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飛上
유숙자
“빌리 엘리엇”(Billy Elliot)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의 배경 시대에 영국에서 살았기에 정부와 맞서는 광부들의 피켓 시위를 눈이 어지럽도록 보았다. 영화의 전개는 1980년대, 노조위원장 아더 스카기가 이끄는 탄광 노조와 정부 사이에 대립이 팽팽하여 파업이 한창이었던 시절, 영국 북부의 탄광촌에서 일어난 이야기로 시작된다. 당시 노조문제로 골치를 썩이던 대처 정부와 노조 간의 대립을 내세우면서 한 소년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져 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렸다. 2000년,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켰던 작품이다.
이 영화가 다시 뮤지컬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엘튼 존과 최고의 드림팀이 제작하여 2005년 5월, 런던에서 초연된 이래 지금까지 호주 시드니, 뉴욕 브로드웨이 등에서 공연하며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토니상 10개 부문을 휩쓴 뮤지컬 ‘빌리 엘리엇’은 전 세계 뮤지컬 팬으로부터 “내가 본 최고의 뮤지컬”이란 찬사를 받고 있다. 현재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뮤지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라는 극찬이 이어진다. 3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춤과 노래가 감동적이라는 평이다.
빌리는 권투를 배우러 다니는 체육관에서 우연히 발레 수업을 본 후, 자신도 모르게 마음 뺏긴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빌리는 고민하게 된다. 발레를 권하는 여자아이에게 관심 없는 듯 표현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화장실에서 연습하고 도서관에서 발레에 관한 책을 훔치기도 한다. 발레 선생 윌킨슨은 11살 소년 빌리의 몸에서 흐르는 비범한 끼와 탁월한 재능을 발견하고 개인지도를 해주며 로열 발레스쿨의 오디션을 제안한다. 빌리는 윌킨슨 선생이 고마워 열심을 내다가도 가난한 집안 사정과 아버지를 생각하면 맥이 풀린다.
아들이 권투 글러브 대신 발레슈즈를 신고 있음을 알게 된 아버지는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이어온 권투 가문이라며 완강하게 반대한다. 빌리는 *웨인 슬립 (Wayne Sleep)같은 유명한 발레리노가 되고 싶다고 간청하지만 설득하지 못한다. 집안 분위기는 빌리가 원하고 갈망하는 꿈 따위에는 관심이 없음을 안다. 빌리는 매사에 자신 없고 내성적인 아이로 변해간다. 힘든 노동과 시위로 살아온 아버지는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움의 대상이라고 아들에게 반대의 이유를 밝힌다.
생업의 치열함은 현실로 다가왔다. 인생 전부라고 생각했던 탄광이 문을 닫을 위기에 놓여 광부들은 파업한다. 대치하는 경찰에게 아버지와 형이 달걀을 던지며 저항하는 것처럼 빌리가 발레 레슨을 받는 것 역시 반대하는 아버지에 대한 무언의 시위이다. 그것은 처우개선에 맞서 형 토니가 선택한 망치 대신에 발레 슈즈를 선택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빌리는 발레를 통해 욕구 충족과 발산을 체험하지만 포기해야 하는 울분을 참을 수 없어 거리로 뛰쳐나온다. 좁고 긴 골목을 휘저으며 광란에 가까운 춤을 춘다. 그것은 자신을 내동댕이치는 몸부림에 가깝다. 멀리 보이는 골목 끝자락에 바다가 있다. 어느 것이 하늘이고 어느 것이 바다인지 구별되지 않는 푸르기만 한 그곳. 한 채의 요트가 한가롭게 떠 있다. 지금 빌리는 절망에 몸부림치지만, 그 바다는 어쩌면 빌리가 꿈꾸는 미래를 희미하게나마 보여 주는 희망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게 저항할 수 없는 빌리는 발레에 대한 꿈과 열정을 어쩌지 못해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저녁, 친구를 앞에서 춤을 춘다. 이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아버지는 진정으로 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닫는다. ‘빌리는 어쩌면 천재일지도 몰라.’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더는 아들의 꿈을 꺾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날 밤 윌킨슨 선생을 찾아간다.
빌리의 대성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그를 가르치는 윌킨슨 선생이나 쇠락해가는 광산촌 사람들이 절망적 현실에서 느낄 수 있다. 평생 광부로 살아온 아버지는 빌리의 오디션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내의 유품을 전당포에 맡기고도 모자라 시위를 접고 배신자의 길을 서슴없이 택한다. 파업에 앞장서던 아버지가 갱으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한 토니는 한사코 만류하지만, 부성애의 외침은 어두운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아 터뜨리는 분노와 절규다. “우린 끝났으나 빌리한테만은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니.”
관념이 다른 부자의 통곡이,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아버지의 울부짖음이, 광막한 탄광촌에 절망처럼 깔린다. 가부장적 가치관과 거친 성격의 아버지, 반항적인 형, 발레를 하기에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가난한 노동자의 집안이나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 고락을 함께 나눈 동지를 배반하는 어쩔 수 없는 부정(父情)이 관람객들의 가슴을 적셔준다.
