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개의 옥수수 알 / 헤르타 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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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호주머니 칼에서 사다리를 꺼내 폈다…
"오늘은 내가 이길 테니, 봐"

그렇다,손님이 왔을 때 종종 그러는 것처럼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난 후에 일어서지 않고 잠시 동안 식탁에 함께 앉아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그저 그렇게 있었다. 남자들 즉 나의 아버지,나의 할아버지,나의 삼촌은 담배를 피웠다. 여자들 즉 나의 의붓어머니,나의 할머니,나의 숙모는 흩어진 빵 부스러기와 설탕을 손가락 끝으로 식탁에서 쓸어담아 깨끗이 핥아먹었다. 나도 소녀였으므로 마찬가지로 그랬다. 나의 남동생은 아직 소년이고 어른이 아니었으므로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그는 우리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기어다니고 있는 개미들을 이쪽 팔꿈치와 저쪽 팔꿈치로 장난을 치면서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가 삼촌이 시계를 바라보면서 말을 했다. '카드놀이나 하는 게 어때요' 그들은 백 개의 옥수수 알을 가지고 카드놀이를 했고,그 낟알들이 다 떨어지면 돈을 다 잃은 셈이었다. 그러면 삼촌은 상의 호주머니에서 옥수수 알들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주머니를 꺼냈다. 할아버지는 옷장으로 가서 작은 깡통을 가져 와 그것을 흔들었고,그러면 딸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호주머니 칼에서 찰칵 소리를 내며 사다리를 꺼내어 폈다.* 그러고는 그것을 방의 벽에다 걸쳐놓았고,모자를 쓰고는 제일 높은 디딤판에까지 올라갔다. 거기서 천장 너머로 머리를 내밀고는 멀리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이길 테니,봐' 나의 남동생은 울기 시작했다.

 

***호주머니 칼에서 어른이 딛고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나올 리는 없다.

     여기서 작가는 사다리라는 상징을 통해서 현실과 초현실의 공존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헤르타 뮐러(Herta Muller, 독일) (2009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으며, 소개된 작품이라고는 2001년 세계적인 작가 46명이 참여했던 <책그림책(민음사)>에 실린 짧은 에세이 ‘백 개의 옥수수 알’ 하나뿐인 그녀. 루마니아에서 독일계 소수민족으로 태어났던 그녀는 차별과 냉대를 온몸으로 겪었으며, 작품이 출판 금지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독일 평단에서는 인정받지만 루마니아에서는 ‘자기 둥지를 더럽히는 여자’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던 그녀는 중간자로서의 삶, 폭압적 정치에 대한 비판 등 어둡다 할 수 있는 주제들을 순수하고 시적인 언어와 은유로 풀어냈다.