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 위의 꽃

 

이리나

 

재스민 향기가 요란한 길을 걷는다. 점심 먹고 나른해진 몸을 추스르려고 일하고 있는 빌딩의 뒷길을 걷는다. 작은 하얀 별무늬의 재스민은 빌딩의 벽을 타고 한없이 올라간다. 그 앞으로 핑크빛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철쭉꽃이 만발한다. 이미 보도블록은 떨어진 붉은 꽃잎으로 덮였다. 봄바람에 노곤해지고 꽃향기에 취한 몸을 이끌고 습관적으로 발을 뗀다. 순간 바로 앞에 어떤 것이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개똥이다. 덩치 큰 개가 싼 똥인지 몹시 굵다. 커다란 개똥은 수북이 쌓인 꽃더미 위에 뒹굴었는지 붉은 꽃잎으로 덮였다. 그 위에는 누가 일부러 꽂아 놓은 것처럼 한 송이의 재스민 꽃이 가볍게 놓여있다. 바람이었나.

 

어느 전위 예술작가의 작품이 이것을 따라갈까. 길에서 흔히 보는 개똥도 아름다워 보일 수 있구나. 신선한 느낌이다. 김치볶음밥만 먹다가 어느 날 김치 볶음국수를 먹은 경험이었다. 충격이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물들이 섞여서 새로운 개념을 만든다.

 

일시에 나의 고정관념이 깨어진다. 똥이나 꽃이나 다 자연의 한 부분이다. 먹은 음식이 몸에서 소화되어 밖으로 나오는 찌꺼기가 바로 똥이다. 옛날에 동물을 제물로 바칠 때도 이것은 제거한 후에 제사를 드렸다. 한마디로 추함과 더러움의 표상이다. 그와 반대로 꽃은 아름다움과 고귀한 것의 표상이다. 랄프 에머슨은 대지는 꽃으로 웃는다.’고 했다. 이 아름답고 거대한 대지가 함빡 크게 웃으면 큰 꽃이 피어나고 소박하게 웃으면 작은 꽃들이 피어난단다. 그래서 꽃은 아름답다. 지금 내 앞에 이 둘이 공존하고 있다. 함께 있기에 더러운 것도 아름답게 보이고 고귀한 것도 추하게 보인다. 이런 일도 일어날 수가 있다.

 

아름다움과 추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은 어딜까. 바로 나다. 예쁜 탤런트나 슈퍼 모델은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뽑힌다. 과연 이들에게도 추함이 존재할까. 존재한다. 내면의 추함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들에게도 삶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거다. 아마도 빼어난 미모 때문에 범인이 알지 못하는 말하기 힘든 일도 당했을 것이다. 하긴 어디 힘든 일이 미스코리아에게만 일어나랴. 우리에게도 일어난다. 살다 보면 함께 하기 어려운 사람과 같이 있어야 하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럴수록 고귀하게 보이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일이 꼬여갈수록 나의 입과 마음은 계속해서 더러워진다. 마치 꽃잎에 둘려있는 개똥처럼. 맞다. 누구나 저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인생이 마치 길에서 뒹구는 개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렇게 삶에 여유가 없을 때는 생활신조처럼 쓰는 말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나만의 생활 철학이.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교의 나이 지긋한 철학 박사가 TV 대담시간에 나와서 한 말이 생각난다. ‘개똥철학도 엄연한 철학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삶을 보는 관점은 제각각입니다. 이것을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하나의 고찰로 생각하면 개똥철학도 엄연한 철학의 일종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심오하고 난해한 학문인 철학을 연구하는 철학 박사들을 지도한다는 박사 중의 박사가 누런 황금색 넥타이를 매고 한 말이다. 흘려들을 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이 어우러진 삶을 나는 산다.

 

개도 꽃향기에 취해서 꽃이 지천인 바닥에 똥을 쌌다. 세상 살기도 어려운데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의 조화를 이루며 살려니 더 어렵다. 이것을 보고 장자는 뭐라고 했을까. 장자는 인생이란 그냥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라 했다. 호접지몽이련가. 어느 날 장자는 낮잠을 자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장자는 나비가 되어서 이곳저곳을 날아다녔다. 그 꿈이 하도 현실 같아서 꿈을 깬 후에 장자가 말하길,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데서 유래된 고사성어다. 그리고 만물에는 구분이 없다고 했다. 따라서 고귀한 것과 더러움의 구분 없으니 둘을 어우르며 살라고 한다. . 어렵다.

 

살짝 바람이 분다. 재스민 꽃향기가 몸을 휘젓는다. 노곤해진 몸으로 장자의 도까지 생각하기에는 오늘 해가 저물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단상을 뒤로하고 다시 걸음을 떼려 하자 발아래 있는 개똥이 보인다. 개똥은 아직도 붉은 꽃잎에 쌓여 널브러져 있다. ! 장자의 혼이 들어간 개가 싼 똥인지. 아직도 상념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