그들의 가난은 극에 달했다. 아버지는 땔감이 없자 죽은 어머니가 남겨 놓은 피아노를 박살낸다.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는 아내의 흔적을 보며 한없이 흐느낀다.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두드리던 피아노가 아버지의 도끼 아래서 무참히 부서져 한 줌의 재로 변하는 것을 바라보며 빌리는 가난에 몸서리친다. 외로울 때면 유일하게 느낄 수 있었던 어머니의 온기가 싸늘한 잿더미로 사라짐이 슬펐다.
로열 발레스쿨에서의 오디션은 신통치 않게 치러졌다. 난생처음 보는 으리으리한 건물. 냉정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는 시험관. 세련된 도시아이들에 비해 촌스럽고, 어리보기처럼 말귀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기가 죽었다. 시험관은 빌리에게 물었다. 왜 발레를 하고 싶냐고.
“모르겠어요. 그냥 좋아요.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모든 걸 잊게 되고 사라져버려요.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기분이에요. 마치 불이 붙는 것 같은. 전기처럼요. 맞아요. 전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저 한 마리의 나는 새가 되죠. 춤출 때면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빌리는 힘없는 목소리로나마 떠듬떠듬 속내를 털어놓았다.
심사위원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만족한 대답이었다. 나를 잊을 정도로 몰두할 수 있다는 것, 지향하는 목표가 뚜렷하다는 것. 빌리는 춤을 출 때 현실의 어두운 환경을 초월하는 힘과 환희가 따르기에 춤 추고 싶었다. 발레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발톱이 곪아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울 때에도 토슈즈를 신고 무대에 나서면 통증은 사라지고 춤과 하나 되어 공중을 향한 비상만 있다는 것을.
드디어 로열 발레스쿨로부터 통지서가 배달되었다. 빌리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공포의 사각봉투는 거대한 위력을 가지고 식탁 위에 놓여 있다. 봉투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은 가족들은 초조하기 이를 데 없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봉투가 사라지기라도 할 것 같다. 아내의 유품까지, 전 재산을 털어 오디션 비용을 부담했고, 무엇보다도 아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발레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지 않은가. 빌리의 합격 여부는 가족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이윽고 빌리가 학교에서 돌아와 봉투를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내용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흐느낀다. 그리운 어머니의 유품과 바꾼 합격통지서 같아 기쁘지만은 않다. 식구들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이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환희의 물결이 온 집안에 출렁인다. 빌리의 열망이 가능성으로 활짝 열리는 순간이다.
빌리가 로열 발레스쿨이 있는 런던으로 떠나던 날, 아들을 배웅하고 그들은 언제나처럼 생존을 위해 다시 갱으로 들어간다.
14년 후, 빌리(아담 쿠퍼)가 로열 오페라하우스 무대에서 ‘백조의 호수’에 출연한다. 아버지와 형이 관람석에 초대되었다. 몰라보게 성장한 아들. 무척 자랑스럽다. 저 무대에서 춤추고 있는 사람이 내 아들이라고 크게 외치고 싶다.
*엘레바시옹(Elevation) 빌리의 비상이다. 어두운 갱 속에서 쏘아 올린 불꽃처럼 빌리의 꿈은 현실이 되어 드높은 하늘에서 섬광처럼 빛난다.
실제로 빌리 역을 맡은 제이미 벨은 6살 때부터 발레를 공부한 소년이어서 리얼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고 감정에 몰입하여 멋진 연기를 펼쳤다. 사랑 이야기가 전혀 없는 영화. 젊은 여자도 나오지 않는 영화였으나 한 소년이 역경을 딛고 찾아가는 ‘나의 길’을 잔잔하게 감동적으로 펼쳐 놓았다. 그 당시의 시대성이나 광부의 아들로는 꿈조차도 꿀 수 없는 발레리노의 꿈을 박진감 있게 표현한 스테픈 달드리 감독의 역량이 돋보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라는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하는 것 같다. 거칠기만 하던 아버지의 사랑이 승화된 희생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그린 게리 루이스의 연기가 일품이다. 무뚝뚝하여 정이라곤 약에 쓰려 해도 찾아볼 수 없는 성격 이면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여린 부성도 함께 지녔음을 보여 주어 감동이 배가 된다. 뮤지컬로 환생되어 나온 빌리 엘리엇. 마음은 이미 브로드웨이에 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내 꿈이 실현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어디서나 가난과 위험의 대명사처럼 표현되었던 광부라는 직업. 진흙에서 연꽃이, 조개 속에서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빌리가 발레리노가 되는 과정과 같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하루를 쉬면 자신이 알고, 이틀을 쉬면 비평가가 알고 사흘을 쉬면 관객이 안다는 발레. 그대는 정녕 나에게도 비상의 꿈이었어라. (2008)
*웨인 슬립(Wayne Sleep) : 로열 발레의 남성무용수. 테크닉이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났으나
키가 너무 작아 주역을 맡지 못한 발레리노.
*엘레바시옹(Elevation) : 도약할 때 높이 솟아오르는 능력을 말한다. 공이 튀어 오르듯이 가볍고
탄력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