 싶어 다시 배웠다. 그때 친구에게 피아노를 교습받던 어린이 중에서 7살 정아가 있어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아는 어려도 영리했고 오빠들 틈에서 자란 탓인지 행동이 씩씩하고 적극적이었다.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는 대로 잘 따라 하는 모범 어린이였다.
그해 가을 정아는 잘 익은 감 대여섯 개가 달린 감나무 가지를 내게 가져다주었다. 정아네 집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두 그루나 있어 가을이면 선생님에게 한 쟁반씩 가져왔다. 며칠 전 친구에게 가져온 감 중에 가지째 달린 것을 내가 집어들었더니 눈치 빠른 정아가 다음 날 감이 여러 개 달린 가지를 내게 건넨 것이다. 그것을 벽에 걸어 놓으니 우리 집 거실이 가을빛으로 채색되었다. 갈색 감잎 사이로 수줍은 듯 불을 밝힌 감이 꽃 초롱같이 고왔다. 달콤하던 가을 냄새가 겨울의 냉기로 변할 때쯤 탱탱하던 감이 축 늘어져 있었다.
겨울로 접어들자 정아는 눈을 무척 기다리는 눈치였다.
“펄펄 눈이 옵니다, 펄펄 눈이 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노래가 눈 노래였다.
어느 날인가 정아는 피아노를 멈추고 창 너머 푸른 하늘을 원망하듯 쳐다보며 칭얼거렸다.
“선생님 생각에는 눈이 언제쯤 올 것 같아요?” 정아가 친구에게 물었다.
“글쎄요”
친구는 대답을 주지 않았다. 시무룩해 있는 정아에게 내가 물었다.
“정아야, 지금이 겨울이니 곧 눈이 올 텐데 왜 그렇게 성화를 하니?”
“아빠가 첫눈 오는 날 피아노 사준다고 약속했어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아는 신이 나서 대답했다.
정아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선 전율과 같은 느낌이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다시 정아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정아가 매사에 자신감 넘치고 발랄한 것이 부모님께서 심어주고 있는 꿈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아! 얼마나 멋진 아빠인가. 돈이 생기면, 공부를 잘해야, 말을 잘 들어야 사준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1960년대, 그 시절에는 대부분 경제 사정이 어려워 자녀가 원하는 것이라도 잘 들어주지 못했다. 어쩌다 들어준다 해도 부모님의 요구도 뭔가는 들어드려야 하기에 이를테면 필요조건이 따랐다. 당시로는 물량도 귀하고 엄청난 가격, 재산 목록에 들던 피아노를 순수하게 ‘첫눈 오는 날’로 약속하여 기다림을 키우게 한 그 아빠가 멋져 보였다. 그런 분의 딸인 정아가 한없이 행복한 어린이로 보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저릿저릿한 가슴, 그날부터 나도 정아와 함께 첫눈을 기다리게 되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후, LA 인근에서만 살아왔기에 눈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4계절의 구분이 분명치 않은 이곳에서 겨울이면 두고 온 고국의 정서를 그리워하기에 이번 겨울 여행은 각별했다. 눈 덕분에 지나간 세월 속에 간직하고 있던 아름다운 기억들을 다시 한번 더듬어 볼 수 있었고 정아가 생각난 것이 반갑다. 지금쯤은 정아도 그 아빠가 심어 준 꿈을 자녀에게 심어 주리라.
세월이 지나도 살아 있는 기억들, 추억의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면 우르르 쏟아지는 사연들, 한 어린아이가 아빠와의 약속을 꿈꾸며 첫눈을 기다리던 모습이 추억의 편린으로 나풀거리며 다가와 다시 한 번 향기로운 시간 속에 잠길 수 있었다.
감동이 있는 사연은 오래전에 보았던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두고두고 가슴에 남아 추억할 수 있게 되는가 보다.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