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도시인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더 가치있는 삶’

 

 
 
 

 

스코트·헬렌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몇 차례의 금융위기가 삶의 뿌리를 뒤흔들었다. 매캐한 매연과 자극적인 음식은 건강을 해쳤다. 자본주의 사회는 끝없이 더 많은 소비를 부추겼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지칠 대로 지쳐 도시를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가길 꿈꾸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대공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1932년, 세계 최고의 대도시 뉴욕을 떠나 버몬트 시골로 향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조화로운 삶>(보리)은 스콧 니어링·헬렌 니어링 부부가 버몬트 숲에서 보낸 20년의 기록이다.

이 책은 1954년 미국에서 처음 나왔다. 2차대전 이후 미국 경제가 회복하고 본격적인 대중 소비사회로 진입한 시점이었다. 흥청망청하던 미국 사람들이 스스로 돌집을 짓고 몇 가지 채소만 먹는 시골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리 없었다. <조화로운 삶>은 1960년대 후반, 자본주의와 전쟁을 비판하는 청년문화가 떠오른 뒤에야 비로소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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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그보다 한참 뒤늦은 2000년 시인 류시화씨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헬렌 니어링의 자서전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가 소개돼 니어링 부부의 삶이 알려진 뒤 3년이 지난 때였다. 지금까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16만부, <조화로운 삶>은 11만부가 판매됐다. 두 책 모두 지금도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도시를 떠나면서 니어링 부부는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독립된 경제를 꾸려 불황을 타지 않는 삶을 살기, 건강을 지키기,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살기. 이를 위해 세부적인 원칙을 정했다.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의 절반쯤은 자급자족했다. 남은 농산물로 돈 벌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부부에게 필요하지 않은 채소와 곡식은 이웃과 친구들에게 나누어줬다.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어서 짐승을 기르지 않았다.

오전에는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하고 오후에는 독서, 사색 등으로 자유 시간을 보냈다. 한 해의 양식이 마련되면 더 이상 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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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몬트 숲 속 손수 지은 돌집에서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스코트 니어링(왼쪽)과 헬렌 니어링 부부.

 

<조화로운 삶>의 시간적 배경은 한국 출간 시점과 70년 차이가 나고, 버먼트 숲의 농사 환경도 한국과는 무척 다르다. 그럼에도 이 책이 한국 독자에게 호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종철 녹색평론 대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미국의 공황 시대에 힘을 썼던 자본주의의 포악한 논리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구병 보리 대표는 “20세기의 노동자는 유해 음식, 대량살상무기 같이 자신이 만드는 것이 인간에게 나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 했다”며 “아직 건강한 생산을 할 수 있는 영역은 농사밖에 없다는 깨달음에 많은 분들이 공감한 듯하다”고 말했다. <조화로운 삶>은 60년대 후반 미국 젊은이들에게 그랬듯이, 2000년대 한국 도시의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도시인이 낙향해 자연과 어울려 살아간 경험담을 그렸다는 점에서 <조화로운 삶>은 그보다 정확히 100년 전에 나온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나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산 기간이 2년여에 불과한 반면, 니어링 부부는 그보다 10배 이상 버몬트 숲에 머물렀다. 버몬트에 스키장이 생기고 관광객이 늘어나자, 니어링 부부는 손수 지어 정든 돌집과 밭을 버리고 메인 주의 한적한 바닷가로 옮겨가 다시 26년을 살았다. 소로의 은둔이 다소 개인주의적이었다면, 니어링 부부는 자본주의, 제국주의에 물든 현대적 삶의 대안을 찾으려 했다.

이름 없는 부부의 시골 생활과 세계의 변화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니어링 부부는 당시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우리는 의무로부터 피해 달아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의무를 찾고 있었다”고 니어링 부부는 적었다. 당시 미국적 삶의 방식에 지친 여느 지식인들처럼 파리, 멕시코, 파라과이로 갈 수도 있었지만 니어링 부부는 미국에 머물며 미국인에게 깨달음을 주기를 원했다. 그들은 “사회 체제의 대안이 될 원칙과 실제를 세우고 다듬어 공식으로 만드는 일”과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세계 안에서나마 올바르게 살아가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일”을 하려 했다.

도시에 사는 독자가 <조화로운 삶>의 삶을 고스란히 실천하기는 어렵다. 윤구병 대표는 “도시에 살면서 조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면 바랄 나위 없이 좋지만,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며 “노동자들의 연대를 통해 회사에서 시키는 강제 노동의 시간을 줄이고 스스로 통제하는 삶의 여유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장석주 시인은 “몸은 도시적 삶의 공간 속에서 움직이고 이상은 현대적 삶이 가지고 있는 병폐를 부정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어하는 간극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순응하는 것도 무책임한 삶”이라고 말했다.

 

경향 신문 백승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