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금연(禁煙) 하세요!

愚步 김토마스  

 

어느 날 이른 새벽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던 중이었다. 뉴스를 살펴보려고 셀 폰을 켠 순간 메시지가 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무심코 열어 보았다.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James씨가 새벽 419분에 메시지를 보내 온 것을 모르고 있었던 나는 서둘러 들여다보았다. “김 선생님, 오늘 새벽에 Peter씨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어요. 갑작스런 사고라 경찰에서 검시를 하고 있고 오늘 오후 경에 시신을 돌려준다고 합니다, 지금 큰 아들이 장례식장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10시경 아침일이 끝나고 다시 그 아이랑 연락 할 거예요.” 나는 놀란 마음으로 급히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Peter씨 가요? 통화 가능해요?”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그는 새벽 1시경에 Peter씨 부인의 연락을 받고 급히 집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Peter씨는 일을 하고 돌아와 저녁식사를 끝내고 집에 있었는데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켰으며 증세가 심해져서 쓰러졌다고 한다. 그래서 부인이 급히 911에 전화를 했고 응급처치요원들이 각종 소생술을 시도했으나 끝내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전일이 끝나면 가겠다고 약속한 후에 전화를 끊고 출근길을 서둘러야 만 했다. 그리고 집으로 전화해서 아내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해 주고 일이 끝나는 대로 만나서 함께 가자고 약속을 했다.

 

직장에서 일을 하는 중에도 머릿속은 온통 이미 고인이 된 Peter씨와의 지난 일들이 스쳐가면서 일이 손에 잘 잡히질 않아 하는 둥 마는 둥 하였던 것 같다. 어수선한 기분으로 일을 겨우 마치고 나서 가까운 전철역으로 차를 가지고 나온 아내와 만나 고인의 집으로 서둘러서 달려갔다. 도착한 집에는 이미 간단한 빈소가 마련되어 있었고 부인의 가까운 친구들이 찾아와서 음식을 만들면서 손님 맞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으며 James씨를 포함한 지인들은 슬픈 마음을 달래며 삼삼오오 모여앉아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미망인은 초죽음이 된 모습으로 흐느끼면서 우리를 맞이하였고 나는 서둘러 몇 마디 인사를 하기 바빴다. “아니 이게 웬 날벼락 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얘기를 들어보니 고인은 어제 오후에 일 을 잘 마치고 들어와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는데 잠시 후에 머리가 무겁고 숨 쉬는 게 편치 않다고 호소하면서 인삼차를 타 달라고 해서 마셨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는 가슴이 답답하다면서 잠시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 왔는데 밖에서 찬바람을 쐬고 온 때문인지 갑자기 숨을 바쁘게 몰아쉬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쓰러졌다고 한다. 다급하게 상황이 돌아갔고 평상시에 숨 쉬는 게 불편하면 사용했던 천식용 흡입기를 사용해서 호전되기를 기대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어서 911에 전화하여 도움을 요청하였다는 것이다.

 

부인은 다급한 마음에 옆집에 사는 한인 집을 찾아 노크하고 도움을 청했으나 집에 아무도 없는지 전혀 반응이 없어서 집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으며, 다급한 마음에 가슴을 반복해서 누르는 응급처치를 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전화를 건지 약 20분쯤 지나고 나서야 911 응급처치요원들이 도착했으며 진단을 한 후 환자의 상태가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도 판단하고는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포기하고 현장에서 응급조치를 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약 2시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소생술을 시도했지만 Peter씨를 회복시키지 못했고 결국 숨을 거두었다는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평소에 술은 삼갔으나 담배를 즐겨 피운 그는 이미 딴 세상 사람이 되어서 약간의 미소를 띤 모습의 영정사진으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누군가 지펴놓은 담배 한 대가 쓸쓸하게 연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 말이 씨가 된다고 하더니…….” 가끔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에게 했던 말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이 40 넘으면 먼저 가는 놈이 형님이야…….”

 

술잔을 따르고 절을 올린 후 돌아서서 큰아들과 맞절을 하고 몇 마디 위로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래. 아버지가 이렇게 무정하게 돌아가셨구나. 어쩌느냐? 너무 슬퍼하지 말고 용기를 갖기 바란다. 어머니 많이 위로해 드리고 가족이 힘을 합쳐 잘 살아가야 한다. 그게 돌아가신 아버님을 위한 길이기도 해.” 나는 다시 영정사진을 바라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니 몇 일전에 나보고 내일모레 부부동반으로 만나서 점심먹자고 하더니……. 좋은 일이 있다고 점심 사겠다고 하더니……. 나보다 여덟 살이나 아래인 사람이 나한테 형님 소리 들으려고 먼저 가셨군 그래…….”

