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있을테니까
유숙자
배려라는 말에 향기가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보살펴 주려고 마음 써줌이 아름답다. 은밀히, 되도록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배려는 관계를 풍요롭게 윤기 돌게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개인을 벗어나야 살기 편하다. 너무 강하게 자기를 내세우면 주변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 경원의 대상이 된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다. 서로 다른 개성끼리 만남이기에 조심스럽다. 인간관계는 수학적 공식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자신의 내부에 이상적인 정답 하나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추어 주기 원할 때 불협화음이 생긴다.
주변에서 크고 작은 대립을 목도 할 때가 있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하여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근간에는 가까운 친지 두 분이 이념이나 사상의 양립이 아닌 지극히 사소한 일로 이견을 보여 소원해지더니 급기야 불변의 진리를 하나씩 붙들고 결별했다. 부부나 친구의 관계도 성격이 같으면 팽팽히 맞서게 되고 수평일 때가 무난하다. 한쪽에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아량을 보이게 될 때 좋은 관계가 유지된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표면적으로 지는 것 같은 사람은 상대를 알기에 지는 척할 뿐이다. 이런 현명함을 보이는 사람의 삶은 편안하다. 나의 존재가 주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까, 가끔 생각해 볼 일이다.
선친께서 생전에 ‘자아는 부지’란 말씀을 자주 하셨다. 모든 어긋나는 관계는 나를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강조하셨다. 내가 하는 일은 바른 것이고 남이 하는 일은 하찮아 보여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하셨다. 남이 나와 같지 않다고 무리하게 자기의 주장을 편다든지 지나치게 간섭을 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릇되거나 틀린 것이 아닌 탓이다. 한편, 살짝 빗겨서 생각한다면, 나를 향한 간섭이나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배려내지는 사랑으로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나를 휘젓는다고 불쾌하게 생각하기 전에 조언으로 수용하면 결별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물건은 새것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좋다.’라는 말들을 한다. 관계는 곰삭은 젓갈 같은 경지까지 익어야 편하다. 나이 든 부부나 오래된 친구 사이에 별반 오해가 생기지 않는 것은 상대의 의중을 알고 이해하며 품어주고 정을 귀히 여기는 탓이다.
자신의 마음만 믿고 상대에게 쉽게 대하다가 뜻밖에 거부당하여 상처를 받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되는데 오래되지 않은 관계에서 흔히 일어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말은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아집과 고집이 나이와 정 비례하지 않아야 환영받으며, 나이가 들수록 겸손, 과묵, 너그러움과 친해질 때, 잘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 작가 ‘슈무엘 아그논’이 노벨상을 탈 무렵의 이야기이다. 예루살렘에서 손님을 태우고 달리던 택시가 있었다. 어느 골목으로 접어들자 경적을 울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가다가 한 집에서 멀찍이 떨어져 멈추었다. 이때 운전기사가 손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저 집 앞을 지나갈 수 없어요. 까닭이 궁금하시죠. 지금쯤 저 집에선 작가 아그논씨가 글을 쓰고 있을 테니까.”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은 본인의 재능과 노력 여하에도 달려있겠으나 때로는 보이지 않는 주변의 배려도 한몫을 한다는 좋은 예이다. 지나가는 사람들마저 집필을 방해할까 봐 마음 써주는 아그논은 분명히 행복한 작가이다.
배려는 인간관계의 꽃이다.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상대방이 알고 모름에 상관없이 기쁜 마음으로 베풀기에 받아들이는 처지에서는 두고두고 가슴에 맑은 향기로 남을 것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폭넓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 배려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