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집 노부부
유숙자
3월 말이면 완연히 봄이련만 연일 심하게 부는 바람에 낙엽 구르는 소리가 계절을 착각하게 한다. 지난가을에 달린 오렌지와 화사하게 봄을 부른 오렌지 꽃, 푸른 잎 사이로 보이는 노란 열매와 흰 꽃의 조화가 캘리포니아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봄기운에 싸여 가을을 밟으며 걷고 있는 산책길 언덕에 백인 노부부가 살았던 집이 있다. 그 집을 나는 감나무 집이라 부른다. 이제는 주인이 바뀌어 집도 새 모습으로 단장되었으나 그곳을 지날 때면 늘 같은 자리에 정물처럼 앉아 있던 노부부가 생각난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오고 거의 1년이 지났을 때 노부부를 보게 되었다. 그들은 언제나 나무 그늘에 놓여 있는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이웃과도 전혀 내왕이 없고 이따금 정원사가 드나드는 모습만 볼뿐이었다. 입양한 딸이 타 주에 산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누구도 본 사람이 없다. 어쩌다 오가며 시선이 마주쳐도 내가 아는 척을 해야 마지못해 손을 조금 들어 올릴 뿐, 세상 속에 섞이기 싫어 이웃을 외면하고 사는 사람들 같았다.
감나무 집은 단장한 지 꽤 오래되어 갈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낡은 건물인데 그것이 오히려 고풍스러운 멋을 지녔다. 거기에 커다란 감나무가 보초처럼 서 있어 운치를 더해 주었다. 가을이 되면 감나무 집 정원은 황금 물결이 인다.
윤기 나는 감잎 사이로 보이는 색깔 고운 감. 그저 바라만 봐도 좋고 욕심을 부려 본다면 한 가지 뚝 꺾어서 내 집 거실 벽에 걸어 놓고 가을을 만끽하고 싶은 그런 감이었다. 노부부는 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봄이 되어 다시 감 꽃이 필 때까지 그대로 달려 있었다.
해를 넘긴 감은 더러는 떨어지고 더러는 새들의 먹이가 되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더구나 요 며칠 휘몰아친 봄바람에 견디기 힘겨웠는지 땅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많았다. 앙상한 가지에 달린 것이라고는 축 처져 금방 떨어질 것 같은 홍시 몇십 개에 불과했다. 미국 사람들은 감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감 철이 되어도 마켓에는 소량의 감이 잠시 진열되었다가 이내 사라진다.
어느 이른 저녁, 남편과 같이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감나무 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나는 평소 바라만 보고 다니던 감을 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작은 것이라도 거라지 세일을 하는 이곳의 풍습으로 본다면 계절이 지난 감을 사겠다고 하는 것이 실례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벨을 눌렀다. 한 참 후에 노부부가 나왔다.
'감을 파시겠어요?'
'그래요.
'나무에 달린 것을 다 산다면 얼마를 드려야 할까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노부부는 서로 한동안 의논했다.
'마켓에 가면 한 개에 90센트인데 70센트씩만 내고 가져가세요.'
순간 당혹스러웠다. 지난가을 마켓에서 감 한 상자에 10달러 정도였는데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본래 종자가 그런지 그 댁 감은 자잘한데 시세에도 없는 비싼 값을 달라니 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노부인은 내 기분을 알아차린 듯
'이 감은 나무에서 자연스럽게 익어서 아주 달아요. 이 계절에 어디서 이런 감을 구할 수 있겠어요.' 부인의 음성에는 상품에 대한 자신감이 섞여 있었다.
일부러 찾아가서 벨을 누르고 다 사고 싶다고 했으니 안 살 수도 없고, 시중보다 비싸기에 10개만 사겠다고 했다. 가위와 사다리를 들고나온 노인은 어느 것을 고르겠느냐고 묻더니 사다리에 오르려는 태세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노인을 만류했다. 그는 너무 힘이 없어 보여 감을 따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일이 커질 것 같았다. 남편이 올라가 따겠다고 했으나 노인은 그냥 문밖에 서서 자신이 감을 짚을 때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한다. 마당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하게 하는 걸 보니 의심이 무척 많은 노인 같았다.