 

잠시 후 나는 아는 이들과 간단히 목례로 인사를 나누고 둘러앉아서 지난날 고인의 추억담과 더불어 장례절차에 관한 얘기를 두서없이 나누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참으로 짧고 허망한 것이 인생살이란 생각이 밀려왔다. 그 순간 무심코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우리가 사는 것도 그저 한 순간이야. 죽음이란 건 아무 예고도 없이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거네.……. Peter씨는 이제 내 앞에 없네, 며칠 전에 만나서 얘기도 하고 웃고 그랬는데……. 이른 아침에 깔린 짙은 안개가 어렴풋이 해가 떠오르는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듯이 이 사람이 가고 없네. 이젠 가고 여기 없어. 허 참…….”

 

Peter씨는 몇 개월 전에 핼쑥한 얼굴로 내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가끔 숨 쉬는 게 몹시 불편해서 패밀리닥터를 만나고 왔는데 진단결과가 폐쇄성폐질환으로 나왔다며 걱정이 된다고……. 물론 닥터는 우선 담배부터 당장 끊어야 된다고 야단을 쳤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난 이후에는, 사실 중년에 접어든 사람에게 내가 간섭하는 것은 조심스러웠지만, 만날 때마다 가족을 생각해서 라도 가장이 건강해야 하니 담배를 얼른 끊으라고 야단치며 여러 차례 나무랐던 기억도 난다. 어떤 때는 담배를 끊고 싶은데 잘 안된다고 하소연하기에 당신은 운동을 해서 유단자라고 하더니 담배 하나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 보면 사내도 아니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였었다.

 

나도 45세에 이민을 올 때까지 담배를 피웠으니 남을 탓할 입장은 못 되지만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분명하게 끊었으니 그나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아내가 나에게 유일하게 칭찬해 주는 것이 금연한 것이고, 그 덕에 성장기에 있던 두 아들이 담배를 안 피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가끔 얘기한 기억도 나고 해서 나는 Peter씨를 만날 때 마다 집요하게 괴롭혔던 것이다.

 

하지만 Peter씨는 시도하고는 포기하고 다시 시도하고는 또 포기하기를 반복하더니 끝내 금연을 실패하였고 저세상으로 돌아갈 때 까지 해결하지 못 하고 말았다, 한번은 내가 아주 심각한 얼굴로 손을 내밀면서 사나이 대 사나이로 약속하자면서 악수까지 하고 다짐을 받았지만 그것도 허사였던 일이 있었다. 사내대장부가 그것 하나 해결 못하는 것을 보고 몹시 안타까웠으며 한편으로는 심약하고 가족에게 무책임한 그가 밉다는 생각까지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의 아내는 그가 폐쇄성폐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그는 자신의 몸이 허물어져 나가는 데도 아내가 걱정을 하게 될까봐 끝내 자신의 어려움을 숨기고 살았던 모양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이민을 선택한 사람이 그렇게도 악착같이 살다가 허무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다니……. 관계가 불편해 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에게 담배를 제발 그만 피우라고 좀 더 냉정하게 싫은 소리도 하고 야단쳐서 담배를 끊게 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좀 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직 아이들 결혼도 남아있고 할 일이 많은데……. 나잇살 더 먹었다는 이유 하나로 형님소리를 듣고 살면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뒤늦은 후회가 한동안 나를 괴롭히곤 하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Peter씨와 가장 친하게 어울렸던 단짝 James씨가 유난히도 눈에 밟힌다. 나보다 두 살 아래인 James씨는 Peter씨가 유명을 달리하기 전 그리고 후에도 내가 지속적으로 담배를 끊으라고 당부했던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게 당신 건강에도 좋고 자녀교육에도 좋으니 제발 담배를 끊어 보라고, 내 경험과 Peter씨의 사례를 들어가면서, 열심히 아주 부지런히 설득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처음에는 내 눈치를 보면서 담배를 덜 피우는 것 같더니 요즘에는 내 앞에서도 아주 태연하게 대놓고 담배를 펴 대고 있으니……. 내가 그를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나와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자주 만날 뿐만 아니라, 개인사정이 있어서 이국땅에서 자녀들만 데리고 홀로 살면서 고단하고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Peter씨와 같은 불상사를 또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내 욕심에 속은 타들어 가는데……. 그는 담배 때문에 유명을 달리한 친구의 죽음조차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저렇게 담배를 피워대고 있으니 참으로 야속하기도 하다. 이민자에겐 건강이 재산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틈만 나면 담배를 즐기는 내 인생의 또 다른 친구 James씨를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새해에는 제발 금연(禁煙)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