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댕이 / 이은희

 

 

검댕이가 긴 여행을 떠났다. 먹보인 녀석이 좋아하는 젤리도 마다하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덩그러니 보금자리만 남았다. 그런데 나는 놀라지도, 슬프지도 않다. 가족들은 두 눈에 쌍불을 켜고 그를 찾느라고 야단이다. 그러나 베란다와 온 방을 구석구석 찾아보아도 녀석은 나타나질 않는다.

 

검댕이는 우리 집에서 키우는 사슴벌레의 애칭이다. 유난히 검고 두개의 집게가 커서 붙인 이름이다. 이 녀석이 우리 집에 오기까지엔 할머니의 영웅담이 한몫을 했다.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와 손자가 나를 따돌리고 뭔가 작전을 수행하려는 눈치였다. 아이가 난데없이 사슴벌레에 관해 연구를 하려는 것도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았다. 나 몰래 아빠에게 용돈도 얻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날 벌어진 일을 흥분하신 할머니가 가족들에게 영웅담처럼 풀어놓으셨다.

 

도시에서는 흔하지 않은 곤충인지라 부르는 게 값이었다. 검댕이 한 마리의 가격은 만 오천 원인데 아이의 주머니엔 만 삼천 원밖에 없었다. 문방구 주인은 모자라는 이천 원을 가져오라고 했다. 하지만 검댕이를 빨리 갖고 싶어 주춤거리는 아이에게 그는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뽑기를 하면 만 오천 원이 나올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귀가 솔깃하여 순순히 빠져들어 갔고 결국, 가지고 있던 돈마저 몽땅 뽑기 기구한테 빼앗겨 빈손이 되고 말았다.

 

그 다음 상황은 보지 않아도 그림이다. 아이는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내 돈을 내 놓으라고 생떼를 쓰며 대성통곡을 하였을 것이다. 손자의 얘기를 들은 할머니는 눈썹이 날리도록 문방구로 달려갔고 문방구 주인을 사행심을 조장했다고 협박 반 애걸 반으로 모자란 돈 이천 원으로 타협을 보았다. 제일 작은 검댕이를 골라 주려고 하는 그의 손을 제치고 제일 큰놈으로 고른 손자와 할머니는 승전보를 울리며 개선장군처럼 돌아왔다. 용감무쌍한 할머니다. 덕분에 아이도 쓰라린 인생 경험을 했고 추억의 탑에 돌 하나를 더 얹은 셈이다.

 

웬만한 애완곤충은 우리 집을 거쳐 가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아이는 그들을 데려온 일주일은 호기심으로 밥도 제 때 챙겨주며 지나칠 정도로 깊은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시간이 흐를수록 거들떠보지도 않아 그들의 뒤처리는 할머니의 몫이 되곤 했다. 그들도 사람처럼 사랑을 먹고 자라는가 보다. 사람도 사랑이 부족하면 거칠어지고 생기가 없어지듯, 그들도 기운을 잃은 듯 얼마 가질 못해 마침내 죽는 경우도 생겼다. 그런 모습이 딱해 앞으로 다시는 곤충을 사주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검댕이를 어렵게 데려온 얘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검댕이의 값보다 비싼 집만큼은 양보하지 않기로 했다. 자그마한 사육장이 이만 오천 원이다. 전에도 햄스터가 오천 원이면 집은 만 오천 원, 금화조가 팔천 원이면 새집은 이만 오천 원이었다. 주객의 전도였다. ‘배보다 배꼽이 크면 안 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처음에는 고집을 부리던 남편과 아이도 못 이기겠다는 듯 네모난 석쇠를 사다가 구슬땀을 흘리며 녀석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제법 근사했다. 손수 집을 만든 남편과 아이는 어느 때보다 더욱 강한 사랑을 베풀었다.

