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대학 졸업반 딸아이가 연말 방학으로 잠시 집에 왔다. 반가워서 여기저기 만져보고 안아보고 하는 것도 잠시, 무엇인가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다.

 

지난여름 방학초 집에 왔을 때다. 졸업후의 나갈 길을 위해 방학 동안 할 일을 열심히 찾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인지 얘기 도중 울먹거렸다. 미술 전공 학생에 대한 수요가 그리 많겠는가. 나의 얘기 방향은 전공이 이유라는 결론을 바탕으로 하니 힘든 마음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더 속만 상하게 만들 결과였다.

 

아마도 그때 그런 기억이 집에 오면서 되살아났고 아빠는 분명히 또 속을 헤집는 잔소리를 하리라는 생각을 하니, 와서 있을 며칠간이 바늘방석이리라. 그래서 내 눈치를 보게 되고, 나 또한 안 보면 잊어버리다가도 보면 졸업이 이제 몇 달 남지 않았는데 제 앞가림은 하려나 하는 염려가 얼굴에 쓰여 있는 모양이다. 지나가는 말로 며칠 동안 그 말이 왜 또 안 나오겠나 한다.

 

머릿속에 혜진이의 그 말이 맴돈다. 과연 내가 간섭하고 잔소리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오히려 딸과의 사이만 멀어지고 별로 대면하고 싶지 않게 되리라. 아빠와 단둘이 식사라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과연 들까. 이제 나의 역할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할 때 도와주는 그것이리라. 그리고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낼 기대도 당연이 아닌 감사로 여길 때다. 물질적으론 아직 의존하지만 그 이외는 완전 독립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사람 관계는 기대가 있을 때 실망하게 된다. 그것부터 깨달어야겠다. 자식이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 기대를 접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리라. 설령 그리 안 되더라도 미워하지 말고. 그동안 자식을 키우면서 경험한 그 이상을 바램은 욕심이다.

 

성탄절 아침 일찍 집사람을 배웅하러 혜진이와 LA공항에 나갔다. 연말 집사람이 서울 친정 부모님 댁에 다녀오기로 했다. 두분 모두 80이 넘으셨으니 시간이 되는 한 자주 뵙고 싶은 딸의 마음이리라. 또 가사를 떠나 혼자서 보내는 시간도 필요하고. 공항이 덜 바쁘리라하고 성탄절로 잡아 출발했다.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국밥을 먹으며 얘기하다 눈 내린 산에 바람을 쐬러 가기로 했다. 둘만이 왕복 3시간을 차에서 함께 보내야 하는 데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나 고민을 하는데, 출발하자마자 혜진이가 iPhone으로 신나는 음악을 틀기 시작한다.

 

Bee Gees, Michael Jackson같이 나도 잘 아는 빠른 박자의 노래를 선곡한다. 혜진이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앉아서 춤을 춘다. 나도 어느새 함께 부르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마치 친구들이 그러듯이. 그야말로 아빠의 체통이고 무엇이고다.

 

그렇게 한 시간 이상을 노래부르고 장단을 맞추다 보니 하얀 눈이 덮인 San Gorgonio 정상이 눈앞에 보인다. 눈밭에서 딸과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 신청곡으로 이어졌다.

 

Roberta Flack의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로 시작해서 Adele의 절규로 이어지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노래는 그치지 않았다. 이런 아빠의 모습이 혜진이에겐 낯설기만 하겠지. 항상 잔소리꾼인 줄로만 알았는데.

 

미국생활에서 하고픈 것 중 하나가 오픈카를 운전하며 모자를 꾹 눌러 쓰고 좋아하는 사람과 끝없이 열린 길을 노래 부르며 달리는 것이었는데. 혜진아 고마워. 다음에도 또 하자. 비록 오픈카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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