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수필 25집을 읽으며 / 이정호
재미수필집이 처음 나온 지 이제 25년이 되어간다. 한세기의 사분의 일이 되어가고 거의 한세대를 향해 간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내가 처음 수필가 협회에 발을 디딘 것은 약 20년전 신문광고를 보고서 였다. 평소에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광고가 나와서 찾아 간 것이다. 그때도 연말 출판 기념회였으며 용수산 식당에서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에 많은 선배들이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타주로 이사하신 분들도 계시고 몸이 아프신 분들도 계시다.
그때는 주로 한미 교육원에서 모임을 가졌고 때때로 식당의 방을 빌려서 글 공부를 하기도 했다. 때때로 유명한 강사도 초빙해서 세미나를 가졌고 그런 것들이 글을 쓰는 동기부여를 주었다. 다방면의 회원들이 왔고 한인타운에서 유명한 식당을 운영하는 여자 회원도 왔다. 그런데 그 회원의 아들이 경찰이었는데 사고로 죽었고 신문에 크게 났었다. 그때 그 회원의 수심에 찬 우울한 얼굴도 떠오른다.
합평도 많이 했었다. 글을 써 온 사람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그래도 그 글의 스타일로 대개 누구 써 온 지는 짐작을 한다. 한 번은 합평을 하는데 한 회원이 이 글을 써 온 사람은 수필을 어떻게 쓰는 가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사자는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나는 그 글을 써 온 사람이 누구인지는 짐작하였고 오랫동안 글을 써 온 사람이었다. 다른 회원들도 누가 써 온 지를 짐작했을 것이다. 그것이 원인인지는 모르지만 그 후로 그 글을 써 온 회원은 수필가 협회에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합평을 할 때는 조심해서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재미수필 25집 출판기념회 행사에는 멀리 타주에서도 신인상을 수상하기위해서 가족들과 같이 온 회원도 있다. 그런데 그 회원이 말하기를 용수산에서 행사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다른 회원이 “이게 뭐라고” 하면서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멀리서 여기까지 온 것을 잠시 후회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좀 오바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행사가 진행되고 또 다른 회원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어서 그런 생각이 사라지고 이곳에 참 잘 왔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번 재미 수필집에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다. 각자의 개성과 삶에서 우러러 나오는 다양한 수필들이 실려 있다. 문학상을 받은 작품에서는 유타주의 카납에서 약 40마일 떨어져 있고 애리조나 주에 위치해 있는 더 웨이브의 신비로운 자연을 묘사한다. 물결모양으로 휘몰아치는 모래 바위에서 압도당하는 작가는 ‘문득 작은 모래알이 되어 바람을 타고 물결을 타며 그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신인상을 받은 회원의 한 작품에서는 항상 준비되어 있고 고운 얼굴의 엄마 모습에서 엄마는 항상 화장을 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고 한다.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해 온 어머니, 나중에는 치매에 걸리셨고 자식들은 잘 돌보아 드렸다. 엄마에 대한 애잔한 정을 느끼며 고맙다는 말로도 사랑한다는 말로도 다 채워지지 않는다는 그 엄마가 던지 한마디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표가 아닐까. “너무 애쓰며 살지 마라. 살아보니 그저 맘 편한 게 최고더라.”
또 한편의 신인상 작품에서는 집 마당에 피어 있는 장미에서 나오는 향기에게서 아름다운 삶을 배운다. ‘달콤한 향기와 풍성한 꿀을 가진 꽃에 벌과 나비가 찾아오듯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에게는 사람이 따르게 된다. 나도 온 동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우리 집 장미처럼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작품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다음 재미수필집에서도 각자의 생활과 경험과 생각에서 우러나오는 멋진 수필을 기대해본다.
이 정호 부회장님,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갖고계신 분이세요. 오랜 시간을 한결같이 협회에 보이지 않는 기둥처럼 서계신 믿음직한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 많이 계신 수필가협회는 앞으로도 선하게 정진할것입니다.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