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벅(Pearl S. Buck 1892~1973)은 미국인과 아시아인 혼혈아들을 입양시키는 일에 헌신했고 스스로도 9명의 양자를 받아 들였습니다. 1941년 혼혈아를 돌보는 비영리 기관인 '환영의 집'을 운영하기도 했고 1964년 펄벅재단을 설립했습니다.
1967년 수입의 대부분인 7백만 달러가 넘는 돈을 재단에 희사했습니다. 한국에도 지부가 있어 서울에도 두 차례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소설 [대지]로 1938년 노벨문학상을 탄 펄벅여사가 1960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여행지 경주를 방문하던 그녀의 눈에 아주 진기한 풍경이 목격되었습니다.
황혼 무렵, 소달구지에 볏단을 싣고 가던 농부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신선했던 모양입니다. 귀국 후 그녀는 [살아있는 갈대]란 소설을 쓰면서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1960년 방한한 미국 소설가 펄벅... 그녀는 늦가을에 군용 지프를 개조한 차를 타고 경주를 향해 달렸다.
노랗게 물든 들판에선 농부들이 추수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차가 경주 안강 부근을 지날 무렵,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보였다. 그 옆에는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펄벅이 길을 안내하는 통역에게 물었다.
“아니, 저 농부는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달구지에 싣고 가면 되잖아요?”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펄벅은 그때의 감동을 글로 옮겼다.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 않아도 알겠다. 볏가리 짐을 지고 가는 저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자, 오늘 인류가 되찾아야 할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다.
내 조국, 내 고향, 미국의 농부라면 저렇게 힘들게 짐을 나누어 지지 않고,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채찍질 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농부는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지고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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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도 펄벅이 느꼈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인에게 있는 정, 그 정이 동물에게도 이입된것이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