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
바람 불면 떠나야 할 것 같다
비좁은 화분에 갇혀, 철사줄에 묶여
비위 맞추며 살아가는 분재 안쓰러워
사방 한 뼘도 되지 않는 흙 속에
뿌리 내리고 꽃 피우는 탱자나무
벚나무 보리수 소나무까지,
친정아버지 멋스런 취향인 줄 알지만
그들의 팔에 감긴 그늘 풀어주어
산새 오가는 숲길에 놓아주고 싶다
새도 물도 바람도 없는
온실에서 꽃 피우고 열매 맺으니
사람의 이기심 대하는
그들의 무심에 경외감이 들뿐
바람이 광기 몰고 오면 친정에 가야겠다
온실 문 활짝 열어 좁쌀 한주먹 흩뿌려
골목 안 참새 비둘기 불러 들여야겠다
팔다리 비틀리어 숲에 살지 못해도
온실에도 새 울고 바람 분다고
살다보면 그런 날 더러 있다고
*2016년 <시와 정신> 신인상 당선작입니다. 게으름으로 이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