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얼굴
유숙자
며칠 전 친구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장했을 때와 민낯일 때의 엄청난 차이에 대해 말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그날 엔도르핀이 무척 많이 나왔을 것 같다.
친구가 이사 와서 처음으로 집 근처 세탁소를 찾았던 때 일이다. 마침 결혼식이 있어 나가던 길에 세탁물을 맡겼단다. 일주일 후 세탁물을 찾으러 갔을 때 주인 말씀이 ‘이번에는 어머니가 오셨군요.’ 하더란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기에 화장한 모습과 민얼굴을 구별하지 못했다. 아마도 친구가 계속 어머니와 딸로 1인 2역으로 하자면 이따금 화장을 곱게 하고 가야 하는데 친구 성격으로 보아 그냥 어머니 노릇만 할 것 같다.
여권 갱신에 필요한 사진을 찍었을 때 일화를 나도 털어놓았다.
전 같으면 정성 들여 화장하고 사진관에서 찍었을 텐데 무슨 맘으로 그랬는지 민얼굴에 루주만 바르고 집 가까이에 있는 COSTCO로 갔다. 아직 눈이 처지지 않았으니 이목구비만 선명하면 괜찮을 것 같고 일부러 멀리 가지 않아도 되니 편해서였다.
한 시간 후 사진을 찾았는데 내 얼굴과 딴판이었다. 아무리 화장을 하지 않았다 해도 팔십 노인이 따로 없었다. 말 그대로 경악이다. 사진기가 낡아서 그렇게 나왔을까. 초보 직원이 찍어서 그런 것일까.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이건 아니었다. 사진의 얼굴은 호떡같이 둥글고 넓적하여 10년 후 내 모습을 미리 보는 것 같다. 거울 앞에 서서, 얼굴 옆에 사진을 대고 함께 보았다. 사진은 분명 본래의 모습과 달랐다. 어째서일까. 내가 보고 있는 실제 얼굴과 왜 판이할까. 사진은 주름살도 없이 팽팽한데 알 수 없는 미스터리다. 다시 찍을까? 이번에는 화장을 곱게 하고.
한동안 기분이 찜찜했으나 다시 찍지 않기로 했다. 다시 찍어도 이 사진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 늙은 내 모습을 확인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서다. 거울로 보는 얼굴은 다소 입체감이 있겠으나 평면 지에 올려 있는 모습, 어쩌면 이것이 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누구에게 자주 보일 것도 아니고 이따금 일면식도 없는 공항 직원에게 잠시 보여 줄 것인데 싶어 마음에 두지 않기로 했다. 남편이 찍은 여권 사진이나 증명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을 때 우스갯소리로 인민군 포로처럼 생겼다고 놀렸으나 이번 내 여권 사진이야말로 그 말에 딱 맞는 모습이었다.
몇 달 후 서울을 방문했다.
입국 순서를 밟느라 공항 직원에게 여권을 제시했다. 직원은 친절한 어조로 몇 가지 묻고 여권을 건네주었다.
“실물과 사진이 좀 다르시네요. ”하고 웃는다.
“그래요?” 하고 나도 배시시 웃었다.
그럼 그렇지, 여권 사진이 잘못 나온 거야. 여권을 받아들고 얼굴을 약간 위로 치켜들며 젊은 사람처럼 씩씩하게 걸었다. 짐을 찾으러 가는 발걸음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짐 찾는 곳에 사람이 많아 도무지 뚫고 들어갈 틈새가 없다. 겨우 고개만 디밀었다. 여기저기서 자신의 가방을 발견하고 들어 올리는데 내 것은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배웅 나온 분께 미안하여 제일 먼저 출국 절차를 밟았으니 내 짐이 맨 밑에 놓여 있음이 자명했다. 빙빙 돌고 있는 가방들을 보고 있자니 차츰 어지럼증이 일었다. 가만히 서 있는데 내가 돌아가는 것 같다. 40여 분쯤 되었을까 짐들이 거의 다 나왔을 막판이 되어서야 굴러떨어지는 가방을 보았다. 도저히 들어 올릴 기운이 없다. 가방을 두 바퀴째 돌리고 나서 겨우 들어 올렸다. 좀 전에 보무도 당당하게 걷던 사람은 어디 갔을까.
그 후로도 나이보다 젊게 보인다는 말을 들을 때면 여권 사진이 떠오른다. 내 여권 사진을 본다면, 하고 혼자 피식 웃는다. 젊게 보인다는 달콤한 말은 화장했을 때 아닌가. 화장하지 않은 모습이 본래 내 모습이다. 나이 들어 사진을 찍으면 자신의 실제가 보인다 하지 않던가. 사진은 사람의 나이를 정직하게 보여주기에.
‘여자는 나이 들어가며 친정어머니를 닮는다고 한다.’
친구가 60세 때 일이다. 퇴근해 들어오던 남편이 부엌에 있던 친구를 힐끗 보더니 ‘나는 장모님이 서 계신 줄 알았네.’ 하더란다. 80세가 훨씬 넘으신 친정어머니와 언뜻 구별되지 않았다니 친구 기분이 좋을 리 만무하였다. 더구나 남편이 동안이라 신경이 쓰이는데 그런 소리를 듣고 나니 맥이 빠지더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거울 앞에서 옷매무시를 고치던 친구는 깜짝 놀랐단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거울 속에 어머니가 서 계시더란다.
나이 든 사람들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종종 한다. 나이 들었다고 축 처져서 살지 말고 정신력으로 잘 버텨가라는, 말하자면 용기와 힘을 북돋워 주려 생긴 말일 것이다. 인간은 호기심을 잃는 시간에 늙는다고 한다.
좀 젊어 보인 들, 나이보다 늙어 보인 들, 그것이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없다. 젊어 보이는 것과 젊은 것은 판이하기에. 외형의 변화보다는 이상과 열정, 삶에 대한 경이감을 잃지 않고 정신적인 것에 충실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면서도 잠시 실상보다 좀 더 나은 허상을 좇았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우리’라는 말은 성경에 꼭꼭 숨겨두고 사진 한 장에 갈대의 몸짓처럼 흔들렸던 일이 부끄러웠다.
여권 사진 이야기가 나올 때면 ‘글쎄 사진기의 오작동이었다니까?’ 아직도 남편은 힘을 실어 주려 하지만 그 말이 조금도 달콤하게 들리지 않는 걸 보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이미 끝낸 것임이 틀림없다. 하나의 마디가 영글어 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다시 맑고 향기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