 

하루는 검댕이가 벌렁 드러누워 배를 하늘로 향한 채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혹시 죽은 것은 아닌가 싶어 아이에게 물었다. 죽은 시늉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는 그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그 녀석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귀머거리인가. 갑갑하고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검댕이가 남의 집 화분 근처에서 방황을 하고 있지 않은가. 철끈으로 칭칭 감아 만든 튼튼한 집을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두껍고 무거운 책으로 눌려 놓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나왔을까. 그 후로도 그는 몇 번씩이나 탈출시도를 하여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검댕이의 등이 여기 저기 갈라져 상처투성이인 것이 눈에 띄었다. 실패를 거듭해도 포기하지 않고 빠져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구나, 여겼다. 헌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녀석은 정사각형인 석쇠의 네모난 구멍 밖으로 두 집게를 정면으로, 위로, 아래로, 그것도 모자라 사선으로 시도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녀석이 빠져 나오게 된 비밀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자로 석쇠의 구멍을 재보았다. 가로, 세로 1.5센티미터. 검댕이가 정면으로 빠져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선의 길이가 약 2센티미터가 넘는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 실수였다. 아주 간단한 진리를 소홀히 다룬 것이다. 그는 우리가 놓친 맞모금의 길이를 발견한 것이었다. 겁도 없이 탈출하려는 검댕이를 보며 문득 내 모습이 겹쳐졌다.

 

신혼시절, 가난한 촌부의 아내는 오직 하나 욕심의 그릇을 채우기 위해 하루를 살았다. 셋방살이를 벗어나기 위한 알뜰함은 이내 작은 평수의 내 집을 얻을 수가 있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 헛된 욕심은 더 큰 것을 바라고 숫자를 헤아리며 여러 해를 보태었다. 겉치장을 위한 삶으로 내 머릿속엔 상상의 기와집은 수없이 그려졌다. 또한 직장에선 한 계단 더 높은 직급을 위하여 모든 상황을 내게 유리한 쪽으로 고민해갔다. 늘 내 주변의 것들은 경쟁대상이었다. 그렇게 열을 채우기 위한 욕망의 불꽃은 사그라지지를 않았다.

 

모든 부분을 고속질주로 이루어낸 어느 날, 원인 모를 병에 걸린 듯 가슴아파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건만 이유 없이 허전하며, 신열을 앓듯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내가 원했던 삶이 이런 것이었던가. 물질만능 위주의 사회에 물든 내 모습, 순수감성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문득, 내 순수영혼을 잃고 욕망만 높아진 삶이 부질없는 짓이란 걸 알게 되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화려한 불빛을 쫓아다니는 불나비 같았다. 노랗게 단풍이 든 느티나무 아래에서 까르르 웃던 열아홉 소녀의 그림자가 그립다. 계절의 아름다움을 시로 읊던 나는 어디에 묻혀 있는 걸까. 사유의 창을 열어 묻고 되묻는다.

 

그 동안 나는 내내 주위의 환경을 탓하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감히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나에겐 언제나 벗어날 수 있는 열려진 문이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현실에 안주해버린 날 조롱하는 듯 했다. 나는 검댕이 보다 용기 없는 사람이었다. 그다지 절실하지도 않으며 실체 없는 고민을 늘어놓던 나의 몸부림이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그렇다. 검댕이의 자유를 향한 무모한 도전과 끈질긴 노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사력을 다해 1.5센티미터의 구멍에 온 몸을 던졌을 것을 상상하니, 전기충격을 받은 듯 온몸이 짜릿해왔다. 그랬다. 나의 삶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었다. 인생살이에서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볼 줄 알았다. 비껴보고, 누워볼 수 있는 삶을 몰랐던 것이다.

 

표면에 드러난 가벼운 것을 즐기며, 내면의 깊이를 모르는 지금까지의 삶이 아니었던가. 그래 지극히 사소한 것, 가끔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아주 작은 감성을 도외시했다. 철망에 긁혀 생채기투성이가 될 정도의 적극적인 삶과는 비교도 되지 않아 보였다.

 

식구들이 집을 비운 오후. 녀석이 왕성한 혈기로 사방을 활개 치며 돌아다닌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끌어안고 서서히 베란다 쪽으로 다가간다. 그리고는 창문을 반쯤 열었다.

 

서재로 돌아와서도 진정되지 않는 마음은 온통 그 녀석에게 가 있다. 이윽고 ‘툭’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드디어 자유를 찾았구나.’ 작은 탄성이 일었다. 먼발치에서 둘러보니 역시 녀석이 보이질 않는다. 녀석이 기어가는 속도를 계산하며, 시간이 빨리 흘러갔으면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힘이 빠져왔다. 두 어깨가 축 처졌다. 검댕이가 없는 쓸쓸한 보금자리. 검댕이의 탈출은 가족들에겐 언제까지나 미제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