노인이 사다리를 나무에 걸쳐놓고 한 발 한 발 위로 오를 때마다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았다. 공연히 감을 산다고 해놓고 사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우리가 말한 대로 쉽게 딸 수 있는 것으로 10번째 감까지 따주었다. 크건 작건 간에 그저 노인이 무사히 내려온 것만 고마웠다. 잔가지에 달린 감은 운치 있어 보였다. 부인은 감을 종이 상자에 담아서 내게 건넸다. 한 가지에 두 개가 달린 감은 보너스라 했다. 마음을 있는 대로 졸여가며 비싼 감을 먹나 싶었는데 덤으로 한 개를 더 받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그 집을 나오며 남편은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말을 했다.
'당신 그 감 아주 싸게 살 줄 알고 다 산다고 한 것 아냐?'
내 얼굴에 모닥불이 뒤집어씌워 지는 순간이었다.
''아니에요, 한 20달러 정도는 생각했어요.
집에 돌아와 감 상자를 열었다. 순간, 맙소사 얇은 감 껍질 속으로 잔가지들이 가로세로로 찔려 있어 서너 개를 빼놓고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씻어 먹을 수도 없는 감 죽이었다. 공기를 가져다가 스푼으로 떠 담는 내 모습을 보고 있던 남편은 박장대소하며 웃는다. 나도 터진 감을 내려다보며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이래저래 감으로 인해 노인들과 만나면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게 되었다.
여름이 지나는 동안, 어쩐 일인지 노부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유심히 살펴도 현관은 굳게 닫혀 있고 빈 탁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정원사가 잔디를 말끔히 깎아 놓아 빈집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한낮의 열기가 조금 꺾여지고 시원한 바람이 코끝을 간질일 때 즈음에야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관절염이 있어 오랜 세월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에도 노부부는 이따금 집을 비웠다.
가을이 깊어 갈 무렵, 감나무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음날, 좀 이른 아침에 감나무 집으로 갔다. 마침 차고에서 뭔가를 정리하고 있는 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옆에서 부인을 거들어 주는 사람이 타 주에서 살고 있다는 딸 같았다. 부인은 나를 보자 반가워했다. 노인께서 관절염 이외에 치매 증상을 보여 노인은 양로 병원에, 자신은 딸과 함께 살기로 했다고 한다.
“한 번 만나려고 했어요. 감을 선물하고 싶어서. 집이 팔리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감이 익거든 아무 때나 와서 따가세요. 우리는 곧 떠나지만, 조카가 집을 지키고 있을 거예요.”
그 후 한 달포쯤 지났을까, 노부부는 수십 년을 살았으나 외롭게 살아왔던 집에서 손 흔들어주는 이웃 하나 없이 쓸쓸하게 떠났다. 노인들이 떠나고 난 다음, 조카의 입을 통해 나온 이야기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노부부가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당시에는 유머 감각이 뛰어나 동네에서 인기 있는 부부였다. 어느 해 겨울, 이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 도둑을 쫓던 장성한 아들이 도둑이 휘두른 흉기에 맞고 희생 되었다. 노부부가 대인 기피증이 생긴 것도, 성격이 괴팍해진 것도 아들의 죽음 이후부터였다. 노부부는 동네 사람의 짓일는지 모른다고 누구에겐가 말한 후부터 지금까지 이 집에는 이웃의 발길이 끊겼다고. 아들에 대한 한 때문에 이사도 가지 않고 수십 년을 고립되어 외톨이처럼 살아야 했던 노부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길지 않은 인생인데 그렇게밖에 살아갈 수 없었던 노부부가 한없이 측은했다. 자식의 죽음을 본 부모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그 탓에 세상을 등지고 이웃을 의심하며 살았으나 그들에게 얻어진 것은 죽음 같은 삶이었다. 아픈 상처를 싸 안고 괴로워하며 칩거로 보낸 30여 년을 세상 밖으로 눈을 돌렸다면, 아들에게 못다 한 사랑을 다른 외로운 사람들에게 쏟았다면 이렇듯 쓸쓸한 삶은 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부부가 이사 간 뒤에도 한동안 집이 팔리지 않았다. 이따금 조카라는 사람을 길에서 만나면 노부인의 말을 전하며 감 이야기를 했으나 그들의 손길이 닿았던 그대로 남겨 두고 싶어 나는 감 따올 생각을 버렸다. 잎사귀 하나 없이 쓸쓸히 달린 감처럼 어디선가 외롭게 살고 있을 부인의 모습이 어려 눈시울이 붉어진다.
바람이 분다. 봄바람인데도 나뭇잎들이 가을처럼 진다.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