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것들 / 이은희

 

 

"우리는 얼마나 흔들리는 물통을 가지고 있는가?" 이는 성 프란시스가 자신의 깨달음을 친구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하루는 하인이 우물을 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물을 길을 때마다 한 가지 이상한 행동을 하였다. 물을 가득 채운 후 끌어올릴 때 조그마한 나무토막 하나를 던져 넣는 것이었다. 이상히 생각한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을 퍼 올릴 때 나무토막을 넣으면 물이 요동치지 않게 되어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어요. 나무토막을 넣지 않으면 물이 제 맘대로 출렁거려서 나중에는 반 통 밖에 안 될 때가 많거든요”

 

이 일화逸話를 떠올리면 나는 언제나 넘치는 생명감을 느낀다. 흔들리는 것들에는 생명이 있나 보다. 아니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흔들린다. 물 한 통을 끌어올리는 데에도 출렁거림이란 심한 고통을 수반한다. 통 안에서 저희들끼리 아귀다툼하듯 요동을 친다. 그 출렁거림을 잠재우는 중재자로 나무토막이 필요하다. 그로 인하여 온전한 물 한 통을 길어 올릴 수 있단다.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다. 햇빛에 눈이 부시다. 평화로운 하늘도 변화무쌍한 얼굴을 갖고 있다. 하늘도 심기가 불편할 때엔 먹구름을 보내고 이내 바람이 불며 서서히 비를 뿌린다. 그러다 성이 나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집채만 한 폭풍우도 보낸다. 흔들림의 정도에 따라 그의 표정과 몸짓, 모습이 다르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거리에 바람이 세게 분다. 키가 멀쑥한 미루나무가 몸 전체를 흔들리고 있다. 구름과 닿아 있는 나무 꽂지를 올려다본다. 우듬지가 제일 둔한 것 같다. 그러나 나무는 바람이 시키는 대로, 하나인 것처럼 순하게 몸을 맡긴다. 지금 미루나무는 어떤 이와 함께 하는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 중 먼지일까. 아니 제 몸을 함께 나눈 형제, 가지와 잎사귀와 함께 한다. 그들도 제 나름의 고유한 이름과 성격이 있건만 분분하지 않고 하나로 움직이고 있다.

 

또 있다. 마치 바람의 정부인 양 굼실굼실 너울거리는 은빛 갈대이다. 그는 바람이 일면 머리를 마구 풀어 헤치고 풀밭에 드러눕는다. 그에겐 그 흔한 자존심도 정절도 없어 보인다. 형체가 없는 바람, 그가 시키는 대로 날카로운 잎새의 날을 세우고 제 살에 생채기를 내면서도 수걱수걱 비위를 맞춘다.

어디 흔들리는 것이 나무와 갈대뿐이랴. 사람들도 시시각각 흔들린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의 얼굴에선 이를 알아내기 힘들다. 하지만 양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자신만은 속일 순 없으리라. 애써 숨기려 해도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눈빛, 고통으로 심하게 요동치는 심장, 절망으로 절규하는 양심…….

 

거기에 인간의 욕심은 어떠한가. 아마도 흔들리는 것 중 단연 으뜸일 게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몇 년 전 직장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에 아파트 분양을 할 때다. 구름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실수요자들이 아닌 차명을 빌어 계약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었다.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빚을 내는 한이 있어도 아파트 분양을 받겠다고 유혹을 하였다.

 

"이 00, 참으로 바보야. 남는 장사야. 지금이 기회라니까." 옆에 있는 직원이 내게 한 마디 툭 던졌다. "집이 한 채면 되지, 무얼 두 채씩이나 갖고 있어요." 나는 그의 솔깃한 유혹을 보기 좋게 거절했다. 그러나 어찌 나라고 아니 흔들리랴. 올곧은 가치관까지 흔들리게 만드는 사회, 유행병처럼 번지는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시대인 게 분명하다.

 

문득, 루오의 판화가 떠오른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고 하였다. 판화의 주제는 향나무 자신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고, 상처를 입힌 도끼날에 독을 묻히지 않고, 오히려 향을 묻혀준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은혜로운 보답이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할 강이 너무도 많다. 그것들로 인하여 우리는 좌절과 아픔, 때론 분노와 절망으로 흔들린다. 그러나 욕심에서 일어난 파동을 잠재운다면, 마음은 어느새 고요해지고 희망이 움트리라.

 

그래, 하루하루를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으랴.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게 향을 묻혀 주는 향나무처럼 온전하고 순정한 삶의 증거인 나무와 갈대의 흔들림처럼 욕심을 버린다면 차라리 마음은 편하리라. 남은 생애를 좀 더 의미 있는 흔들림으로, 세상에 꼭 필요한 조력자로 거듭나기 위해 마음이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