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머

유숙자

그날 종일토록 분 바람은 해가 지자 더욱 기세가 등등했다. 낙엽 구르는 소리,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쏠리며 울부짖는 나뭇가지들의 부딪침이 파도 소리처럼 크게 들려 잠들기 어려웠다. 다음 날도 여전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이처럼 심한 바람은 처음 보았다. 창밖 자카란다의 몸부림이 나무의 혼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것 같다. 굵은 가지가 찢겨 나무 사이에 걸려 있고 숱한 잔가지가 수북이 쌓였다. 생살 찢어지는 아픔이란 게 바로 저런 것이구나. 마음이 무척 언짢았다.

 

부러진 나무들의 처참한 광경을 보고 있을 때 친구 K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집 엘머가 간밤에 쓰러졌어요.’

‘집은 괜찮은가요?’

‘마당 쪽으로 길게 누웠어요.

엘머는 친구가 자식처럼 사랑하는 나무다. 우람한 것이 잘생기기도 했지만, 집 전체를 덮어줄 만큼 이파리를 많이 달고 있다. 친구가 엘머에 대해 써 놓은 감상기를 읽은 적이 있다.

 

‘잎이 무성한 여름에는 보름달도 그 사이를 뚫지 못한다. 8월이 되면 조금씩 마른 잎은 날리기 시작한다. 밤 10시경 엘머의 꼭대기에 보름달이 걸리면 그때 달을 보아야 한다. 엘머의 수많은 가지가 그림자를 만들며 마당에서 춤을 춘다. 파도 같기도 하고 호수의 수면 같기도 하다. 벽을 타고 올라가면서 화려하게 수놓는 달빛과 엘머의 가지 그림자를 숨 막히게 바라볼 때면 남쪽 창 모두가 보름달을 받아서 집안은 눈밭이 된다. 식당과 부엌 식탁 위에 햇빛이 고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겨울이 왔다는 신호다. 꽉 막고 빛을 차단하던 엘머의 나뭇잎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줄기만 남아 있기에 엘머의 마른 가지 위에 다시 싹이 트이는 날은, 그때는 내 삶도 움이 돋아나겠지 하며 설렌다.’

 

친구는 엘머와의 작별을 미리 알기라도 했던 듯 엘머가 쓰러지기 전날 뒤뜰에 나가 엘머를 안아주었단다. 오랫동안 엘머의 거친 거죽에 팔을 두르고 얼굴을 대고 기도하고 있었단다. 작고하신 남편과 아들과 친구는 엘머의 그늘이 그들의 기도처였기에.

 

불과 몇 주 전, 햇빛이 고이는 친구의 집 식탁에서 오찬을 나눴다. 가을 햇빛을 마구 흩어지게 하는 바람과 다람쥐가 와서 노니는 뒷마당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 꽃무늬 커튼이 드리워진 창 변에서 우리는 소녀처럼 깔깔대며 끝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고요와 평안이 깃든 그 공간이 어머니 품같이 아늑했다.

 

엘머를 잃은 친구는 가슴이 너무 아파 말을 잇지 못한다. 슬픔이 목젖을 누르는 것 같았다. 그 정원을 좋아했고 자주 들락거렸기에 나도 친구와 같은 마음이다. 친구의 슬픔을 충분히 이해한 아들이 그 거대한 엘머로 가구를 만들어 드리겠다는 말을 듣고 다소나마 위로를 받은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는지. 물론 나무를 켜야 하고, 말려야 하고, 장인의 손을 거쳐 가구로 완성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으나 지금으로써 유일하게 엘머를 간직하는 방법이다. 엘머에 대한 사랑이 극진함을 알기에 내가 친구의 마음이 되어 본다.

 

나의 사랑 엘머 여

듬직한 나무 한 그루 거기 있어 난 언제나 기댈 수 있었네.
바람의 속삭임이나 빗줄기의 간지럽힘보다
그대, 내 기도와 노래와 이야기 듣기를 더 즐겼지.
내가 하나님 이외에 유일하게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었던 너.
너는 묵묵히 나의 괴로움과 슬픔. 답답한 심정을 이해하고 위로해 주었지.
사랑하는 임이 떠나듯 너는 홀연히 내 곁에서, 삶에서 떠나 영원 속에 묻혔다.

네가 무수히 자랑하며 흐뭇해하던 너의 수많은 옷깃 때문이었다.
때아닌 광풍이 몰아쳐 사랑스러운 너를 내 곁에서 빼앗아 갔다.
나는 믿는다. 네가 다시 새롭게 태어나 내 곁을 지켜주리라는 것을.
비록 내 창가에 그림자를 드리워주지 못하더라도 다람쥐가 오르락내리락할 수는 없더라도
내 곁에 있어 향기와 추억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리라 믿는다. 
훗날, 내가 이 집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로 가게 되더라도
엘머, 너를 안고 갈 수 없기에 너를 다시 태어나게 하리라.

사랑하는 나의 엘머 여, 그때까지 우리 잠시 떨어져 있자.
머지않아 함께 있을 그 날을 꿈꾸며 묵묵히 기다리자.
그대, 나의 사랑 엘머 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