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의 애국자.jpg

                                                     구구타부의 동상 앞에서


에스토니아(Estonia)의 위대한 애국자, 구스타브 어네색스(Gustav Ernesaks) 김수영 


   에스토니아는 발틱해협에 위치한 조그마한 나라다. 라트비아와 리두아니아와 함께 세계 제이차대전 때 러시아 연방 정부의 위성국가였다. 구스타브는 이때 근 반세기 동안 이 나라의 음악 지도자로 러시아를 몰아내고 에스토니아 독립을 끌어낸 장 본인이었다. 매년 노래 축제를 열어 탈린 야외 음악당(Talinn Song Festival Grounds)에서 에스토니아 말로 노래를 불러 국민으로 하여금 애국심을 고취하고 결국 독립을 끌어 낸 후 1944년 노래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 당시 에스토니아 언어를 사용을 금지한 상태였는데 노래만은 에스토니아 말로 불렀다고 한다. 합창당원만 만 오천 명이었고 모인 군중들은 십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온 군중이 함께 합창을 불렀을 때 너무나 감동적이었고 소련 군인들도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에스토니아 남성 국립합창단(RAM)을 그가 죽을 때까지 진두지휘하였고 노래 중에 애국가도 만들어 불렀다고 한다. 요즈음도 5년마다 노래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1988년에 소련 연방정부가 무너지기 전 3년 되던 해에 애국가(patriotic hymns)를 불렀는데 노래하는 혁명(singing revolution)이라 불렀고 그 노래로 결국 소련의 통치를 몰아내게 이른 것이다. 그는 1945년과 1990년 사이에 불렀던 에스토니아의 국가(Estonia SSR anthem)의 작곡가였다. 

   나는 8월 중순에 이 나라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야외 음악당을 찾아가 보았다. 돔 형식으로 된 야회음악당 천장이 참 인상적이었고 청중들이 앉을 자리가 엄청나게 넓고 사방으로 둘러 싸인 나무들이 참 아름다웠다. 어떤 때는 삼십만 명이 모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 많은 청중들이 큰 소리로 합창을 함께 불렀을 때 온 천지가 떠나갈 듯 감동적이었고 잔인한 공산당의 소련 정부도 어쩔 수 없이 에스토니아의 독립을 선포하고 물러갔다고 한다. 청중의 자리가 평지가 아니고 비스듬히 언덕으로 되어 있어서 뒤에서도 합창단을 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제일 뒤쪽 높은 곳에 구스타브의 앉은 동상을 만들어 놓았다. 나는 그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기념 사진을 찍고 발걸음을 옮기면서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도 약소민족으로서 중국과 일본의 외세에 많이 시달림을 받았고 특이 36년년 동안 일본의 압제하게 있었을 때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애국자 33인과 스코필드 박사님 유관순 등 애국자들을 생각해 보았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 지도자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목숨을 건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후손들은 자유를 만끽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참 뜻 깊은 여행이었고 나를 돌아다 보는 계기가 되었다. 시 한 편을 써 보았다.


북유럽 여행에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에스토니아, 독일, 덴마크 

7개국의 흥망성쇠를 보았다 


왕실과 귀족들의 부귀영화 

민중의 혁명, 전쟁과 평화, 

인간의 욕망과 자연에 대한 도전, 


문화유산과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은 산 교과서는 

나의 갈증을 없애주는 

생수의 오아시스였다 


휴식을 통한 여유와 깊은 사유 속에서 

오늘을 비쳐보는 거울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지름길인 

진리의 금광이었다 


이렇듯 이번 여행은 

원석을 갈고 닦아 

아름다운 보석을 만드는 학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