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리고 다양한 서정 / 윤재근

 

 

 

수필가의 문체는 언어를 서정(抒情)으로 이끈다. 여기서 ‘서정’이란 말은 시가(詩歌)에서 말하는 ‘노래’든지 ‘lyric’과 같은 서구의 개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서정시라고 할 때 서정이란 말은 ‘정(情)’을 주로 정감이란 뜻으로 좁혀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에세이는 ‘정’을 그렇게 좁히지 않는다. 본래 정이란 마음과 사물이 만나면 일어나는 심리이다. 그 정에는 느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사물을 만나면 무수한 말을 하게 하는 대화(discourse)의 출입문 구실을 하는 것으로 에세이는 정을 수용한다.

 

에세이는 인간과 사물의 정(情)을 통하게 하고 그 에세이를 만나는 인간으로 하여금 의견이나 견해를 말하게 한다. 이것이 미적 대화인 것이다. 그러므로 에세이의 서정은 감정이나 생각이나 사상이나 관점을 말하지 않고 사물을 말하는 셈이다.

 

문학의 에세이는 표현의 수필이다. 서정 그것은 진술이 아니라 표현인 것이다.

 

서정이 왜 표현일까? 서정의 ‘서(抒)’는 ‘정(情)’을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까닭이다. 수필가는 산문으로 서정화하는 언어의 장인이어야 문학의 에세이를 존재하게 하는 셈이다. 높은 식자라고 하여 수필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깊은 사상을 간직한다고 수필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언어가 선연하게 사물을 드러내게 하는 비밀을 터득하지 못하면 문학의 에세이는 만들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니 수필은 쉽게 만들어지는 문학이 아니다. 의미를 전달하려고 글을 쓰는 일이란 정확한 작문 실력이 있으면 되고 타당성을 얻을 논설문을 쓰자면 주제의 내용을 잘 소화하면 된다. 그러나 사물을 말하는 산문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필은 서정(抒情)하는 에세이인 것이다. 서정하는 에세이 그것은 사물을 새롭게 만나게 하는 언어의 꽃밭 같은 셈이다.

 

그러므로 언어가 서정(抒情)을 하게 수필가는 언어를 사물화해야 한다. 수필가는 어떻게 언어를 사물화하는가? 그러기 위하여 수필가는 낱말을 상(象)으로 변용하여 문장을 구조할 줄을 안다. 수필가는 개념들로 약속된 낱말들을 엮어서 문장을 짜지 않는다. 개념이란 약속된 느낌을 주고, 약속된 생각을 주고, 약속된 이해와 판단을 제공해 준다. 이러한 것은 기억된 지식이 아닌가. 상(象)이란 이러한 지식으로는 가 볼 수 없는 미궁이다. 개념이란 길가에 서 있는 교통 표지판과 같다. 그 표지판만 기억하면 항상 낯익은 곳을 갈 수 있을 뿐 새로운 곳으로는 갈 수 없을 뿐이다.

 

미궁에는 그러한 기억의 표지판이란 없다. 상이란 미궁을 수필가는 만들어 놓고 누구든 자유롭게 만나게 한다. 그러니 문학의 에세이란 미궁의 꽃밭인 셈이다. 그러므로 수필가는 상들을 구조하여 산문의 문장을 만들고 시인은 상들로 엮어서 시(詩)의 행(行)과 연(聯)을 만든다. 수필가는 이렇게 하여 주제를 절묘하게 형상화한다. 물론 에세이 속에 있는 모든 낱말들이 모조리 상인 것은 아니다. 하나의 낱말만으로 기호는 되지만 상징을 이루지는 못한다. 상이란 기호일 수도 있고 상징일 수도 있다. 상이 상징이 되려면 여러 상들이 엮어져야 한다.

 

이러한 엮음에서 수필가의 문체가 형성된다. 상들을 엮자면 그 문체 속에는 상이 아닌 것들이 접착제 노릇을 해야 한다. 꽃밭에 어디 꽃만 있는가. 줄기며 뿌리며 잎들이 있어야 꽃이 있는 것이 아닌가? 에세이란 언어의 꽃밭에 꽃이란 상징의 상들인 것이다. 문학의 에세이를 만드는 수필가의 성패는 이러한 상들을 어떻게 엮어서 문장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고 상징의 미궁으로 만들어 말하게 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에세이가 말하는 것은 그 에세이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느껴 달라.”, 그리고 “생각해 달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에세이란 꽃밭에 있는 꽃송이들이 선연하게 나타나 안개같이 향기를 뿜는다. 그 향기가 바로 언어의 미가 아닌가. 참으로 서정이란 언어의 미가 어우러지는 현장인 것이다. 왜 서정이 그러한 미의 현장이란 말인가? “미는 마음과 자연을 종합하는 힘이다. 그러한 구실은 정절(情節) 그리고 인생이 미를 거쳐 자기를 알고 휴식을 얻을 때라고 암시한” 퍼스(C.S. Peirce)의 비망록을 귀담아 두면 이해가 된다.

 

그러므로 에세이의 서정이란 언어를 사물화하여 상을 만들어 한없이 느끼고 생각하게 한 다음 사색으로 초대하는 힘이다. 이러한 힘이 에세이의 표현이며 그러한 표현은 서정을 타야 하는 것이다. 에세이의 다양한 서정은 다양한 의미를 만나게 한다. 이러한 만남이 체험인 것을 수필가는 알아서 언어를 사물화한다. “언어를 체험하라.”, “언어를 사물화하라.”, “언어로 서정하라.” 이러한 요구는 에세이가 갖는 미적 대화인 셈이다. 그리고 인간의 삶을 다양하게 사색하라. 이러한 요구는 에세이가 맺어주는 열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